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부터 해외 플랜트 사업과 중량화물 수송업은 업계의 ‘블루칩’으로 칭송받으며 승승장구해왔다. 세계 시장 환경을 반영해 지난 1일자로 한국조선협회는 협회명을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로 변경하기도 했고 국가적으로도 해양플랜트 분야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국내 상위 9개 플랜트 EPC사들의 올해 플랜트 수주 목표 금액은 총 68조5천억원이다. 이 중 해외 플랜트 수주 목표액은 60조원으로 책정하고 있다. 이는 작년 실제 수주액에 비해 25% 이상 높은 수준이다.
또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플랜트산업협회는 올 1분기 국내 플랜트업체의 해외플랜트 수주실적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7% 증가한 118억달러를 기록했다고 4일 밝혔다. 특히 이 중 유럽지역이 돋보인다. 1분기 유럽의 수주실적은 37억79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2678.7%나 급증했다.
대우조선해양이 수주한 26억7000만달러 규모의 대형 해양플랜트와 현대중공업이 수주한 11억달러 규모의 가스 생산 플랫폼의 영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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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전반적인 중량물 운송시장 동향을 들여다보면, 운송사들의 시장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얼마 전 CJ대한통운은 중량물 전용 자항선 <코렉스 에스피비>(KOREX SPB) 1, 2호를 인수했다. 그리고 영국 출신 중량물 전문 포워더인 펜타곤프레이트서비스가 올 1월부터 한국법인을 열었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독일의 리크머스리니에는 1만9100t급 중량물운반선 <퍼시픽윈터>호를 용선해 이름을 <리크머스첸나이>로 바꾼 후 시장에 투입시킨다고 지난 9일 밝혔다. 도크와이즈는 1월 자회사 도크와이즈뱅가드로부터 전 세계에서 가장 큰 중량물 화물선을 2억4천만달러에 인도받았다.
이 상황을 언뜻 보면 플랜트 및 중량물 운송 시황은 장밋빛이다. 하지만 국내 EPC(Engineering, Procurement & Construction)사나 선사들의 반응은 그렇지 않다.
중량화물 수송업을 선박 형태로 세분화하면 크레인을 이용해 화물을 선적하는 LO-LO(Lift on Lift off)선 시장과 플랫 바지선이 쓰이는 RO-RO(Roll on Roll off)선, 반잠수식 선박을 이용하는 FO-FO(Floating on Floating off)선 시장으로 나눌 수 있다. LO-LO선 방식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공급량을 보유하고 있어 육상 플랜트 물량 수송의 기본이자 전통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다.
헌데 이 LO-LO 운송시장이 심상찮다. LO-LO 시장에선 점보쉬핑, 빅리프트, SAL을 필두로 BBC차터, 리크머스 등 유럽계 선사가 전통적 강자다. 국내에선 현대상선이 가장 오래된 LO-LO 운송사로 자리매김 하고 있고 뒤를 이어 STX팬오션이 2011년부터, SK해운이 지난해부터 화물수송에 나섰다.
특히 아시아에서는 현대상선과 STX팬오션이 공급의 70%를 담당하고 있을 정도로 입지를 굳혔다. 문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공급이 넘쳐난다는 점이다.
‘공급이 수요 20% 웃돌아’ 불균형 심각
2006~2007년부터 중동과 유럽 등지에서 육상 플랜트 발주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선사들도 덩달아 선박을 대량으로 발주했다. 업계 관계자는 2009년을 기준으로 그 전보다 LO-LO 선복량이 2배가량 늘어났다고 했다. 3월 현재 전 세계에 LO-LO선이 350여척 존재한다. 이 중 BBC차터는 중국 조선소에 대량 발주를 한 결과 150여척을 보유하고 있다.
LO-LO 시장에서 공급과잉과 그로 인한 휘청거림이 감지된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독일의 벨루가가 지나친 선대 확장으로 2011년 파산했지만 그들이 보유했던 60여척의 선박은 시장에 그대로 남아있다. 2011년에는 SAL이 케이라인에 경영권을 넘기는 한편 지난해에는 덴마크의 스캔트랜스가 미국의 인터마린에 합병되기도 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플랜트 발주도 생각보다 시원찮다. 발주 건은 많다 하더라도 EPC사도 그 수가 점점 늘어나 경쟁이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삼성엔지니어링, 현대건설, 대우건설 등은 전 세계적으로도 톱클래스에 꼽히는 EPC사로 정평이 나있다. 하지만 이들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
“쉽게 말해 우리나라의 건설업체는 다 해외플랜트 EPC사라고 봐도 된다”고 업계 관계자는 언급했다. 현대건설, 대림, 한화건설, SK건설은 물론 삼성그룹 내에서도 삼성물산과 삼성엔지니어링이 따로 있고 롯데건설까지 EPC 사업에 뛰어든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외국계 EPC사와 경쟁을 통해 수주를 따내야 하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끼리도 피 튀기는 전쟁을 하고 있는 것. 가까운 나라 일본을 보면 EPC사로 JCC, 시오다, 도요 정도만 꼽을 수 있고 이들은 각각 분야가 특화돼 있어 서로 부딪치는 일이 없다고 한다. 상황이 이러니 국내 EPC사가 자랑스럽게 해외 발주를 따와도 뚜껑을 열어보면 저가수주, 적자수주가 태반이다.
이윤을 남길 가능성이 낮은 채 수주를 해 오니 국내EPC사 입장에서는 비용절감에 목 맬 수 밖에 없는 실정. 그 중 가장 먼저 눈에 보이는 물류비 인하에 혈안이 된다. 전체 투자비용에서 물류비는 10% 정도고 이 중 해상 물류비는 4%가 채 안된다. 이를 더 줄이니 선사 입장에서는 곤욕스럽기 그지없다고.
일부 포워더의 물량 독식이 ‘화 키워’
업계 관계자들은 “요즘처럼 공급이 많고 수요가 없던 적은 처음”이라고 입을 모은다. 공급이 수요보다 20%는 더 많다니 이 폭을 줄이기가 쉽지 않다.
특히 올 초 가장 배고프다고 선사들은 원성이다. 지난 2009~2011년 사이 수주된 아랍에미리트(UAE) 루와이스 정유생산 확장사업(RRE 프로젝트), 사우디 와싯, 샤이바, JERP 프로젝트, 오만 바르카3 프로젝트, 인도네시아 포스코일관제철소 등이 지난해 말 혹은 올해 초 대부분 마무리 된 시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해 중에는 하반기에나 수주 건이 예고돼 있기 때문에 선사들에게 지금은 일종의 ‘춘궁기’라고 할 수 있다. 올 하반기 혹은 내년에 예고된 프로젝트 중에 가장 선사들이 입맛을 다시고 있는 건 사우디 지잔(자잔. Gizan) 프로젝트, 얀부 담수화프로젝트, 라빅 프로젝트 정도다.
라빅 프로젝트 개발지역 전경 |
국내 3사 모두가 이 물량을 수송하기 위해 눈에 불을 켜고 준비 중이다. 특히 GS건설이 수주한 라빅 프로젝트는 이번 달 중 입찰이 이뤄지기 때문에 선사들은 초긴장 상태다.
또 지잔 프로젝트는 총 70억달러가 투자되는 프로젝트로 가뭄 중 단비처럼 갑자기 시장에 나와 선사들의 환영을 받고 있다. 총 70억달러 중 현대중공업, 한화건설, SK건설이 30억달러를 차지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하지만 이조차도 선사들에겐 ‘희망고문’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 이뤄낸 적자수주이기 때문에 ‘운송비 후려치기’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를 포기할 수도 없는 실정이라 선사 간 진흙탕 싸움이 눈에 선하다.
중동 이외 지역으로는 스코틀랜드 셰틀군도의 클레어 프로젝트, 베트남의 NSRP 석유화학 플랜트 프로젝트, 몽즈엉 화력발전 프로젝트, 태국의 UHV 플랜트 프로젝트가 있고 호주의 로이힐 프로젝트 등이 있다.
국내 선사들은 EPC사의 운송비 절감에 한 번 울고 포워더의 낮은 입찰가격에 두 번 운다. 특히 몇 년 전부터 중량물 물류입찰에서 승승장구해 국내 수주 건의 70%를 보유하고 있다는 A사를 선사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고 있다. 한때 A사보다 더 ‘잘나갔던’ 모 중량물 포워더도 결국 사라졌다. A사가 보유하지 않은 나머지 30%를 물량으로 수많은 포워더가 근근히 연명하고 있을 뿐이다.
A사는 ‘규모의 경제 논리’를 앞세우고 있지만 선사들은 A사가 상대적으로 많은 물량을 보유했기 때문에 낮은 단가로도 ‘덤핑’이 가능하다고 한다. 중요한 건 선사도 배를 놀릴 순 없으니 저질운임에도 울며 겨자 먹는 심정으로 수송을 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이런 낮은 운임이 결과적으로 ‘표준운임’처럼 받아들여져 다음 입찰가의 기준이 돼버린다. 서비스 질을 고려한 알맞은 운임이 기준이 아니라 ‘전에 낙찰된 그 운임’이 기준이라는 것.
이 같은 상황을 떨쳐내고자 STX팬오션은 얼마 전 삼성엔지니어링과 직계약을 맺은 바 있다. 고착화 된 EPC-포워더-선사 3단 구조가 쉬이 깨지진 않겠지만 직계약이 합리적인 수단 중 하나임에는 틀림없다. 이와 관련해 일각에서는 “포워더가 가격을 좌지우지할 게 아니라 EPC사와 선사 사이에서 코디네이터 역할 정도를 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라고 꼬집는다.
선사들 시장 부진에 공급 축소 ‘맞대응’
국내 3개 선사들은 저마다의 특징을 갖고 시장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현대상선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전문가 수준의 화물 엔지니어들의 감수로 선적을 진행하는 화물 엔지니어링 시스템을 제공하며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STX팬오션의 경우 벌크선 운영으로 다져놓은 탄탄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우리나라 포워더에만 국한하지 않고 그 시선을 중국 등 해외로 돌리고 있다.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브레이크벌크 2013’에 참여한 것도 이 같은 입장을 보여준다.
SK해운은 이제 막 중량물 수송에 뛰어들었지만 타 선사에 비해 저렴한 가격에 적은 선대를 꾸리고 있으면서 앞으로 다가올 호황기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불황에는 장사가 없는지 3사 모두 공급을 줄이는 건 똑같다. 현대상선은 용선받은 선대 중 일부를 대선을 줬고 STX팬오션은 용선 재계약 시기가 도래하자 선대 반납을 택했다. SK해운도 계획대로라면 올해 8척의 선박 인도를 계획하고 있었으나 모두 연기한 상태다.
선사들을 더 힘들게 하는 건 이게 다가 아니다. 중국에서는 최근 ‘자화자운(自貨自運)’이 이슈로 떠올랐다. 자국의 화물은 자국이 운송한다는 뜻이다. 이 개념은 중국 중앙 정치판에서 거론될 정도니 운송에 대한 자국 우선주의를 중시하는 의중을 보여준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유럽에서는 중량물 운송 선사들끼리 얼라이언스를 조직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런 장치가 전혀 없다.
국내 EPC사들은 세계적으로 내로라는 수준이지만 운송에선 역시 ‘비용’을 가장 중시한다. 한국플랜트산업협회는 국내 EPC사들과 운송사들을 대상으로 ‘상생’이라는 주제 하에 자리를 마련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EPC사들은 ‘같은 값이면 국내 선사가 물론 좋지만 가격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한다고 선사 관계자는 전했다.
선사 스스로도 ‘내 코가 석자’ 입장이라 그들끼리의 경쟁을 피할 길 없고 여차하면 카르텔로 낙인 찍혀 문제가 될 수도 있어 의견을 주고받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선사들은 한 목소리로 “일단 경쟁 과열과 수준 낮은 거래가 굳어지면 그 고리를 끊기 어려워 결과적으로는 연쇄반응처럼 운송사와 포워더, EPC사, 제조업체 모두가 힘들어진다. 이는 국가적으로도 막중한 손해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며 “플랜트 산업이 우리나라에서 중요한 만큼 그를 뒷받침하는 업계의 고충에 좀 더 귀 기울여 주길 바란다”고 말한다. < 김보람 기자 brkim@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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