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부 엄기두 해운물류국장이 국내 컨테이너선사들의 통폐합 가능성을 언급해 관심이 모아진다.
엄기두 국장은 25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해운연합(KSP)의 올해 사업 방향을 설명하면서 “해운연합에 14개 선사가 가입해 있는데 너무 많은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있고 이렇게 많아서 살 수 있을지 상당히 걱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엄 국장은 14개 가입선사 중 적정하게 사업을 하는 곳을 현대상선 SM상선 고려해운 장금상선 흥아해운 남성해운 천경해운 동영해운 동진상선 등 7~9개 기업으로 한정했다. 두우해운 범주해운 태영상선 팬오션 한성라인 등은 빠진 명단이다. 14개든 7개든 기업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게 엄 국장의 생각이다.
그는 외국을 예로 들며 국내 컨테이너선사의 과밀화를 부각했다. 우리나라와 달리 대부분의 국가에선 아시아역내선사를 한 곳 정도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설명이다.
“일본은 아시아역내선사가 없고 최근 3대선사 컨테이너선부문이 합친 오션네트워크익스프레스(ONE)에서 근해항로를 하려고 나서는 상황이다. 중국은 SITC, 대만은 완하이라인 하나밖에 없다. 대만은 오히려 원양선사가 2~3곳 있다. 덴마크도 머스크 산하의 MCC 하나다.”
엄 국장은 그러면서 “1단계인 항로합리화를 거쳐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한국해운이 산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고 말해 국적선사들의 통합을 KSP의 2단계 사업으로 규정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선사들은 지난해 두 차례의 항로합리화 과정을 거쳐 한국-태국ㆍ베트남(호치민)항로에서 2개노선을 통합하고 한국-인도네시아항로에서 1개노선을 철수하는 성과를 냈다. 태국·베트남항로에서 선박 3척, 인도네시아항로에서 선박 4척이 감축됐다. 3차로 한국-베트남(하이퐁) 합리화가 진행될 예정이다.
1단계 사업이 선사들의 호응과 합의로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만큼 이를 동력으로 다음 수순인 한국 컨테이너선 시장 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게 엄 국장의 의중이라고 풀이할 수 있다.
다만 예전 해운산업합리화처럼 국가가 나서서 선사들의 통합을 지휘할 의사는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통합 논의를 진행해야 한다는 바람이다. 1985년 마무리된 해운합리화를 통해 전두환정부는 66개 선사를 20개 선사로 통폐합한 바 있다.
“정부가 (선사가) 많다고 고민돼서 통폐합할 권한도 없고 그럴 능력도 없다. 잘하고 있는 기업들을 그렇게 할 생각은 전혀 없다. KSP를 처음 시작할 때와 똑같이 자율적으로 서로 협력해서 통합을 하길 바란다. 은행에 잡혀 있는 부실기업이라면 모르겠지만 정상적인 기업을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렇지만 (통합으로 가는 게) 맞는 거 같다.”
엄 국장은 이날 정부 해운 재건 전략의 진행 상황을 소개했다.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오는 7월 첫째주 설립과 동시에 지원 프로그램을 가동할 예정이다. 지난해 10월 엄기두 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공사설립추진단이 구성돼 현재 활동 중으로, 해수부 6명과 한국해양보증보험 3명, 한국선박해양 2명, 해운거래정보센터(MEIC) 1명 등 총 12명이 추진단에서 일하고 있다.
다음달(2월) 초엔 강준석 차관과 공무원 3명, 민간 3명이 참여하는 7명 체제의 한국해양진흥공사 설립추진위원회가 발족할 예정이다. 엄 국장은 지난 11일 열린 선주협회 총회에서 설립위원회에 해운업계 인사 1명을 위촉할 계획임을 밝힌 바 있다. 해양진흥공사 인력은 통합되는 정책금융기관 직원 50명을 포함해 총 120~150명 규모가 될 전망이다.
연장선상에서 다음달께 해운 재건 5개년 계획도 모습을 드러낸다. 엄 국장은 “해운 재건 5개년 계획은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등 관계부처와 막바지 협의를 진행 중”이라며 “관계장관 회의를 거쳐 2월 발표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5개년 계획엔 선박과 컨테이너장비 터미널 확보 지원 등 원양 연근해 벌크선사들의 경영 안정화 정책이 종합적으로 담길 예정이다.
특히 신조선가의 15~40%를 지원하는 금융대출은 선사들의 구미를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신용등급 BB인 선사까지 금융 지원 대상에 포함한다는 방침을 확정했다. 총 수혜 기업은 1금융권에서 대출이 가능한 신용등급 BBB 부채비율 400% 이하의 15개 해운사를 더해 60곳 정도가 될 전망이다. 연간 50~60척의 선박 신조를 지원하게 되는 셈이다.
아울러 공사에서 한국해운 발전에 기여하는 선사들의 재무상태를 정밀진단하는 경영환경 모니터링 사업도 5개년 계획에 실린다. 엄 국장은 “한국해운에 꼭 필요한 선사들, 경영을 잘 하는 선사들의 지원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국적선사의 자국화물 적취율 제고 대책도 가동한다. 현재 컨테이너 38%(원양 13%), 탱크선 28.1%, 벌크선 72.8% 정도인 자국화물 수송비율을 컨테이너 50%(원양 25%), 탱크선 33.8%, 벌크선 80.1%로 끌어올린다는 게 해수부의 복안이다.
엄 국장은 2월에 김영춘 장관이 무역협회 상공회의소 선주협회 등과 상생협약(MOU)을 체결하는 데 이어 올해 하반기엔 ‘전략물자 국적선사 우선적취권 제도’를 부활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엄 국장은 대기업 물류자회사의 3자물류 시장 훼손 행위를 규제하는 대책도 강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해상운송주선을 하는 국제물류주선업체 중 일정 기준을 넘어서는 기업에겐 운임공표제와 금지 행위 등을 적용하는 법안을 만든다는 방침이다.
“국토부와 선주협회 국제물류협회 통합물류협회 등의 의견을 듣고 있다. 제도 도입을 통해 앞으로 3자 물류시장을 안정화하고 운임공표제 관리 감독을 강화할 계획이다.”
또 국적선사의 부산 북항 지분 투자와 부산 신항 추가 터미널 확보,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해외터미널 인수도 진행 중이다. 글로벌 터미널 운영사(K-GTO) 육성 정책의 하나다.
이밖에 연안여객선 준공영제 확대 예산 24억원 확보, 해사고 실습선 1척 신조,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선원 임금 12.6% 인상 등의 정책들이 확정됐다고 엄 국장은 밝혔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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