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해운연합(KSP) 소속 선사들이 외부 컨설팅을 받는다. 19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KSP 회원사 14곳은 제3의 기관을 선정해 경영컨설팅을 받는 데 합의했다.
대상선사는 고려해운 남성해운 동영해운 동진상선 두우해운 범주해운 장금상선 천경해운 태영상선 팬오션 한성라인 현대상선 흥아해운 SM상선 들이다.
한일 구간에 카페리선과 로로선(화물차로 하역하는 방식의 선박)을 운항 중인 팬스타는 여객선 중심의 해운 사업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최종적으로 제외됐다. 팬스타는 KSP 발족 후 한 달여가 지난 지난해 9월14일 연합체에 가입했다.
앞서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이달 2일 KSP 선사 측에 기업 통합을 전제로 컨설팅을 받을 것을 주문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조규열 해양진흥공사 정책지원본부장이 5개 선사 대표들에게 컨설팅을 받지 않는 선사엔 지원도 하지 않겠다고 엄포를 놔 ‘갑질 논란’을 빚었다.
공정성 갖춘 곳에 컨설팅 맡겨
KSP 선사들은 조 본부장의 발언이 나온 후 3차례의 회의를 갖고 회원사가 모두 컨설팅을 받는 데 합의하는 한편 컨설팅수행업체 선정, 비용 부담 방식 등을 논의했다.
특히 지난 16일 오후 한국선주협회 회의실에서 열린 세 번째 회의에선 1억원 이하의 비용으로 국내 회계법인이나 대학 연구기관 등을 선정해 컨설팅을 받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아울러 고려해운을 컨설팅업체 선정과 관련한 간사사로 정했다.
당초 현대상선의 컨설팅을 맡았던 미국계 글로벌업체인 AT커니에 같은 금액으로 KSP의 컨설팅도 맡기자는 의견이 유력하게 검토됐으나 비용 문제로 제외됐다.
현대상선이 컨설팅비로 미국기업에 낸 돈은 5억원 정도다. KSP는 AT커니를 염두에 두면서 선주협회로부터 4억원을 보조 받고 기업에서 1억원을 낸다는 구체적인 비용 마련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이 같은 구상은 선주협회 회장단의 승인을 얻는 데 실패했다. 높은 비용 부담이 이유였다.
선주협회 도움을 받는 게 어렵게 되자 선사들은 자신들이 내기로 했던 1억원 한도 내에서 컨설팅을 받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한 기업당 약 720만원을 내고 경영컨설팅을 받는 셈이어서 선사들이 느끼는 비용 부담은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컨설팅업체는 최대한 공정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는 곳을 선정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정부와 공사의 압박으로 컨설팅을 받기로 결정했지만 그 결과만큼은 정부 입김에 좌지우지돼선 안 된다는 게 선사들의 시각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등의 국책연구소나 흥아해운과 장금상선 통합 과정에서 자문역할을 맡고 있는 딜로이트안진 등은 후보군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크다.
컨설팅 마감 기한은 정해지지 않았다. 앞서 연내로 마쳐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이날 기한을 따로 정하지 않는 대신 조속히 진행하고 마무리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고려해운은 앞으로 KSP 선사들과 수시로 회의를 갖고 컨설팅업체 선정 입찰 방식 등의 구체적인 내용을 결정해 나갈 방침이다.
이날 회의엔 조규열 본부장이 나와 앞선 논란을 해명하는 시간을 가져 눈길을 끌었다.
조 본부장은 자신이 “통합을 하지 않는 선사들에게 지원도 하지 않겠다”고 얘기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를 의식한 듯 “현재의 국내 해운산업은 경쟁력을 가지기 힘든 구조다보니 컨설팅을 받아보고 컨설팅에서 제시한 방향을 진지하게 검토하고 협의하자는 것”이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해운의 재건 방향을 모색하기 위해 컨설팅을 제안한 것일 뿐 선사들에게 통합을 강요한 건 아니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정부 ‘선사통합’ 추진 일보후퇴
대폭 줄어든 비용으로 컨설팅을 진행하기로 방침을 정하면서 정부의 통합 추진 동력도 상당히 약화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비용이 많지 않다보니 KSP 선사들의 향후 나아갈 방향을 개략적으로 제시하는 경영진단 수준에서 컨설팅이 마무리 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견이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적은 비용으로 진행하는 컨설팅에서 기업들의 존폐를 결정짓는 통합문제를 결론으로 제시하는 건 (컨설팅업체에서) 부담이 클 것”이라며 “사실상 (통합을 추진하려던) 정부 계획이 유야무야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도 선사들 사이에선 여전히 통합을 높고 의견이 엇갈린다. 동남아항로의 이전투구나 한중항로 개방 문제를 들어 통합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한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기업 통폐합이 오히려 해운시장의 점유율을 하락시키는 결과를 낳을 거란 우려도 나온다.
한 선사 관계자는 “한중항로가 개방되면 살아남기가 쉽지 않다는 걸 다 알지만 (기업통합을) 공론화하지 못하고 있다”며 “선사들도 진지하게 (통합을) 고민해봐야 한다”고 선사 통합에 무게를 실었다.
다른 선사 관계자는 “한중항로가 개방된다면 중국선사들이 인해전술로 나올 게 뻔한데 우리는 오히려 선사 숫자를 줄이려고 한다”며 “중일항로에서 일본선사들이 중국선사들과의 경쟁에 치여 도태되고 사라진 예에서 알 수 있듯이 기업 수를 줄이기보다 국적선사들이 견고하게 연대해 서비스 품질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하는 전략을 찾는 게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한중항로에 배를 띄우고 있는 컨테이너선사는 우리나라 15곳 중국 20곳으로 중국이 우리나라를 앞선다. 한중항로가 개방될 경우 중국은 현재보다 선사 수를 더 늘려서 시장 장악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많다.
또 다른 관계자는 “국적선사가 공동운항 형태로 장악한 한일항로의 경우 통합으로 국적선사 수가 줄게 되면 외국선사에 문을 열어주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며 “덩치가 커진다고 하더라도 현재의 운항빈도를 맞추기 위해선 공동운항은 필수이기 때문에 외국선사와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얼라이언스나 공동운항, 선복교환 등 사업제휴를 통한 해법이 통합보다 효과적일 수 있다는 의견도 감지된다. 통합을 통한 규모의 경제를 시도하더라도 그 결과가 오히려 통합 전보다 뒤처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링겔만 효과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기업 통합의 사례를 보면 1 더하기 1이 꼭 2가 되진 않는다. 1.5가 될 수도 있다”며 “블록체인처럼 최신 IT 기술을 통해 경영권 독립을 유지하면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게 제일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통합은 경쟁력 제고를 위한 하나의 방향이나 과정에 불과한데 지금의 흐름은 통합만이 최선의 해결책인 것처럼 얘기되고 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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