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해운업계엔 크게 3가지의 운임지수가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다. 영국 발틱해운거래소의 부정기선운임지수(BDI)를 비롯해 하우로빈슨사의 컨테이너용선지수(HRCI), 중국 상하이항운교역소의 컨테이너운임지수(CCFI)다.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해운지수 3개 중 2개가 영국에서 발표되고 있다. 하드웨어적인 측면에선 이제 해운산업의 변방이 돼버렸지만 선박거래나 해운정보 등의 소프트웨어를 무기로 아직까지 세계 해운업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영국의 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고민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우리나라는 조선 세계 1위, 해운 세계 5위의 해운강국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해운산업을 측면 지원하는 소프트웨어에선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해운정보제공이나 선박거래 선박관리업 등의 실태는 해운선진국과 비교해 많이 뒤처져 있는 형편이다.
해운거래정보센터(MEIC) 염정호 센터장(한국해운중개업협회장)은 지난 22일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을 해운 소프트웨어 강국으로 육성시키기 위한 구상을 풀어냈다. 독창적인 해운시황 리포트 발간과 해운운임지수 개발에 이어 궁극적으로 해운거래소를 설립한다는 계획이다. “우리나라 해운기업들은 현재 직접 해운선물 거래를 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해운기업들의 실익을 끌어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던 차에 부산에서 해운거래소를 설립한다고 해 참여하게 됐다. 지금까지 선주협회나 정부 등 여러 기관들이 해운거래소나 사이버거래소 등의 얘기를 꺼냈지만 모두 탁상공론으로 끝나고 말았다. 난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
해운·조선 중심은 아시아
염 센터장은 세계 해운정보 유통이 유럽에 의해 움직이고 있는 왜곡된 구조를 바로잡기 위해 해운거래소 설립을 추진하게 됐다고 말했다. “세계 조선과 해운의 중심지는 유럽·미국에서 아시아로 넘어왔다. 조선은 한국과 중국, 일본 3국이 세계 시장을 석권하고 있다. 해운 역시 세계 5위 해운국에 한중일이 모두 포함돼 있다. 2003년 이후 5년간 해운 호황도 중국을 비롯한 극동지역 때문이었다. 하지만 해운과 관련된 주요 소프트웨어는 사실상 영국 런던을 비롯한 유럽에서 갖고 있다. 우리나라가 세계 1위 조선국이지만 관련 정보는 클락슨에 넘어가고 우리가 (클락슨 보고서를) 되사보는 실정이다. 정보 왜곡현상을 정상화시켜보자는 것이 우리의 목표다.”
해운거래정보센터는 2013년 말 해운거래소 설립 전까지 한시적으로 운영된다. 염 센터장도 해운거래정보센터가 해운거래소로 확대될 수 있도록 산파 역할을 하게 된다. 염 센터장은 새해부터 건화물선을 비롯해 컨테이너선, 탱커선 시장 운임지수를 잇달아 개발해 동북아해운시장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영역을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선 2012년 1월 극동항로를 운항하는 소형선 중심으로 차별화한 건화물선 지수를 개발한 뒤 10월께 부산-미주, 부산-구주, 부산-일본 3개 항로를 대상으로 한 컨테이너선 운임지수도 내놓는다. 부산시는 해운거래정보센터에 연간 5억원의 사업예산을 지원키로 했다.
“중국은 우리보다 한발 앞서 지수를 내고 있다. 일본도 자체적인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해운정보센터는 부산이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고 우리나라가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다. 일본 중국 등과 공조체제를 갖춰나갈 때 가능하다. 그들의 이득을 챙겨주고 우리도 실익을 얻어내면서 나아가야 한다. 정부의 외교적인 지원도 필요하다.”
해운거래정보센터의 성공을 위해 영국 유명 해운중개사인 심슨스펜스앤드영(SSY)과도 손을 잡았다. SSY의 풍부한 해운자료를 활용해 질 높은 해운시황 리포트를 2012년 3월부터 발간할 계획이다. SSY와의 원활한 사업제휴를 위해 런던에 직원을 파견했다. “‘해운’하면 런던을 생각한다. 모든 해운소프트웨어가 런던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해운은 몇 십 년 밖에 안돼 런던을 따라가긴 어렵다. 어떻게 하면 빠른 시간 내에 해운실무자에게 도움되는 리포트를 제공할수 있을까 고민하다 SSY와 제휴하는 결론을 냈다. SSY는 100년 이상된 자료를 갖고 있다. 이후 우리 자료를 축적하고 시간이 걸리겠지만 자체(owned) 자료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겠다. 항만체선 선박연료유 분석 등의 내용으로 보고서를 차별화할 계획이다.”
해운거래정보센터 사업의 두 축인 해운보고서와 지수 개발은 해운거래소로 가기 위한 중간과정에서 핵심이다. “발틱해운거래소가 (과거) 지수를 개발한다고 했을 때 대단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BDI가 세계 10대 경제지수가 됐다. BDI와 차별화하는 지수를 개발할 것이다. 이미 패널들을 다 갖춰 놨다. 초기 주간으로 (발표)하다가 일일(발표)로 갈 거다. 그렇게 되면 BDI와 경쟁하게 된다. SSY가 전 세계 해운 컨퍼런스 등에서 (해운거래정보센터 지수를) 믿을만한 지수라고 홍보해주기로 약속했다. 지수는 FFA 거래의 기준이 된다. (FFA) 청산소는 영국 런던과 노르웨이 싱가포르에 있다. 우린 한국거래소와 청산소를 부산에 만들기 위해 협의 중이다. 현재 모든 FFA 청산소들은 BDI를 쓴다. 하지만 우린 자체적으로 지수를 개발키로 했다. 지수가 전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할 경우 발틱해운거래소와 손잡으면 된다.”
시황보고서 유료화로 수익창출
염 센터장은 예산확보 계획도 털어놨다. 시황보고서 등의 유료화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전략이다. “센터장으로서 수익사업을 내서 부산시 도움을 받지 않고 독립적으로 헤쳐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해운 보고서를 6개월 정도 무료로 서비스하다 유료로 전환할 계획이다. 조선협회 철강협회 등과 자료를 공유하는 방안을 협의하고 있다. 질적으로 세계 유수 리서치 기관에서 발행하는 보고서에 뒤떨어지지 않는 보고서를 발간할 것이다. 한 자문위원은 ‘돈 주고 자료 보라고 하면 보겠다’고 하더라. 리포트 수입만 해도 괜찮을 것으로 본다. 또 조선소 평가, 배에 대한 가치 등을 평가하는 것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사고가 났는지, 한국 조선소에서 건조된 선박은 중국보다 몇백만달러 더 받을 수 있다 등등 기술적인 인증을 하려고 한다. 이런 건 전 세계적으로 최초다. 외국에서 우리에게 인증을 받아갈 수 있도록 계획하고 있다. 조선소 등으로부터 용역을 받아서 리서치 프레젠테이션을 해주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염 센터장은 마지막으로 해운중개업협회장으로서 해운산업의 소프트웨어 발전을 위해 정부가 해운중개업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점도 새삼 강조했다. “협회 회장으로서 돈이 너무 없다. 해운기업이 700곳이 넘어가는 것으로 아는데, 회원사가 70곳이 채 안된다. 회원 확보가 안돼서 너무 어렵다. 많은 기업이 회원사로 가입해서 우리나라가 이득을 얻으면 회원사들이 나눠 갖게 된다. 우리나라는 하드웨어는 강한데 소프트웨어는 약하다. 국토부에 건의를 했고 재정지원을 검토한다는 얘기도 들었다. 하지만 지원받은 건 거의 없다. 협회가 재정적으로 존폐 위기에 있다. 정부지원이 절실하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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