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틀랜드항은 인근 시애틀·터코마항이나 LA항보다 수심이 얕고 컬럼비아강을 따라 들어가야 하는 단점을 안고 있습니다. 최대 5000TEU급 선박만 수용할 수 있죠. 하지만 미국의 대형 철도운송사인 BNSF와 UPRR가 부두 내 내륙철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중소형 선대를 주력으로 운용하는 선사에게 아주 매력적인 항만이죠.”
지난 30여년 넘게 포틀랜드항만청 한국대표로 몸담고 있는 김진원 대표는 포틀랜드만의 경쟁력을 부각하며 선사 유치에 골똘한 모습이었다.
미국 오리건주 포틀랜드항은 미 북서안지역에 위치한 중소형 항만이다. 수심이 14m에 불과해 최대 5000TEU급 선박만 접안할 수 있는 일종의 ‘틈새항만(niche port)’이다. 과거 파나막스급 선대를 주력으로 운용하던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포틀랜드항을 적극 이용했다. 하지만 지난 2013년 터미널6을 운영하던 부두운영사 ICTSI와 항만노조 ILWU간 노사분쟁이 장기화되면서 선사들은 속속 포틀랜드항을 떠났다.
김 대표는 “최대 고객 선사였던 한진해운이 떠나면서 포틀랜드는 지난 3년 동안 컨테이너 화물을 취급하지 못했다. 하지만 길었던 노사분쟁이 끝나고 노조도 선사들의 기항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며 “미주노선에 취항 중인 우리나라 국적선사들이 다시 한 번 포틀랜드항의 이점을 되새겨 재기항을 적극 고려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노사관계 악화에 선사 발길 ‘뚝’
포틀랜드향 정기선 서비스는 1980년대부터 시작됐다. “옛 아세아상선(現 현대상선)이 벌크선 데크에 나이키신발을 한 항차당 20피트짜리 컨테이너(TEU) 30개씩 실어 나른 게 시작이었습니다. 1990년대 중반엔 한진해운도 포틀랜드항을 기항하면서, 두 선사가 2000~3000TEU급 선박을 주 1항차씩 배선했죠. 그러다 현대상선이 2004년도에 철수했고, 한진해운은 5000TEU급 주 1항차로 서비스를 개편하면서 전체 물동량의 80~90%를 차지하는 최대 고객선사로 우뚝 섰습니다.”
한진해운은 포틀랜드항이 처리한 전체 물동량의 80~90%를 차지하는 최대 고객이었다. 포틀랜드항은 미 서부항만 중 유일하게 항만청이 항만운영과 하역업을 도맡고 있다. 한진해운과의 공조가 지난 20여년간 순조롭게 이뤄진 배경이었다. 특히 항만청 산하 영업개발팀이 한진해운의 화물유치에 적극 나서면서 한진해운 영업부와 같은 역할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2013년 들어 항만청이 터미널6의 하역업을 필리핀계 부두운영사인 ICTSI와 25년 장기계약을 맺으면서 불협화음이 시작됐다. 노조는 ICTSI와의 이해관계를 좁히지 못해 태업을 일삼았고, ICTSI는 선사에게 하역비용을 터무니없이 인상했다. 양측의 긴장관계가 고조되면서 터미널 생산성은 크게 악화됐다. 하역시설 사용에 따른 각종 이용료가 크게 올랐고, 2~3일 정박 후 다음 기항지로 떠나야 할 선박들이 최대 10일간 묶이면서 정시성에 큰 차질을 빚었다.
포틀랜드의 항만서비스에 만족하던 한진해운조차 2015년 3월, 이별을 선언했다. 점유율이 낮았던 미국계 선사 웨스트우드도 2개월 후 포틀랜드 기항을 중단했다. 한 번 떠난 선박은 돌아오지 않았다. 기세등등하던 ICTSI는 수익성 악화에 못이겨 지난 3월 부두운영권을 항만당국에 반납했다.
“2년 전 미 서안 항만 파업 당시 가장 노사관계가 좋지 않았던 항만이 포틀랜드였어요. 크레인이 움직이려면 전기가 공급돼야 하는데 노조가 전원플러그를 수시로 뺐다 꼽았다 했죠. 노사관계가 악화되다보니 선석 생산성은 최악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 포틀랜드항만청 김진원 한국대표(우)와 김석환 부대표 |
스와이어쉬핑, 내년 1월부터 월 1항차 기항확정
오랜 노사분쟁이 마침표를 찍으면서 포틀랜드항은 다시 한 번 도약을 꿈꾸고 있다. 우선 호주계 선사 스와이어쉬핑이 내년 1월부터 월 1항차 기항을 결정하면서 3년만에 터미널6이 활기를 되찾게 됐다. 오리건주 주지사와 항만청 관계자들이 스와이어쉬핑과 ILWU를 설득해 얻은 소기의 성과다. 스와이어의 기항은 포틀랜드항의 미래를 좌우할 ‘테스트베드’가 될 전망이다.
“스와이어쉬핑이 내년 1월부터 월 1항차 기항을 확정했습니다. 그동안 비협조적이던 항만노조도 그 어느 때보다 스와이어의 기항에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고요. 세미컨테이너(semi-container)선을 운영하는 스와이어는 포틀랜드 소재 다임러사의 웨스턴스타트럭을 선적해 호주로 운송하고 한국에도 들를 예정입니다.”
김 대표는 선사들이 포틀랜드를 눈여겨봐야 하는 이유 중 하나로 부두 내(on-dock) 철도시설을 꼽았다. 포틀랜드항은 갠트리크레인(STS)이 컨테이너를 선박에서 열차로 한번에 하역할 수 있어 타 항만 대비 약 20%의 철송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특히 미국 주요 철도운송사인 BNSF와 UPRR가 내륙운송을 전담하고 있어 인구밀집지역인 미 중서부까지 2~3일 일찍 도착할 수 있다.
반면 인근 시애틀항은 부두와 약 4km 떨어진 철도시설로 화물을 옮겨야 한다. 지형적으로도 포틀랜드항이 시애틀·터코마항보다 아래에 있어 유리하다. 시애틀·터코마발 내륙운송 화물은 모두 포틀랜드를 거쳐야 한다. 양 구간이 서울-부산 거리에 버금가는 만큼 포틀랜드에서 출발하면 물류비용과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5000~6000TEU급 선사에 최적
김 대표의 타깃은 5000~6000TEU급 선대가 주력인 선사들이다. 이들 선대가 미 서안지역 대형 항만보다 포틀랜드를 기항하면 빠른 하역과 우수한 내륙운송망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리건주 화주들도 포틀랜드항에 컨테이너 정기선 서비스가 없어지면서 높은 물류비용에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오리건주에서 시애틀항까지 내륙운송비용은 컨테이너당 약 300~400달러에 달한다. 시간비용도 덤이다.
김진원 대표는 “지난 3년간 항만당국이나 ILWU 등은 비싼 수업료를 지불했고, 깨달은 게 많다”며 선사들의 신규취항을 기원했다.
“5000TEU급 선대를 주력하는 선사들이 초대형 글로벌 선사들과 규모의 경제 싸움을 하기 엔 어려움이 많고, 포틀랜드항은 신규 선사 유치에 절실합니다. 선사들이 전략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최적의 시기죠. 남들과 달라야 살아남는다고 합니다. 니치포트, 포틀랜드항을 주목해주십시오.”
< 류준현 기자 jhryu@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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