오는 3월29일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를 앞두고 세계 해운물류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영국이 EU와 완전한 결별을 선언하는 ‘노딜 브렉시트’에 대비해 우리 정부가 영국과 양자 간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무역협회가 9일 개최한 ‘브렉시트 설명회’에서 한국무역협회 통상지원단 곽동철 연구원은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우리 기업이 한-EU FTA의 혜택을 적용받지 못해 영국의 독자적 품목분류를 따르고, 최혜국(MFN) 실행관세율을 적용받게 된다”며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간 국경이 생기면서 상품수출입 시 통관문제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영국 하원은 오는 15일 브렉시트 합의안 찬반투표를 앞두고 있다. 합의문이 가결되면 영국은 오는 3월29일 EU에서 탈퇴하는 대신 내년 말까지 무역관계에 대한 전환기간을 가지고, EU단일시장과 관세동맹에 잔류하는 현행 EU의 제도와 규제를 따라야 한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더라도 전격적인 통상정책 파기를 유예하게 돼 시장혼란을 줄일 수 있다.
현재 영국 의회는 합의문대로 일정 분담금을 내고 유럽단일시장의 지위를 인정받는 ‘소프트 브렉시트’와 EU와 체결한 합의문을 따르지 않고 완전히 이별하자는 ‘하드(노딜) 브렉시트’파로 팽팽히 맞서고 있다. 합의문이 부결되면 제2의 국민투표로 이어질 수도 있으며, 3월 말까지 대안이 마련되지 않으면 영국과 교역하는 국가들은 영국의 자체 통상법을 따라야 한다.
이날 발표자로 참석한 한국외국어대학교 강유덕 교수는 “보수당 일부, (북아일랜드) 민주연합당, 노동당, 스코틀랜드 국민당 등이 반대가 커서 현재로서는 (합의문) 통과에 난항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EU 탈퇴시 특혜원산지·수출입규제 문제 부상
곽 연구원은 영국 하원의 합의문 반대로 ‘노딜 브렉시트’로 이어지면 국내 무역업체들이 특혜원산지나 수출입규제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EU와의 FTA로 특혜원산지 기준을 따르고 있다. 또 영국산 부품과 원자재를 사용해도 역내산으로 인정받아 관세효과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영국산 부품원자재가 한-EU FTA의 특혜원산지기준을 충족하지 못하게 된다.
곽 연구원은 “(기업들이) 제품의 공급망을 확인하고, 영국산 부품원자재를 제외하고도 역내산 인정이 가능한지 조사해야 한다”며 “EU산 수입품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출입 통관문제도 EU의 수출입규정을 따랐지만 앞으로는 영국이 비회원국이 됨에 따라 난항이 예상된다. 브렉시트 이전에 영국에서 발급받은 수출입면허는 EU에서 인정받지 못한다. 곽 연구원은 “(기업들이) EU 수출입규제 규정과 수출입면허의 적용 대상인지 우선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외에도 EU와의 FTA로 누리던 기존 인증·승인·면허 등을 미리 영국으로 이전하거나 새롭게 획득해야 한다고 제기했다.
강유덕 교수는 향후 영국과의 온전한 무역관계를 이어가기 위해 우리 정부가 FTA를 조기에 맺을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강 교수는 “브렉시트 합의안이 타결되면 영국이 EU 시장에 잔류하는 동안 한영FTA 협상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며 “합의안이 타결되지 않더라도 기존 한·영 무역관계가 훼손되지 않도록 영국 정부와 (FTA 추진과 관련해) 긴밀한 협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英의 EU 탈퇴 우려로 해상운임 인상 가능성↑
브렉시트는 해운물류시장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단기적으로 북유럽항로의 해상운임이 브렉시트 여파로 크게 올랐다. 영국 해운전문지 로이즈리스트는 영국의 소매업자들이 브렉시트 이전인 3월29일 전까지 재고를 채우려 하다 보니 아시아-유럽 노선의 해상운임이 단기적으로 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하이해운거래소에 따르면 1월4일 중국 상하이-북유럽 노선의 해상운임은 TEU(20피트 컨테이너)당 996달러를 기록했다. 브렉시트를 우려하는 수요와 중국 설(춘절) 연휴에 따른 물량 밀어내기 수요가 겹치면 1000달러 고지를 돌파할 수도 있다. 지난해 이 노선의 평균 운임은 700~900달러로, 4월 한때 580달러대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외신은 “북유럽항로 운임이 지난해 대비 13% 올랐고, 지중해항로보다 훨씬 강세를 띠고 있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브렉시트로 인해 영국의 항만과 공항은 일시적인 물동량 감소가 불가피해질 전망이다. 그동안 영국은 EU와의 단일시장에 묶이면서 유럽지역을 대표하는 물류허브로 성장했다. 영국 최대 컨테이너 허브항만인 사우샘프턴항은 역대 최대 물동량 경신을 앞두고 있다. 히드로공항은 지난 2017년 항공화물 물동량이 10.2% 증가한 170만t을 기록하며, 주요 유럽지역 경쟁공항인 프랑크푸르트 샤를드골 암스테르담 등을 꺾은 바 있다.
이 외에도 영국 트럭운전수들의 운송면허증이 EU 국가에서 인정받지 못해 유럽내륙운송이 어려워지는 문제점도 안고 있다.
하지만 브렉시트가 영국의 해운물류시장에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팽팽히 맞선다. 영국 정부는 그동안 EU 회원국들의 반대로 인도 미국 캐나다 남미 등 주요 국가와의 양자간 FTA를 맺지 못했다. 하지만 영국이 EU에서 탈퇴하면 교역을 늘리고 싶은 국가들과 자유롭게 무역협정을 맺을 수 있어, 오히려 물동량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탈규제를 주장하는 영국 보수당 강경파들이 ‘노딜 브렉시트’를 내세우는 이유기도 하다.
로이즈리스트는 “브렉시트에 따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소매상 등 수입업체들이 크게 우려하고 있다”면서도 “2019년에는 저유가가 어려움을 상쇄할 것이고, 소비자들의 구매력은 좀 더 향상될 것”이라고 전했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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