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동남아항로의 가장 큰 화두는 한국해운연합(KSP) 출범과 첫 결실을 맺은 항로 구조조정이었다. 지난 8월 KSP 출범 이후 정부와 수차례 협의를 거친 끝에 국적선사 8곳은 한국과 호치민 방콕 램차방을 잇는 동남아에서 항로 합리화를 실시하기로 합의했다.
고려해운 장금상선 흥아해운(A그룹)이 운영 중인 ‘KHS2’와 남성해운 동진상선 범주해운 천경해운 팬오션이 운항하는 ‘TVX’를 하나로 통합하는 게 항로 합리화의 핵심이다. 새롭게 명명된 ‘KST’ 서비스는 빠르면 내년 1분기에 시작될 예정이다.
항로 합리화에 발맞춰 지지부진했던 운임인상(GRI) 실행도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선사들은 경영 정상화를 위해 내년 1분기께 20피트 컨테이너(TEU)당 약 50~150달러의 GRI를 실시할 계획이다. 태국 베트남은 TEU 당 250~300달러, 인도네시아는 400~450달러 수준으로 각각 끌어올릴 방침이다. 선사 관계자는 “항로를 하나로 통합하며 운임정상화 기틀을 어느 정도 마련하게 됐다”며 “내년 상반기 GRI가 성공적으로 이뤄지길 간절히 바란다”고 전했다.
KSP가 항로 합리화 첫 성과를 이끌어냈지만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선사들은 항로 통합이 진행되면 선복량 감소로 화물집하 경쟁이 덜할 것으로 예상하면서도 외국적선사의 추가 선대 투입을 우려하고 있다. 더불어 현대상선과 SM상선이 통합 대상에서 제외된 것도 이번 구조조정의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있다.
선사 관계자는 “기껏 선대를 줄였는데 KSP 비참여 선사들이 선박을 늘리면 항로 조정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선사들의 자정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시황이 안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도 동남아항로에서는 비정상적인 운임을 끌어올리기 위한 해운사들의 고군분투가 계속됐다. 운임이 바닥까지 내려간 탓에 몸살을 앓았던 선사들은 올해 상반기 운임회복에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선사들은 3월 한국발 호치민·방콕·자카르타행 화물에 대해 TEU 당 90~150달러의 GRI를 실시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위기감이 고조된 선사들의 강한 의지가 동남아 해운시장에 녹아내리며 운임은 오름세로 돌아섰다.
반등 흐름을 탄 선사들은 또다시 운임회복에 나섰다. 이번엔 대만항로였다. 선사들은 4월 말 TEU 당 150달러의 GRI를 실시했다. 바닥권을 맴돌았던 해상운임은 상반기에 모처럼 반등했다.
선사들은 10월 장기연휴를 겨냥한 밀어내기 물량이 적었던 탓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문제는 연휴 이후에도 물량 실적이 예상치를 밑돌았다는 점이다. 상반기 90% 이상의 소석률(선복대비화물적재율)을 기록하며 웃음을 지었던 선사들이지만 3분기 이후 물량이 감소세로 접어들며 화물유치 경쟁이 더욱 뜨거웠다.
선사들은 소석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운임을 낮춰 화물을 유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사들의 소석률은 올해 하반기 65~70% 수준까지 떨어졌다. 선사 관계자는 “상반기 대비 소석률이 약 15% 이상 떨어졌다. 다른 선사들도 상황이 마찬가지”라며 “요즘엔 80%를 채우는 것도 버겁다”라고 말했다.
동남아항로를 취항하는 선사들의 고민은 내년에도 깊어질 전망이다. 선복과잉이 여전히 선사들의 목을 옥죄고 있는 가운데 GRI 성공 가능성이 내년 항로운영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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