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도 러시아 등 신흥 경제대국과 카자흐스탄 등 자원 부국들이 몰려있는 유라시아. 세계인구의 75%인 45억명이 살고 있는 이곳은 전세계의 40%를 차지하는 4492만㎢의 면적을 자랑한다.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60%를 차지하고 세계 에너지 자원의 4분의3이 묻혀 있는 성장 잠재력이 무궁무진한 곳이기도 하다.
북방물류시장은 지리적으로 중국 동북3성, 러시아 극동, 북한 나진선봉 등 두만강 하류지역과 함께 내륙국가로서 출해권 확보가 절실한 몽골을 포함한 지역이다. 이 지역을 블라디보스토크와 모스크바를 잇는 9297km의 시베리아횡단철도(TSR), 롄윈강과 우루무치, 알라산커우를 잇는 4018km의 중국횡단철도(TCR), 만저우리와 자바이칼을 잇는 7700km의 만주횡단철도(TMR), 톈진과 울란데를 잇는 1110km의 몽골횡단철도(TMGR)가 연결하고 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전 세계 3자물류시장 규모는 2020년에 약 8.1조달러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중 북방물류 시장을 포함한 아시아 물류 시장은 약 2.8조달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자유무역협정(FTA) 확대, 아시아 중산층 소비 증가, 제조업 부가가치 상위 15개국 중 아시아 5개국을 포함한 세계 10대 항만이 모두 아시아에 소재하는 등 기본적으로 아시아 물류시장의 중요성이 날로 증대되고 있다.
이런 유라시아 거대시장을 두고 중국, 러시아, EU 등 많은 나라들이 경제권을 주도하기 위해 각축을 펼치고 있다. 러시아는 신동방정책으로 극동러시아개발과 TSR현대화를 추진 중이고, 중국은 신실크로드 경제권으로 일대일로 정책을 펴고 있다. EU도 동유럽국가회원국을 확대해 유럽통합철도망을 구축하고 있다.
여기에 우리나라도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구상해 추진 중이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한반도와 러시아 중국, 유럽을 철도로 연결해 교통 물류 에너지 인프라 구축, 거대 단일시장을 형성하는 것이다. 특히 북방의 초입인 극동지역은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핵심 거점이자 유럽과 아·태지역간 교통·물류 중심지로 주목받고 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북한에 대해 직간접적 개방을 요구함으로써 한반도 통일의 초석을 닦는다는 정치적인 의미도 담고 있다. 하지만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는 2013년 발표 이후 뚜렷한 성과를 보이진 못했다. 유라시아 지역의 인프라 구축상황과 관련국과의 협력 가능성을 점검하는 차원에서 나진-하산 간 석탄 시범운송사업이 진행됐을 뿐이다.
지난해 11월 현대상선이 중국선박을 이용해 러시아 석탄 4만t을 적재하고 북한 나진항으로부터 포항까지 시범운송을 완료했으며 올해 4월에는 현대상선과 유니코해운이 참여해 러시아 석탄 13만t을 나진항에서 광양항까지 수송 한 바 있다.
유일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4월 열린 유라시아 교통·에너지 국제 컨퍼런스에서 “유라시아는 물류흐름이 원활하지 않아 많은 진출 기업들이 높은 물류비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그동안 교통인프라 사업을 추진했지만 제도 통합의 어려움으로 가시적인 성과가 없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물류 네트워크 구축 긴요
최근에는 ‘유라시아 실크로드 친선특급’ 사업으로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에 문화 교류 측면에서 다가가고 있다. 민관이 공동으로 유라시아 협력을 강화시키기 위한 자리도 열리고 있다. 지난 8일 롯데호텔에서는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주최로 민관 유라시아 포럼이 열렸다. 유라시아 국가들의 산업협력과 다자주의적 접근방식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는 자리였다.
이날 김성귀 한국해양수산개발원장은 “유라시아 지역은 교통 물류 인프라가 곳곳에 단절돼 있고 투자환경은 여전히 미흡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현실적 장애요인보다 유라시아의 무궁무진한 발전 잠재력을 생각한다면 유라시아는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라고 말했다.
김영석 해양수산부 차관은 기조연설을 통해 유라시아 국제물류 네트워크 구축으로 주목해야 할 3가지로 북극항로와 북방물류시장, 남북 해운물류 협력을 꼽았다.
1만2700km의 북극항로에 한국기업들이 잇따라 도전하고 있다. 2013년 현대글로비스가 시범운항을 했으며 올해 7월 CJ대한통운이 자사 선박으로 아랍에미리트와 러시아 야말 반도를 잇는 항해로 북극항로 상업운항의 디딤돌을 놓기도 했다.
해운물류 루트 개척에 대한 기대감에도 불구하고 실제 북극항로 이용 상황은 녹록치 않다. 우리나라 북극항로의 이용은 벌크화물 수송으로 한정돼 있고 북극해 활용기간 제한, 쇄빙선 비용부담, 북극항로 운항경험 부족 등의 문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북극항로 개발은 전략적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 게다가 러시아 캐나다 노르웨이 등 북극해 연안국들과의 긴밀한 해운 협력 방안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북극항로 구간의 대부분을 관장하고 있는 러시아가 북극항로 수송 인프라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해 우리나라도 관련사업이 어떤 형태로든 참여하는 방안을 심각하게 고민해야한다.
김 차관은 “북극항로를 생각하면 기후변화 측면에서는 착잡하기도 하지만 실제로 벌크화물이 무르마스크와 극동지방으로 이미 연중 운항되고 있고 2030년쯤에는 정기선 운송까지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우리나라도 선도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다. 이어 “시베리아 원유가스 등 자원운송에 대한 우리 선사의 참여를 적극 지원하는 등 북극항로 활성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라시아 국제물류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북방지역은 선점해야할 물류시장이다. 동북아의 한·중·일·러·몽골간 무역 합계는 7.6조달러로 세계 무역액의 41%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높은 성장 잠재력을 기반으로 한반도의 두만강 유역과 중국의 동북3성 러시아 극동지역 등은 획기적인 변혁의 시기를 맞고 있다.
중국은 창지투 선도구 개발계획을 선정하고 도로 정비를 비롯해 훈춘과 나진을 잇는 신두만강대교를 건설하고 있으며, 러시아도 극동개발부를 구성하고 각종 정책을 속도감 있게 설치하고 있다.
동북아 유라시아 주변국들이 각종 정부 채널을 통해 통관 애로사항을 해소하고 관련국 정부인사 학계 등과 민간 네트워크 구축이 확대될 수 있도록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두만강 유역의 정치적 지리적 중요성에 비춰 우리기업의 물류비 저감과 통일 대비 등 정부 또는 공공기관의 한국전용물류기지 조성과 같은 공공사업 투자를 검토해나가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 지난 8일 롯데호텔에서 열린 민관 유라시아 포럼에서
해양수산부 김영석 차관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남북 해운물류 협력이 전제조건
하지만 이런 거대 시장 진출 기회에도 불구하고 북방물류시장이 유라시아 경제권의 동쪽 거점이자 대륙의 관문으로 자리 잡기에는 장애요인을 안고 있다. 이 지역을 둘러싼 국제 역학관계 불안정과 유라시아 물류네트워크의 잃어버린 고리, 바로 북한때문이다. 북한을 개방으로 이끌어내는 것이 실질적인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풀어야 할 숙제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북 해운물류 협력이다.
김영석 차관은 “현재 2010년에 행해진 5.24조치로 인해 직접적인 남북교류가 제한되고 있는 현실적인 여건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의 정치적 위험을 완화하는 데는 다자간 협력서를 만드는 게 필요하다”며 “이러한 관점에서 최근 주목할 것이 광역두만강개발계획(GTI)의 국제기구화 추진”이라고 강조했다.
2005년부터 한국과 중국 러시아 몽골이 참여한 정부 간 차관급 회의에 불과했던 GTI가 2010년에 다자국제기구로 승격되고 활동이 본격화되면 중국 주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과의 연계 가능성도 높아져 GTI 대상 지역인 중국 동북3성 북한 나진선봉, 러시아 연해주 몽골 동부지역, 한국 동해안에 대한 다양한 투자개발 프로젝트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GTI가 재원을 확보해 두만강 하구 개발을 본격화하고 북한에 개방과 협력의 손짓을 계속한다면 2009년 핵실험을 계기로 GTI를 탈퇴한 북한도 자국의 노동력 수출 외화 수입 등 자국 경제력 강화를 위해 GTI 재가입을 추진하고 이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실현에 중요한 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해수부는 북한을 둘러싼 국제환경 변화를 주시하며 남북 해운물류 네트워크 구축을 위해 납북한 해상항로 상호개방, 주요거점항만개발 및 인프라 물류 조성 해상교통 시설 현대화와 중점과제로 선정하고 남북관계 변화에 대비하고 있다.
김 차관은 “광활한 유라시아대륙에 물류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은 한 개 부처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작은 성과라도 만들어내 다각적인 노력과 열정을 바탕으로 유라시아 대륙의 물적 인적교류가 확대해야한다”고 말했다.
북방물류 시장 침체 장기화 물류기업 ‘고군분투’
정부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의 청사진은 밝지만 현실은 암담하기만 하다. 세계 경기 침체로 자원수요가 줄고 환율이 폭등하면서 2년째 침체에 빠져든 몽골과 서방 제재와 루블화 가치 하락으로 1년째 물동량이 급감한 러시아의 쌍끌이 침체는 이웃국가인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중앙아시아까지 번져 북방물류시장은 꽁꽁 얼어붙었다.
2013년 하반기 몽골의 평균 환율이 폭등했다. 차츰 환율 안정을 찾을 것으로 보였던 몽골 환율은 2014년 더 큰 폭으로 치솟았고,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1달러대 1980투그릭까지 환율이 오르면서 몽골의 대형 프로젝트 관련 수출은 거의 ‘올 스톱’된 상태다. 건설경기 침체가 지속되면서 건설 중장비와 기계류 수출물량이 급감했으며 현지 정부와 기업의 대금지불 능력이 어려워지자 진행되던 프로젝트도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업계에 따르면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성장률을 보여 왔던 대(對) 몽골 수출은 투그릭 가치 하락 이후 평년대비 50%로 줄었다. 몽골 수출에서 단골 골칫거리였던 몽골횡단철도(TMGR) 적체로 인한 운송 지연은커녕 현재 물류기업들은 화물이 없어 못 싣는 형편이다. 몽골 시장 부진은 올해까지 이어질 것으로 보여 업계는 더욱 애를 태우고 있는 실정이다.
물류기업들은 몽골 외에 다른 지역으로 눈을 돌리고 있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주변 국가들의 상황도 여의치 않다. 지난해 하반기 러시아는 루블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체감경기가 악화됐다. 서방의 경제제재가 장기화되면서 수출에 차질이 빚어졌고 기업들의 해외 자금 조달이 막히면서 타격을 받았다.
현재 한러항로의 수출물량은 전년대비 반 이상 급감했다. 업계에 따르면 9월 한국-극동러시아(블라디보스토크, 보스토치니) 물동량은 주당 2700TEU(20피트컨테이너)를 기록했다. 작년 9월 주당 6천TEU를 처리하던 것과 비교해 반 토막 이상 급감했다.
러 경기침체로 수출물량 ‘반 토막’ 지속
코트라에 따르면 극동러시아 9개 지역(연해주, 하바롭스크주, 사할린주, 아무르주, 캄차카주, 추코트카주, 마가단주, 유대인자치주, 사하공화국)의 2분기 수입총액은 전년동기대비 42% 줄었다. 극동러시아지역의 2분기 수출은 110억달러를 기록해 전년동기대비 18% 감소했으며, 수입은 29억8472만달러로 전년동기대비 42% 감소했다.
극동 러시아 중 나름 경제규모가 큰 편인 연해주와 하바롭스크주도 전년 동기 대비 50% 가까이 교역 규모가 하락했다. 2분기 극동러시아의 대한국 수출 교역은 전년동기대비 31.1% 감소한 29억5407만달러를 기록했으며 극동러시아의 대한국 수입은 전년동기대비 61.3% 감소한 2억1696만달러를 기록했다.
특히 블라디보스토크 보스토치니 등을 대표도시로 두고 가장 많은 수입물량을 소화하는 연해주지역의 대한국 수입은 1억2836만달러를 기록하며 전년동기대비 72% 감소했다.
독립국가연합(CIS)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주 소비대상인 러시아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자동차 제도업체들과 현지 가전공장 등 생산 공장 출하를 줄였고 자동차 및 가전 산업이 이미 최고점을 찍고 내려오는 시기에 접어들면서 수출물량이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업계에 따르면 러시아 침체가 적어도 올 연말까지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일부 업체들은 러시아 담당 인력을 다른 부서로 배치하는 등 경영난 타개를 위해 최대한 몸집을 줄이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가 주력 운송시장인 포워더들은 러시아 루블화 약세에 직격탄을 맞았다.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한 루블화 가치에 전년동기대비 20%, 심한 곳은 3분의1 토막까지 물동량이 곤두박질친 업체들이 속출했다. TCR 운임 인상으로 TSR로 넘어온 중앙아시아 화물도 러시아 경기 침체를 만회하지 못했다.
북방물류 업체 관계자는 "롄윈강과 칭다오에서 TCR을 통해 중앙아시아로 가는 한국발 수출물량이 전년대비 3분의1로 줄었다”며 "운임인상으로 TCR 이용화물이 감소한데다 러시아 경기침체가 중앙아시아 지역까지 이전돼 CIS지역 현지 수입물량이 줄어든 영향도 있다"고 설명했다.
올해를 두 달여 남짓 남겨두고 유라시아지역의 대외환율 방어 실패와 현지 시장 침체가 또 해를 넘겨 장기화 될 것으로 전망돼 북방물류 기업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 정지혜 기자 jhjung@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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