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항로는 연신 내리막길을 걷는 모습이다. 8월 휴가철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화물량 자체가 대폭 줄어든 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국의 이란 제재로 모든 중동항로 선사들이 이란을 대신할 다른 지역을 노리게 되면서 공급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8월 들어서 현대상선 에미레이트쉬핑을 비롯한 이란 반다르아바스항을 오갔던 선사들은 미국의 이란 제재 2차 복원일인 11월4일에 맞춰 순차적으로 서비스를 중단하고 있다. 대체 기항지로는 인접국가인 이라크 오만 쿠웨이트 등이 주로 선정됐다. 에버그린의 경우 이란 반다르아바스를 향하던 루트 대신 이라크 움카사르항으로 기항지를 변경했다.
에미레이트쉬핑 고려해운 등은 오만 소하르항을 이란을 대신할 기항지로 택했다고 밝혔다. 갑작스럽게 이란 기항을 중단한 선사들의 물량 찾기 고민은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운임도 하락세를 지속하고 있다. 8월10일 상하이해운거래소(SSE)가 발표한 상하이발 페르시아만·홍해항로 해상운임은 TEU(20피트컨테이너)당 373달러를 기록했다. 지난달 13일 434달러에서 27일 371달러로 300달러대로 주저앉기 시작해 3일에는 364달러까지 하락했다. 한국도 이와 다르지 않은 상황인 것으로 파악됐다. 각 선사들의 운임을 종합한 결과 8월14일 현재 한국발 두바이 제벨알리항 운임은 TEU당 200~300달러 사이를 오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선사 관계자는 “시황을 논하는 게 의미 없을 정도”라면서 “운임 인상 기회도 보이지 않아 지금으로선 현재 수준이 유지만 돼도 최선이다”라고 밝혔다. 소석률도 50~60%로 곤두박질쳤다. 중동항로 전체의 40% 가량을 차지했던 이란행 화물 수송이 전면 중단되자 이란을 오가던 선사들의 선복량이 감소했다. 동시에 치열해진 경쟁 속에 이란 외 지역을 기항하던 선사들도 화물적재율에 타격을 입었다.
선사들은 초과된 공급을 줄이기 위해 블랭크세일링(임시결항)을 순차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현대상선의 경우 8월25일, 독일 하파크로이트 일본 ONE 대만 양밍 등으로 구성된 디(THE)얼라이언스도 22일 한차례 휴항했다. 그러나, 임시결항도 운임 회복에는 그다지 효과가 없을 것으로 선사들은 전망하고 있다.
선사 관계자는 “아무리 선복을 빼도 이미 공급은 심각한 포화상태라 ‘언 발에 오줌 누기’에 그칠 것이다. 운임 회복이 아니라 운임 유지를 위해 블랭크세일링을 하는 수준”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골드스타라인에서는 현대상선의 선복을 임차해 부산 광양항에서 제벨알리를 직기항하는 서비스를 신설했다. 새로운 서비스는 23일부터 시작됐으며 서비스 항로는 광양-부산-제벨알리-담맘-하마드 순이다. 물동량은 줄어들고 시장은 좁아졌는데 공급은 늘어난 상황이 펼쳐지면서 중동항로의 불황은 하반기 내내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선사 관계자들은 “이란 제재가 다시 풀리지 않는 이상 반등 기회가 없을 지도 모른다”고 입을 모았다.
이란제재와 더불어 지도층 부패, 고물가, 실업난 등에 시달리고 있는 이란 국민들은 거리 시위에 나서는 등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게다가 최대 주력 수출품목인 석유를 비롯한 선박·해운 부문 거래 금지가 포함된 2차 제재를 앞두고 있어 이란의 대내외적 상황은 더 악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 박수현 기자 sh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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