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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영 함부르크항만청 한국대표 |
●●●인생에는 액년이라는 것이 있다고 한다. 죽을 만큼 어려운 일이 있어서 자칫 잘 못하면 그 해를 못 넘기고 유명을 달리하게 되지만, 그 해만 잘 극복하면 그 후 얼마간의 삶이 수월해 진다고 하는 액년 말이다.
내 나이 59살이었던 1998년, 심장 바이패스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또 2001년에는 팔목 마비에 한 쪽 눈이 잘 안 보이게 되는 의료사고, 그리고 심장혈관 재 협착까지 겹친 데다 우리 둘째 딸이 빙판에서 넘어져 팔목이 부러지고 우리 어머님이 돌아가셨다. 내 인생에 액년이 몇 번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바로 그 해가 액년이었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심장 수술 당시, 병원에서 그 수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설명해 주는 것을 우리 부부가 자세히 듣고 혹 수술을 하다 깨어나지 않아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몇 번이나 썼다. 그러는 동안 나는 ‘이러다가 내 인생 완전히 끝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나보다 더 튼튼하던 친구들이 하루아침에 턱턱 타계하는 것을 보니 너무나 허무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죽기 전에 사회로부터 받은 것들을 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시작한 일이 2001년 6월부터 某신문에 ‘이호영 천자칼럼’을 쓰는 것이었다. 4년 동안 200여회에 걸쳐 내 인생과 경험에 대한 글을 남겼으니 그 칼럼을 통해 후학들이 인생의 참고를 얻을 수 있길 바랐다. 또 다른 방편으로 나는 학술활동에 뜻을 둬 국제물류연구회에 가입해 2002년부터 물류분야의 학술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그 후 해마다 4~5편 이상씩 국제·국내 세미나 등에서 주제발표를 하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2005년부터 5년 간 국제물류연구회의 회장직을 맡게 됐고 그 해에는 특히 국제·국내 세미나에서의 주제발표와 더불어 대학교 등에서 특강을 한 게 10건, 토론자로 참가한 게 6번으로 총 16번이나 공식행사에서 발표를 했다. 이것은 대학교수들도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주제발표자는 그 학술행사의 간판급 발표자이니 대학교수들조차 평생 한 번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마추어인 나로서는 큰 보람이자 영광이었다.
이제 물류분야에서는 나도 제법 이름이 알려져 큰 학술행사에는 주제발표자로서든 토론자로서든 자주 초대되곤 한다. 이처럼 내가 하는 글 쓰는 일이나 학술활동들은 모두 환갑, 진갑이 지나 늦깎이로 시작한 일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정도의 건강으로 이 정도의 활동을 하며 살아가게 허용해주시는 하느님께, 그리고 내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들께, 친구들에게 마음 깊이 감사하며 살고 있다.
이 같이 나는 내가 나눌 수 있는 지식을 나누며 ‘되돌려주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혹자는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에 되돌려 주기도 하고 사랑을 되돌려주기도 한다. 나는 그 어렵던 시절에도 다행히 직장과 사회에서 많은 것을 받고 배우며 살았으니 그 전문지식을 사회에 되돌려주는 것도 ‘되돌려주는 삶’이라고 생각해 힘이 닿는 데까지 그를 충실히 이행하며 살고자 노력하고 있다. <코리아쉬핑가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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