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법 개정에 참여하고 있는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이봉의 교수가 2자물류기업의 3자물류시장 점유율 제한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 3월 발족한 공정거래법 개선 특별위원회에서 경쟁법제분과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 교수는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내부거래 비중에 초점을 맞춘 지금까지의 일감몰아주기 규제가 해운물류시장에선 2자물류기업이 3자물류시장을 잠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2014년 도입한 일감몰아주기 규제법은 재벌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30%(비상장사 20%) 이상인 기업의 내부 거래 매출액이 전체 매출액의 12%(거래액 200억원)를 넘으면 공정위에서 감시·규제하고 내부거래 비중이 매출의 30%를 넘는 계열사의 경우 지배주주(지분 3% 초과 보유)에게 증여세를 물리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제도 도입 이후 2자물류기업들이 3자물류 비중을 늘려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는 전략을 펴면서 새로운 사회적 문제를 낳고 있다.
“바보가 아닌 이상 2자물류기업들은 3자물류시장에 대거 들어가서 전체 수주물량을 늘려 내부거래 비중을 축소하는 방법을 선택한다. 내부거래 비중 자체가 내려간 시기와 2자물류기업들이 3자물류를 늘려간 시기가 대체로 일치한다. 그 과정에서 단가를 후려치기는 일이 생기고 전부 하도급을 주다보니 해운물류 쪽에 새로운 갑을관계가 형성되고 흔히 말하는 갑질, 우월적 지위 남용 행위가 나타났다.”
그는 정부에서 물류산업 육성에 대한 확실한 정책 목표를 확립해 줄 것을 주문했다. 3자물류 육성에 초점을 맞출지 2자물류와 3자물류를 구분하지 않고 자율경쟁을 시킬지 정해야 그에 따라 공정위의 규제도 기본틀을 새롭게 그릴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지금의 흐름을 보면 정부가 해운물류산업을 경쟁력 있게 키워보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우리 정책이 어디로 가야하는지 정립이 안 되다 보니 공정거래위원회가 물량몰아주기 규제를 개선한다고 해도 혼선이 생긴다. 해수부는 정책 포지션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제도가 그대로 가면 3자물류 전문기업을 통한 물류산업 발전이란 정책 목표는 달성될 수 없다. 현대상선은 살아남는다고 해도 중소선사는 다 궤멸할 거다. 현대글로비스나 판토스 같은 재벌기업의 대규모 물류회사가 다음 물류산업을 이끌어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3자물류 전문기업을 육성해서 물류산업을 키워야 한다는 정책의 기본 틀을 유지한다면 지금과 같은 규제 방식은 상당히 바뀌어야 한다.”
경쟁법 전문가들, 내부거래비중 제한 문제점 몰라
이 교수는 지난 3월29일 열린 마리타임코리아포럼에서 주는 쪽, 즉 모회사 물량을 제한하는 방법으로 2자물류기업의 3자물류시장 교란 행위를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같은 방향의 제도 개편은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 교수는 대부분의 경쟁법 전문가들이 내부거래 비중을 제한하는 일감몰아주기 규제법의 폐단을 모르고 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저도 해운물류를 보면서 (내부거래 비중 제한이) 엉뚱한 결과를 가져온다는 걸 처음으로 알았다. 나머지 99.9%의 교수나 전문가들은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오는지 전혀 문제의식이 없다. 일례로 SI(시스템통합) 산업은 이미 재벌계열사 위주로 재편된 상황이다. 하지만 산업이 어떻게 끝이 났는지 심층적인 연구결과가 하나도 없다. 제2 제3의 피해를 막기 위해서라도 고민해야 한다.”
공정위가 추진 중인 사익편취 규제 강화도 해운 분야에선 의미가 없다고 평가 절하했다. 공정위는 총수일가의 지분 제한을 현행 30%에서 20%로 낮추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일감몰아주기 규제법의 핵심인 사익편취 규제는 2자물류기업의 3자물류 확대 전략을 제재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과적이다. 하지만 그룹 총수들은 지분율을 상한선 아래로 낮추는 방법으로 제도를 무력화하고 있다.
현대글로비스 일감몰아주기 논란을 촉발시킨 현대기아차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부자(父子)도 지난 2015년 사익편취 규제가 본격 시행되자 지분율을 29%대로 낮추는 방법으로 제제 대상에서 빠져나갔다. 이 교수는 지분율 상한선이 20%로 강화하더라도 총수들은 다시 지분을 계열사에 배분하는 방식으로 규제를 피해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행 제도에서) 사익편취 규제를 받으려면 (총수 일가 지분율을) 합쳐서 30%인 재벌 계열 물류회사가 있어야 하는데 단 하나도 없다. 법을 개정해 지분율을 20%로 내린다고 하면 어차피 계열사로 지분을 돌리거나 해서 피해갈 거다.”
그렇다면 어떤 방법으로 대기업 물류자회사의 시장 교란 행위를 규제할 수 있을까? 이 교수는 2자물류기업들의 3자물류시장 점유율을 제한하는 방법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유섭 의원과 정인화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가 무산된 ‘2자물류기업의 3자물류 금지법’ 개편안으로 볼 수 있다.
“해운법을 개정해서 2자물류회사의 3자물류시장 점유율을 제한하는, 일정 부분 캡(상한)을 씌우는 방법을 생각할 수 있다. 2자물류업계의 3자물류시장 점유율 합이 몇 %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거다. 3년이나 5년의 일몰제를 둬서 3자물류기업들에게 그 기간 내에 자구책을 마련하고 경쟁력을 키우라고 하는 거지. 완전히 칸막이를 치는, 2자물류기업의 3자물류 물량을 제로로 하라는 것에 비해 기술투자 위축이나 일자리 감소 등의 산업 폐해를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이 교수는 2자물류기업 규제와 별도로 3자물류기업과 해운사가 공동 플랫폼 또는 공동 네트워크 구축을 통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당부했다.
“모든 규제는 한시적이다. 국내 선사들이 벽을 걷어내도 경쟁할 수 있는 뭔가를 강구해 놓지 않으면 안 된다. 시너지를 가져올 수 있는 네트워크나 플랫폼을 주도적으로 만들어내지 않고 그 안에서 ‘키 재기’ 하려고 하면 다 도태될 수 있다. 각자 이해관계를 계산하다보면 다 망하는 길이 될 수 있다. 양보할 건 양보하고 대승적으로 크게 보고 갈 필요가 있다. 오너십(소유의식) 문제에 정책적 지원이 들어가야 한다. 개별선사에 금융지원을 하는 건 지금 체제를 현상 유지하는 거밖에 안 된다. 선사들이 통합하고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파격적인 인센티브를 줄 필요가 있다.”
< 이경희 부장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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