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9-22 10:10

이호영칼럼/ 이설 포도주 타령

이호영 함부르크항만청 한국대표
이호영 함부르크항만청 한국대표

●●●요즘 드라마를 보면 포도주 마시는 장면이 다반사로 나온다. 과거 포도주는 특별한 사람들이 특별한 경우에 마시는 것이었으나 요즘 TV에서는 젊은 남녀가 식사하는데 포도주를 안 마시는 장면이 없다. 이는 포도주가 이미 우리 문화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포도주가 로만 카톨릭 교회에서 사제의 미사주로써 처음 소개됐었다. 그 후 개신교계에서 빵과 포도주 나눔의 행사가 진행되며 포도주는 ‘신성한 것’으로 인식 돼 우리에게 ‘보통의 술과는 격이 다른 술’로서 다가왔다.

그 후 마침내 즐기는 술로서 포도주가 수입 개방돼 유럽의 문화와 함께 들어오게 되면서 포도주는 신사숙녀의 술로써, 그리고 일정 수준의 분위기를 만들어 주는 사람이 일정한 격식을 지키며 마시는 문화행사의 일부분 같은 이미지로 전파됐다.

그리하여 이런 술을 만찬에서 마시려면 포도주에 관해 뭐 좀 아는 체라도 해야 하는 풍조가 형성됐다. 심지어 어떤 이는 상당한 비용을 들여 와인 아카데미나 해외 포도주산지 탐방 여행 등을 하고 나서야 ‘이만 하면 포도주에 대해 잘 아는 것으로 행세할 수 있다’고 여기는 풍조까지 만들어져 가고 있는 지금이다. 그런데 이렇게 얻은 와인지식 때문에 곤혹스런 결과가 연출되는 수도 있으니 식자우환은 여기에도 있나보다.

필자의 경우에도 참여 하는 모임 어디에서나 와인 이야기를 종종 듣게 된다. 그 날 나온 와인이 초대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기쁘고 감사하게 만드는 좋은 경우도 있지만 때때로 포도주에 관해 ‘좀 안다’고 말하는 한 사람 때문에 분위기가 좋지 않아지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초대한 주인이 ‘술은 A급으로 모시니 즐겨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그거 좋지요, 고맙습니다’정도면 좋은데 혹 어떤 사람이 ‘음, 이 포도주는 ○○품종이라 향기와 빛깔은 알아주지만 빈티지에 따라 뒷맛이 텁텁하고 찌꺼기가 좀 생기는 특징이 있지요. 제가 아는 구대륙 와인 중에 △△품종은 향기와 색깔이 이것과 비슷한데 찌꺼기가 생기지 않습니다. 아, 물론 값은 약간 비싸지만…’하며 와인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섞어 코멘트를 하게 되면 결국 ‘그 자리에서 대접받은 술은 그만 못한 술’이라는 이야기가 돼버리고 만다. 이에 사람들이 덩달아 자기가 먹어본 값비싼 술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하고 그 맛을 찬양하면 초대한 주인은 결국 난처한 얼굴을 감추느라 애 쓸 수밖에 없다.

술자리에는 초대를 한 사람과 초대를 받은 사람이 있다. 초대한 사람은 정성으로 베풀어야 하고 초대받은 사람은 기쁘게 즐기며 감사해야 이상적이다. 와인이란 빈티지의 체계나 품종, 향기, 빛깔, 알콜 농도, 당도, 찌꺼기의 정도 등을 기준으로 삼아 분류한다.

그런데 이것은 표준적인 분류방법으로 내용물의 상태를 알려주는 것일 뿐 이것이 품질의 평가 또는 금전적 평가는 아니다. 그리고 이런 품질 내용과 더불어 그 해의 날씨, 희소성, 와이너리의 전통과 명성, 때론 상인의 상술이나 전문가의 리뷰 등에 의해 가격이 정해지므로 ‘값이 비싸면 좋은 술, 값이 나쁘면 나쁜 술’이라는 식의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결국 각자가 나름의 풍미를 즐기는 것이 포도주를 더 즐겁게 마시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식사에 초대를 받았을 경우 주인으로부터 혹시 술에 대한 추천을 위임받게 된 사람은 그 권한을 주인에게 되돌려 주는 것이 보통의 매너다. 다른 술에 대한 찬사만을 늘어놓는 것 보다는 그 날 주인의 선택을 존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대한 즐기며 술의 대한 대화를 하는 게 교양 있는 손님이 가지는 태도가 아닐까? <코리아쉬핑가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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