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우리나라의 연간 무역규모는 1조달러를 돌파했다. 한국 경제를 수출주도형으로 이끈 1962년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이후 50년 만이다. 무역 1조달러의 달성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되고 있는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속에서 한국무역의 저력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무역 1조달러 달성은 무역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는 물류기업들에게도 큰 경사임엔 분명하다. 하지만 국제물류업계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교역량의 증가가 물류기업들의 실제 수익 증가로 이어지지 않고 있는 까닭이다.
국제물류주선업체(포워더)들은 지난해 실어 나른 수출물량이 늘어났지만 화물수송운임은 낮아져 매출액 신장이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경기가 나아지기는커녕 유로존 위기가 찾아오면서 경기 한파는 오히려 깊어지고 있다. 수출물량이 줄어든데다 화주와 직접 계약하는 선사, 외국계포워딩을 제외하면 국내포워더가 취급하는 화물 자체물량도 적다보니 기초체력이 점차 약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운임인상 적용 FCL-LCL 시각차
더구나 새해를 맞아 선사들이 그동안 바닥까지 내려간 원양항로의 해상운임을 끌어올리기 시작하며 화주와 선사의 중간에 껴 있는 국제물류주선업체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아시아-구주간 해상운임은 20피트 컨테이너(TEU)당 200~250달러, 미주항로 운임은 40피트 컨테이너(FEU)당 400달러 인상됐다. 중남미항로에선 한 달 새 1천달러 이상 치솟았다. 이 항로 선사들은 새해 들어 TEU당 500~600달러의 운임인상을 적용했다. 지난해 연말을 앞두고 TEU당 600달러를 인상한 이후 한 달 만이다.
A 국제물류주선업체 관계자는 “선사들의 운임은 선복에 따라 결정되다보니 예측하기가 쉽지 않아 연간계약을 맺는 포워더는 타격이 크다”며 “지난 한해도 어렵게 꾸려왔는데 연초부터 해상운임이 대폭 인상되면서 올 한해 시황도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사업계획도 없이 한해를 시작한 포워더도 많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시황변화에 수치화된 계획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매출액 몇 % 증가’ ‘수익창출’이라는 목표치만 가지고 1년을 버텨야한다. 특히 대기업 물류자회사들이 물류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어 향후 전망은 더욱 불투명한 현실이다.
수익성이 악화되자 포워더가 선사들의 운임인상분을 화주에게 전가하지 못하는 상황도 예전일이 됐다. 대부분의 포워더들은 이번에 오른 운임을 화주에게 적극적으로 적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것도 FCL화물(만재화물)에 한해서다. FCL은 컨테이너 1개 당 운임이 계산되는 컨 화주에게 운임인상분을 전가할 수 있는 명분이 뚜렷하다.
반면 LCL(소량화물) 시장의 경우 2~3달은 지나야 비로소 오른 운임이 화주들에게 적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FCL은 화주에게 운임인상분을 당당히 요구할 수 있지만 LCL은 운임 계산이 애매해 운임인상에 대한 화주들의 저항이 크다.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애정남’(애매한 기준 정하는 남자)이 필요한 셈이다.
LCL화물은 한 컨테이너에 보통 50~55CBM을 적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적재 노하우나 화물 품목에 따라 실제 적재되는 갯수는 달라진다. FCL 기준으로 오른 운임을 CBM 단위로 계산해 청구하기 어려운 이유다.
게다가 CBM당 인상 폭이 크지 않은 것도 운임회복에 걸림돌이다. 예를 들어 TEU당 200달러가 인상됐을 경우 한 컨테이너에 50CBM을 싣는 포워더의 경우 CBM당 4달러를 인상해야 하는데 단위 당 인상분이 크지 않다보니 화주들의 할인요구에 인상분 적용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LCL혼재(콘솔)와 FCL수송을 함께 진행하는 포워더 관계자는 “몇몇 대기업 화주들이 서비스에 대한 수수료명목으로 받고 있는 조작료조차도 왜 받느냐는 식으로 나온다”며 “포워더가 땅 파서 장사 하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운임인하를 하라며 닦달한다”며 물류를 이해하지 못하는 화주들의 이기적인 행태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출혈경쟁에 시장 안정화 ‘뒷전’
가장 큰 문제는 LCL운임 출혈경쟁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LCL콘솔 시장은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일부 업체가 파격적인 수출운임을 제시해 부산-중국 간 운임은 바닥이라고 여겼던 마지노선마저 무너지고 말았다. 현재 마이너스 수십달러의 운임이 콘솔 시장에 출현한 상황이다. 한 콘솔업체 관계자는 말한다. “포워딩 시장에선 오늘 거래했던 곳이 내일은 거래를 끊을 수 있다.” 치열한 덤핑운임경쟁을 벌이는 콘솔시장을 방증하는 말이다.
서류발급비(doc fee)만 해도 2년 전엔 콘솔사들마다 1만9천원을 받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지금은 이마저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업체들이 늘고 있다. 서류발급비를 받을 경우 다른 부대비용을 할인해주는 업체도 눈에 띈다.
가장 심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지역은 중국 상하이와 홍콩이다. 많은 물량에도 불구하고 ‘남는 것’ 없는 시장이다. 수출운임은 마이너스 이하로 내려간 지 이미 오래다. 중국에서 한국으로 보내오는 수입운송시장은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중국 콘솔업체들은 한국에 화물을 보내기 위해 파격운임을 뿌리고 있다. 이 마이너스 운임은 결국 환급금으로 상쇄되는데 이를 부담하게 되는 것은 결국 한국의 수입화주일 수밖에 없다.
시황이 안 좋다 보니 시장 안정화를 위해 콘솔업체 실무자들이 매달 갖던 모임도 흐지부지됐다. 모임이 이뤄진다 해도 과도한 덤핑 영업에 대한 시정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있다. 대형 콘솔업체 한 관계자는 “수익이 점차 안 좋아지다 보니 자정의 노력을 하라고 권하기도 힘든 수준이다. 업계가 함께 시장을 개선해 가는 것보다 내 한 몸 추스르는 게 더 큰 관심사가 됐다”고 말했다. ‘내 코가 석자’다보니 상생의 미덕은 저만치 멀어졌다.
출혈경쟁이 심해지자 수익이 안 나는 지역의 거래를 줄이는 업체들도 출현하고 있다. 중국이나 동남아 등 마이너스운임이 심각한 지역보다 유럽 미주지역 비중을 늘려 수익성을 개선하는 전략이다. 일본지역도 수출화물에 대한 환급금문화가 없어 국제물류업계에선 ‘청정지역’에 속한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이렇게 볼 때 환급금의 뼈대가 되는 창고보관료가 지난해 인하된 건 국제물류시장에선 큰 성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보관료 인하를 두고 물류시장 구성원들간 시각차가 엿보인다. 또 마이너스운임은 더욱 심해져 실효성 논란도 제기된다.
양산세관은 지난해 7월부터 양산지역 창고보관료 상한선을 인하해 장기화물 보관료를 낮췄다. 일일 할증료가 인하되면서 한달 보관료는 38%까지 줄었다. 그동안 창고업체들이 보관료가 5만원 이하인 최소량화물(미니멈 카고)에 대해 작업료 명목으로 받아오던 최소보관료도 없앴다. 현재 창고업체들은 보관료 가이드라인을 성실하게 준수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양산세관 관계자는 “처음 2009년 가이드라인을 시행하고 나서도 창고보관료가 높은 수준이라며 항의하는 화주들이 있었지만 재조정이후에는 화주의 창고보관료 관련 민원이 없었다”고 말했다. 가이드라인 조정으로 화주의 불만이 쏙 들어간 것이다.
반면 창고업체들의 불만은 더욱 높아졌다. 창고보관료 가이드라인 시행으로 수익이 크게 줄어든 까닭이다. 창고업 포기를 선언한 경우도 늘고 있다. 양산세관에 따르면 양산지역 창고운영업체는 2010년 67곳에서 지난해 61곳으로 6개 업체가 줄었다. 부산 신항으로 물류가 대거 이동하면서 창고업체가 따라 이전한 측면도 작용했지만 창고보관료 상한선 인하가 창고업체들의 사업 철수를 부추겼다고 업계는 지적한다.
B 창고업체 관계자는 “LCL보관료 상한선만 정할게 아니라 FCL보관료는 하한선도 정해줬으면 좋겠다”며 “수익을 내는 곳은 상한선을 만들어 제재하고 경쟁이 심한 FCL은 하한선을 만들어 놓지 않아 화주들만 좋은 제도가 되고 있다”고 정부의 화주편애에 일침을 가했다.
자가 보세창고를 운영하는 C 콘솔업체 관계자는 “포워더와 창고업체간의 거래를 세관이 나서서 제재한다는 것은 더 큰 문제를 야기하는 꼴”이라며 “창고보관료 상한선은 낮아졌지만 환급금은 오히려 늘어 가이드라인 제도 도입의 실효성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론상으로는 창고보관료 상한선으로 중국에서 수입하는 LCL화물에 대한 환급금이 줄어들어야 하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환급금은 크게 늘었다. 환급금은 가이드라인 조정 초반에만 잠시 줄었다가 이내 다시 늘어났다. 물류기업들이 창고보관료를 통해 조성하던 환급금을 다른 경로를 통해 여전히 만들어 내고 있다는 얘기다.
일부 중국파트너는 수입화물에 대해 B/L 발행 당 전산 입력차지를 붙여 시스템차지라는 명목을 만들어 부과하기도 하는 등 창고보관료에서 얻지 못하는 부분을 채우고 있다. 화주들 입장에선 수입 LCL화물에 대해 수입창고보관료 상한선이 정해져 운임거품이 빠졌다고 여기지만 창고운임이 줄어든 만큼 다른 부대비가 추가되고 있는 것이다. < 정지혜 기자 jhjung@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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