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른바 '돈 되는 사업'인 전용선 부문과 항만운영사업을 매각하고 있는 가운데 수익원 처분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신용평가회사에서 나왔다. 다소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두 선사의 구조조정을 주도하고 있는 금융당국과 채권단에서 참고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신용평가는 25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구조조정을 수행할 땐 업황에 따른 실적변동성을 완화할 수 있는 경쟁력 확보에 초점을 맞추고, 핵심 수익기반은 지키는 구조조정이 바람직하다"며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궁극적으로 성공적인 구조조정 효과를 거두기 위해선 재무구조의 구조조정과 그 이후의 영업경쟁력 및 수익성회복력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강교진 연구원은 일본 3대선사가 자국화물 전용선 계약에서 거둔 안정적인 실적으로 부진한 컨테이너선 실적을 만회하고 있는 점을 예로 들며 국내 양대선사가 대규모 구조조정을 이행했음에도 불구하고 유동성 위험이 확대된 건 캐시카우(수익창출사업) 역할을 하는 전용선사업부 등을 매각했기 때문이라고 구조조정 방식을 비판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각각 1445% 1397%의 부채비율(별도기준)을 기록한 2013년 말부터 대규모 자구안을 통해 구조조정 노력을 기울여 왔다. 지난해 말 까지 한진해운 2조원, 현대상선 2조2000억원 규모의 순현금 유입효과를 본 것으로 분석된다. 대대적인 자구계획에도 불구하고 현대상선은 현재 채무재조정을 포함한 자율협약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한진해운 역시 올해 만기 도래하는 차입금의 유동성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고조되고 있다.
두 선사는 재무구조의 자구안 이행 과정에서 사업안정성이 높은 전용선사업부와 터미널을 매각하면서 영업경쟁력 측면에서 기초체력(펀더멘털)이 크게 훼손됐다. 구조조정이 향후 실적가변성을 되레 확대시키는 결과를 초래한 것이다.
보고서는 전용선은 해운사의 대외 신인도에 큰 영향을 주며 불황기에 캐시카우 역할을 해주는 안정적인 사업, 전용터미널은 정기선 사업의 중요한 인프라로 서비스 정시성과 물류 공급망 구축에 중요한 역할을 하며 항비 절감에 기여하는 사업이라고 각각 정의 내리고 양 선사의 구조조정은 사업포트폴리오의 다양성을 포기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매각한 벌크전용선사업(에이치라인해운)과 LNG전용선사업(현대엘엔지해운)은 지난 한 해 각각 880억원 201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현대상선이 에이치라인해운에 매각한 벌크전용선사업은 319억원의 이익을 냈다.
또 한진해운의 항만터미널사업은 416억원, 현대상선이 싱가포르 PSA에 내다판 부산신항터미널은 169억원의 순이익을 지난해 각각 기록했다.
자구계획 결과 양대 선사의 컨테이너선 의존성이 더욱 커졌다는 점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지난해 연결 기준으로 컨테이너 단일사업부문 비중이 92%, 77%에 이른다. 아울러 경쟁이 치열한 구주 및 미주노선 집중도는 2월 현재 한진해운 68% 현대상선 65%(운항선대 기준)에 이르는 등 전용선 사업 매각 등으로 사업 및 항로 구성이 심각한 편중 현상을 보이면서 시황 의존적인 수익구조가 심화되는 모습이다.
반면 유럽선사들은 다양한 항로와 사업 구성, 일본선사들은 벌크전용선 사업부문의 안정적인 수익성으로 각각 컨테이너시장의 높은 변동성을 보완하고 있다.
보고서는 현재의 구조적인 공급과잉은 자구노력으로는 극복하기 힘든 상태에 다다랐다고 평가했다. 각국 정부와 금융권은 기간산업이라는 중요성을 고려해 자국 컨테이너선사 지원을 지속하고 있으며 이 같은 흐름으로 2009년 이후부터 계속된 선복과잉과 시황침체에도 불구하고 한계기업 퇴출과 시장논리에 기반한 공급과잉 해소가 안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결국 양대 선사의 경영난은 개별기업과 채권단뿐 아니라 조선 항만 등 연관 산업을 아우르는 국가차원의 산업정책적 접근이 병행돼야 한다고 보고서는 주장했다. 정부가 두 선사에 대한 지원 시기를 놓치면 향후 지원하려고 해도 의미가 없거나, 천문학적 비용이 소요될 수 있다는 경고다.
장기간 지속된 재무위기와 핵심자산 매각 등으로 펀더멘털과 대외 신인도가 약화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정부의 뒤늦은 대응으로 최근 일고 있는 글로벌 해운시장의 얼라이언스 재편 과정에서 소외될 경우 중장기적 경쟁력 회복이 크게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실제로 역대 최저치에 근접한 컨테이너 시황 등으로 세계 3위 선사인 프랑스 CMA CGM(오션3 소속)이 13위의 싱가포르 APL(G6 소속)을 인수한 것을 비롯해 세계 6위와 7위에 올라 있는 중국 코스코(CKYHE 소속)와 차이나쉬핑(오션3 소속)이 합병하는 등 세계 정기선시장 질서는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보고서는 공급과잉으로 인한 구조적 취약성과 기간산업의 중요성을 동시에 지닌 해운산업에 대한 외부지원이 불가피한 경우 리스크를 부담하면서 지원한 주체가 향후 성과에 대한 과실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구조조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주주와 채권단에 대해선 손실부담 원칙을 투명하고 공정하게 적용하고 대주주의 모럴해저드 문제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강 연구원은 "호황기에 높은 선가로 발주한 선박의 차입부담과 장기용선계약의 고용선료 부담, 수급 전망에 따른 시황개선의 불확실성 등 부실의 원인과 그 후유증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이 없이는 향후 또 다른 부실의 초래와 함께 이해관계자의 더 큰 희생을 재차 요구하게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부적절했던 선대 투자시점과 투자규모가 두 선사의 경쟁력 약화 원인인 만큼 높은 선가 및 용선료 털어내기가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두 선사는 2006~2011년 5년 동안 컨테이너선 36척 벌크선 17척 등 53척의 사선대를 확충했으며 2006~2008년 사이에 벌크 장기용선을 75척이나 늘렸다. 호황기에 집중된 선대투자로 선가와 용선료 측면에서 높은 비용 부담을 안게 된 건 물론이다.
초대형선 미확보에 따른 원가경쟁력 격차도 두 선사가 해결해야 할 과제다. 양대 선사는 원가구조 측면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1만3300TEU 이상의 대형 선박을 단 한 척도 보유하지 못하고 있으며, 더욱이 재무부담으로 투자여력이 부족해 초대형 선박 발주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반면 글로벌 선사들의 대형선 확보 경쟁으로 인해 2016년 2월 전 세계 컨테이너선 발주잔고의 56%가 1만3300TEU 이상의 초대형 선박으로 이루어져 있어 중장기적으로 양대 선사와 글로벌 선사간 원가경쟁력 격차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 이경희 부장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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