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입은행이 한국해운은 외면하고 경쟁 관계에 있는 외국선사만 도와주고 있다. 이게 무슨 국책은행인가?”
한국선주협회 김영무 상근부회장은 최근 한국수출입은행과 국내 해운업계의 간담회 소식을 전하며 이 같이 말했다.
해운기업 사장단과 수출입은행은 은성수 행장 취임 7개월 만인 지난달 20일 간담회를 가졌다. 김 부회장은 이 자리에서 수출입은행이 해외 선사 지원에 골몰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해운의 입장에서 수출입은행이 ‘이적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선박금융 절반은 국적선사에 배정” 요구
“선주협회는 선박금융 총액의 절반을 한국선사에 배정하라고 수출입은행에 요구하고 있다. 수출입은행의 전체 여신 규모가 70조원이다. 이 중 30조를 해운에 배정하고 있다.
그런데 선박금융 지원 비율이 해외선사 85%, 국적선사 15% 정도로 심각하게 편중돼 있다. 50 대 50으로 맞춰서 지원하란 거다. 우리가 50이 안 되면 외국선사에도 (선박금융 지원금을) 줘선 안 된다.”
김 부회장은 수출입은행이 해외선사에 선박금융을 제공하더라도 국내 해운사와 경쟁 관계에 있지 않은 곳에 지원해야 한다고 못박았다. 머스크라인이나 MSC, CMA CGM 같은 곳엔 지원을 하면 안 된다는 의미다.
해외 선주사에 금융을 지원해 배를 짓게 한 뒤 한국 해운사에 빌려주게 하는 것도 잘못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국적선사에 돈을 빌려줘 직접 신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영국) 조디악이나 (캐나다·홍콩) 시스팬 등의 외국 선주사를 지원해 국적선사에서 용선토록 하는 간접 지원도 해선 안 된다. 과거 한진해운이 망할 때 컨테이너선대가 100척이었다. 사선 30척 용선 60척이었지. 그런데 용선 30척을 이런 방식(수출입은행의 지원을 받은 해외선주사로부터 배를 용선)으로 빌렸다. 이 30척 때문에 고용선료 논란이 나왔다. 대우조선해양에서 지어서 한진해운에서 용선한 건데 수은에서 대출을 해줬다.”
그는 그리스 아테네 포시도니아 해양박람회에 갔다가 들은 얘기도 소개했다. 유럽 해운업계가 한국을 ‘호구’로 생각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한국만큼 바보가 없다더라. 유럽 선사나 선주사는 볼펜 한 자루만 갖고 한국에 가면 된다고 한다. 볼펜 한 자루랑 명함만 들고가면 싸게 배 지어주고 돈 빌려주고 비싼 요금으로 배 빌려가는 곳이 한국이란 얘기다.”
그는 이 같이 국내 조선업 지원을 명목으로 해외 선사만 지원하는 국내 정책금융기관의 행태를 두고 ‘금융사대주의’ ‘조선사대주의’라고 힐난했다.
“(국내 정책금융기관은) 한국 선사를 절대 못 믿는다. 그러니 해운에 돈을 지원해줘야 하는데 조선에 20조 30조 지원한 거 아닌가? 결국 그 돈이 모두 해외선사로 빠져나간다.”
김 부회장은 미국수출입은행(EXIM US)의 사례를 들면서 우리 수출입은행도 한국해운의 경쟁자를 돕는 행위를 계속 할 경우 역할을 재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에선 수출입은행의 보잉 지원이 뜨거운 감자다. 보잉이 외국항공사에 항공기를 공급하는 데 미 수출입은행이 막대한 금융 지원을 함으로써 자국 항공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10년 전 미국 델타항공이 미국과 인도를 잇는 노선을 철수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 미국 항공사는 보잉이 수출입은행의 지원을 배경으로 항공기를 경쟁사에 염가로 판매하면서 자사 영업이 큰 타격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산업계의 반발이 확산하면서 미국 수출입은행은 지난 2015년 존폐 위기에 내몰렸다. 미국은 우리나라와 달리 4년마다 의회의 재승인 과정을 거쳐 수출입은행의 존속 여부를 결정한다. 당시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공화당 의원들이 수출입은행 폐지를 강력히 주장했다.
“2만4000TEU 선박 도입도 불가능한 것 아냐”
김 부회장은 현대상선의 초대형선 신조 계획을 ‘공급과잉’과 ‘화물 유치의 어려움’을 이유로 반대하는 일부 국내 학자들에게도 비판의 칼 끝을 들이댔다. 이들이 후발주자들의 공급 확대를 견제하기 위해 짜놓은 유럽선사들의 프레임에 동조하고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유럽선사들은 자신들은 선박 발주를 다 해놓고 다른 선사엔 하지 말라고 한다. 머스크나 CMA CGM, MSC도 발주잔량이 10여척이다. 일부 (국내) 학자들과 금융권도 마찬가지다. (현대상선이) 2만TEU 선박을 가지고 있으면 운영하기 어려울 거라든지, 공급과잉이 될 거라고 우려하는데 ‘유럽사대주의’ 아닌가?
유사 이래 공급 과잉이 아닌 적이 없다. 컨테이너선은 특히 그렇다. 벌크선과 달리 컨테이너선은 천수를 누리지 못했다. 새로운 배, 규모의 경제를 갖춘 배가 나오면 운항원가가 높은 배를 퇴출시켜왔기 때문이다.”
그는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지는 2만4000TEU급 선박 도입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선사들이 현재는 회의적인 시각을 내비치고 있지만 결국엔 동급 선박 확보에 나설 거란 예상이다. 아울러 선대 확대를 위해 해외선사 인수·합병(M&A)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은 2만4000TEU(급 선박)에 회의적인 시각을 표시하고 있다더라. 화물을 채울 수 있느냐, 기간항구에서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역시설을 확보할 수 있느냐, 각 나라의 인프라 도로 철송이 가능하겠느냐는 주장이다. 우리나라는 유럽에서 말하면 맞다고 생각하는 거 같다. 유럽은 그렇게 말해놓고 2만4000TEU를 짓는다고 본다.
우린 머스크보다 더 좋은 배를 만들어야 한다. 현대상선도 선대 100만TEU(확보)로는 부족하다. 200만TEU까지 갖춰야 한다. 현재 (현대상선 선대가) 40만TEU인데, 2만TEU 이상 선박 12척과 1만4000TEU급 8척을 발주할 예정이다. 100만TEU를 채우려면 M&A를 해야 한다. 리스트를 뽑아서 해외 중견급 선사들을 사야 한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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