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철 과일이라면 수박을 첫손꼽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차가운 수박의 시원한 맛도 일품이지만 그 진한 초록빛 얼룩 속에 빨간 속살이 곰보처럼 박힌 씨와 조화를 이뤄 정서적인 느낌 또한 정겹고 멋스럽다.
나는 ‘무더운 여름 한 철 차가운 수박 먹는 맛’에 여름이 좋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옛날 학창시절, 내 친구가 황달에 걸렸는데 수박이 그 특효약이라 하기에 매일같이 수박을 먹은 적이 있다. 그때 친구가 수박을 하도 많이 먹어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난다고 해서 내가 도와주겠다고 자청해 매일 그 친구네 집에 가서 대신 수박을 먹어줬다.
그런데 나는 질리지도 않고 맛만 있어서, 그 친구한테는 미안하지만 그가 황달이 천천히 나아서 내 행복이 오래 지속되기를 바랐다. 요즘에는 수박을 얼음과 함께 갈아 만든 수박주스를 먹으며 무더위를 식힌다.
그런데 맛난 수박을 고르는 일이란 좀처럼 쉽지 않다. 요즘에는 농업기술이 발달해 수박의 크기도 커졌는데 비싸게 주고 산 큰 수박이 맛이 없으면 본전 생각이 몹시 난다. 예전엔 수박을 살 때 시식용으로 삼각형 견본을 잘라내 맛을 보고 사곤 했는데, 요즘에는 시식용을 달라는 사람도 없고 그렇게 파는 사람도 없다.
사실 시식용으로 조금 자르는 건 별 의미가 없다. 설령 수박이 덜 익었더라도 빨간색인 것만은 분명해 안 익었다고 말할 수도 없고, 수박장사가 시식용으로 잘라줄 때는 꼭지 쪽 햇빛 잘 받은 부분으로 자르기 때문에 빨갛지 않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이처럼 맛있는 수박 고르는 어렵기가 일생의 반려자인 배우자 고르기의 그것처럼 어려워 그 점이 꼭 닮았다. 내가 고른 걸 먹어보고 난 다음 맛이 없다며 잘못 골랐다고 무를 수 없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에게 골라달라고 할 수도 없고….
그런데 나는 일찍부터 따보지 않고도 수박을 잘 골랐다. 나름대로의 요령이 있는데 첫째, 큰 수박을 고른다. 수박이 그렇게 크게 자라려면 상당기간 밭에서 있어야 되는데 그말은 곧 밭에서 익은 기간이 길다는 의미기 때문이다.
둘째, 손가락으로 이 놈, 저 놈 튕겨본 후 가장 맑은 소리를 내는 놈을 고른다. 제대로 안 익은 놈일수록 둔탁한 소리가 난다.
세 번째, 줄무늬의 색깔이 고른 놈을 고른다. 일조량이 나쁘면 땅에 닿았던 부분의 색깔이 엷어지므로 줄무늬의 색이 균일하다는 것은 일조량이 많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네 번째, 두 손바닥으로 잡고 눌러본다. 잘 익고 껍질이 얇은 놈은 내부가 부서지는 감을 느낄 수 있지만 안 익고 껍질이 두꺼운 놈은 아무리 눌러봐도 요지부동이다. 대개 이런 방법으로 고르면 별 실수가 없다.
하지만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온 지방에서 올라온 수박은 잘 익었더라도 당도는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까지는 나도 구별 할 길이 없다.
나는 어려서부터 수박을 잘 골라 주위로부터 ‘나중에 여자도 잘 골라올 것’이라는 소리를 곧잘 들었다. 그런데 나는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 나는 마누라를 고를 때 견본을 따 먹어보고 고르지도 못했고, 골통님(?)을 두드려보고 고르지도 못했고, 햇빛을 잘 받는 얼굴 쪽 피부와 햇빛을 안 받는 속살의 피부를 대조해보고 고르지도 못 했을뿐더러 두 손바닥으로 마주 눌러보아 몸뚱이 속의 육질 상태를 감정해보고 고르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우리 마누라를 잘못 골랐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수박 감정 법을 시험해보지 않고도 이만큼 골랐으면 잘 고른 것 아닌가? 무려 43년간을 그렇게 맘껏 쓰고도 아직 닳지도 않았고 내 등을 갈길 땐 아직도 손대가 매운 것을 보면 말이다.
아니, 설령 잘못 골랐다고 생각해도 그것은 속으로만 생각할 일이지 내가 미련하게 잘못 골랐다고 말할 수야 없지 않은가? 나도 힘없는 노후 정도는 생각하며 말할 줄은 안다 이거다. <코리아쉬핑가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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