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06-20 09:00

KSG에세이/ 바다의 날에 즈음, 해양문학 산책 - (3)

서대남 편집위원
“바다는 언제 잠드는가?”
외항선장 고 김성식(金盛式) 시인 - (하)


해양문학이 일반 문학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장르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어 온 건 사실이다. 그러나 해양문학(Sea Literature)이라는 용어는 오랫동안 관습적으로 사용되어 왔고, 현재는 한국해양문학가협회가 설립되어 있을 정도로 저변을 확대해 가고 있다고 한다.

관습적으로 해양문학은 ‘바다를 주요한 대상으로 하거나 바다를 배경으로 하는 문학’ 이라고 이해되어 왔으나, 해양문학이 장르상의 용어가 아니므로 해양소설, 해양시, 해양수필 등과 같이 구체적인 용어로 지칭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이 공감대를 얻어 가고 있다는게 해기사출신의 필자 지인 국제물류대 김성준 박사의 해양문학 정의다.

“장르상 해양시와 해양소설의 특징은 해양체험이 작품을 구성하는 지배적인 역할과 기능을 한다. 그런 점에서 해양시와 해양소설을 아우르는 해양문학은 뱃사람과 그에 준하는 체험이 문학화된 것에 한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관습적인 범주에서 해양문학에 속하는 작품이라 할 지라도 장르로서의 해양시와 해양소설이 될 수 없는 작품이 허다한 것이 현실”이라고 김박사는 ‘해양문학 바로 이해하기’ 글에서 밝힌다.

“詩情이 고여있는 한 난 바다와 더불어 춤추며 살겠다!” 公言

여하간 현학적인 해양문학강좌는 차치하고 김 시인의 “나의 무대는 바다다. 하지만 바다위에서의 행위는 오직 긴장과 자연에 대한 두려움을 벗어나려는 원시 본능의 기능만이 있을 뿐이다. 황홀의 극치 속에서 시를 만든다는 건 말 그대로 연목구어(緣木求魚)였다.

그래도 가끔씩 한 편의 시를 만들었다.” 는 대목에 필자는 주목한다. 선장시인 김성식은 그의 에세이 ‘나의 문학바다’에서 피력한 바와 같이 자신의 삶이 바다에서 이루어지듯이 시 또한 그 연장선상에 있다면서 시정(詩情)이 고여있는 한 바다와 더불어 춤추며 살 거라고 공언했다. 투박하면 투박한 대로 고우면 고운대로 자기만의 시편을 계속 수놓을 것이라는 포부로 평생을 살다 갔다는 것이다.

늘, 물 위, 그것도 바다 위에 떠 있는 삶이 그의 전부였던 김시인을 가리켜 부산문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역시 해기사 출신 김동규(金東奎) 작가의 말을 빌리면 그는 한때 항해 경험이 있는 ‘샤를 피에르 보들레르’에 심취해 그의 ‘시’이기도 한 바닷새 알바트로스(Albatros)에 대한 관심과 집념과 동경이 자못 컸다고도 했다. 사실 알바트로스는 봉황이나 불사조와는 달리 실재하는 바닷새로서 우리말로 신천옹(信天翁)이라고도 불린다.

보들레르 심취, 詛呪시인의 상징 바닷새 알바트로스 憧憬

알에서 깨자마자 바로 바닷물을 만나야 하기 때문에 하늘을 날지 못하면 바닷속 표범상어의 표적이 되므로 필사적으로 날개짓을 해야하는데 크기, 나는 모습, 수명, 생태 등 여러 면에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문학작품이나 전설 속에 신비의 새로 등장한다. 보들레르는 시집 ‘악의꽃’에서 뱃사람의 놀림감이 되는 알바트로스의 운명을 예술가에 빗댔다.

“그 어색하고 나약함이여/야유의 소용돌이 속에 지상에 유배되니/그 거인의 날개가 걷기조차 방해한다”고 읊어 어쩌면 지상의 속세에 유배된 저주받은 시인으로 상징되는 알바트로스에 스스로의 운명을 비견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가능케도 한다.

그러나 바다와 함께 나이가 들어가면서, 바닷바람과 함께 늙어가면서, 그는 바다와 함께, 바다처럼 그렇게 살다갔지만 그의 마지막 항해 때까지도 새에 대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아마 생전에 잡지 못한 그의 시 세계의 이상, 알바트로스를 저 세상에 가서 이제나 잡았을까 아직도 궁금하다고 김동규작가는 그의 역작 저서 해양에세이 ‘바다의 기억’에 실은 ‘해양시인 김성식’ 이란 글을 통해서 회고한다.

필자가 알기로는 화가가 되려다 시인이 된 프랑스의 천재작가 보들레르는 정착된 선보다 자유로운 악을 택하고 굴종적인 도덕보다 불행한 투쟁을 택했던 시대의 반항아이자 상징주의의 첫 봉우리로 명성을 떨쳤으며 한편으론 퇴폐적 작가로까지 회자된 바 있는데 그 무엇이 김성식 선장 시인의 관심을 끌게 했는지는 필자로서는 알 수가 없다.

인간처럼 비 사교적이면서도 또 인간처럼 사교적인 것은 없다고 갈파한 그는 ‘에드거 앨런 포’에게도 영향을 끼쳐 낭만파나 고답파에서 벗어나 인간심리의 심층을 탐구하고 고도의 비평정신을 추상적 관능과 음악성 넘치는 시에 결부하여 대표작 ‘악의 꽃’을 생산한 바로 그 보들레르가 아니던가?

김 선장은 한번 항해에 나가면 보통 1년이 지나야 연가(年暇)를 얻어 뭍을 밟았다. 그 무렵 부산 중앙동 거리는 돈 잘 버는 외항선 해기사들이 득실거렸고 일반 직종에 비해 상종가를 쳤다고 한다. 지인들이 잊을라 싶으면 나타난다는 중앙동 골목길에 김 선장이 귀국해서 ‘떴다’하면 동네 술집이 왁자지껄하며 골목길이 꽉 찼었다고 한다.

지인들은 지금도 ‘영원한 현역선장’으로 기억하고 있으며 현역 시절 귀공자 타입의 미남에 당당한 체격과 꿰뚫는 시선하며 우렁찬 목소리와 호탕한 웃음소리, 눌러쓴 베레모에 다정하고 멋스런 모습의 캐릭터는 바다와 육지를 모두 안고 다니는 뱃심 좋고 호방한 시인 선장으로 이른바 전설적(?)이었다고 술회했다.

그러나 시인은 평소 “바다가 끝나는 데서 김성식의 뱃길은 시작된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며 “끝 닿을 데 없는 바다가 나를 시인으로 만들었다”고 토로했으며 죽음으로 비록 그의 항해가 끝나긴 했지만 그의 시 작업은 영원한 현역 외항선장의 ‘해양시인’으로 우리 해운계 뿐만 아니라 다른 모두의 가슴에 오래 남아 기억될 것이다.

韓海大에 추모詩碑, 木海大엔 海洋詩碑공원 조성 業績기려

따라서 김성식 선장 시인의 모교 한국해대 캠퍼스 도서관 앞에는 2004년에 추모시비가 건립된 바 있다. 이어 2008년에는 목포해대 교정에는 유명 서예작가가 해양시를 필사하여 기증한 시작품을 새긴 57개의 서예 시비를 세워 ‘해양시비공원’을 조성할때 김 선장 시비도 함께 세워져 영원히 해양문학을 기리고 있다.

마침 필자와 교분이 있는 이효녕(李孝寧) 중견시인이 ‘그대의 바다가 되고 싶어’ 제하의 타이틀 작품을 써서 돌에 새겨 더욱 의미 깊은 시비공원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시인의 300편의 작품 모두를 소개할 수 없어 평소 필자가 좋아하던 몇 제목의 열거로 이를 대신한다.


< 이 세상 가장 높은 곳에 바다가 있네 >

이 세상 가장 낮은 곳에
바다가 있네
낮은 곳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모든 하수구 아래
바다가 있네 / (중략)

끝내는
제 살을 태우면서
금강석 보다 더 단단한 소금 만들어
바람에 말리고 있었네

이 세상 가장 가장 낮은 곳에 엎드려
거듭 일어나는 바다를
오늘도 나는
조심스레 지나고 있네


< 항해일지 >

한 권의 항해일지 속엔
꼭 101장의 바다가
들어가 있습니다 / (중략)

목구멍을 갉으면서 내려가던 데킬라
혓바닥 감싸면서 사라지던 버어번
목적을 때리며 흘러드는 보드카
지글거리는 태양이 익어버린
두어잔 럼의 독한 맛들이 뒤엉키어
사라진 항적을
조금씩 일으켜 세웠습니다 / (하략)


< 청진의 누이야 >

아직도
큰 누이 증섬이는
남쪽 하늘을 바라보며
문설주에 기대고 있을까 / (중략)

동생들 생각에
아직도 돌로 서서
파랑게 떨고 있겠다 누이야
북에 두고 온
큰 누이야


< 슬픈 외항선 >

길을 잃었다
짐 찾아 떠난 항로에 갑작스레 나타난
짧은 텔렉스
-근로자 장기파업 화물 없으니 현위치 대기망

한동안 기름 칠하듯 잘 달리던
외항선 한 척이
엔진도 죽인 채 물결따라 흘러간다 / (하략)


< 바다가 앓을때 >

바다가
마른 기침을 며칠 간 심하게 하더니
그예 몸살을 앓는지
내 몸 붙들고 흔들기 시작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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