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세상은 소형화가 화두였다. 컴퓨터와 반도체가 대표적이다. 작은 공간에 많은 기능을 넣어 이용자가 휴대가 간편하고, 다양한 활용을 하도록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제품에 따라 그 기능을 최대화하는데 초점이 있는 듯하다. 크기가 점점 커지는 추세가 나타나는 제품도 몇 가지 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것이 TV 화면이다. 과거 소니(Sony)의 소형화 전략과 달리 TV화면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다. 아마도 그 쓰임새에 따라 작거나 큰 방향으로 제품의 운명이 정해지는 것으로 보인다.
해운시장의 컨테이너선은 대형화가 추세이다. 최근에 머스크라인(Maersk Line)이 발주한 것으로 알려진 소위 ‘말라카 막스(Malacca-max)’ 1만 8,000TEU급 컨테이너선이 뉴스꺼리임에 틀림없다. 1세대 컨테이너선인 하파그로이드(Hapag Lloyd)사의 736TEU급 ‘알스터 익스프레스(Alster Express)’호가 1968년에 나온지 불과 42년만에 크기는 약24배로 커졌기 때문이다. 이를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매년 크기가 56%씩 커진 셈이다.
그리고 컨테이너선 대형화의 속도는 최근에 더욱 빨랐다. 1세대 컨테이너선이 나온 다음해인 1969년 1,000TEU를 넘어섰고, 1973년 3,000TEU급 3세대 선박이 등장한다. 그 이후 1997년 6,000TEU급, 2003년 8,000TEU급 컨테이너선이 시장에 나왔다. 그리고 불과 7년 후에 8,000TEU급 컨테이너선의 2배 이상되는 선박이 등장하게 될 전망이다.
선박의 대형화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대형화 자체보다는 시장의 변화 때문일 것이다. 2003~2008년 상반기인 사상 최대 해운 호황기 무렵, 대량 발주와 함께 대형선 경쟁이 치열했으며, 이 시기에 선박 대형화가 급진전되었다.
2006년 1만4,000TEU급 ‘엠마머스크’(Emma Maersk)호가 등장했다. 그리고 이어서 MSC와 CMA CGM이 1만4,000TEU급 컨테이너선을 경쟁적으로 이 시기에 발주하여 금년에 인도 받을 예정이다.
머스크라인을 주도로 이루어진 유럽 대형선사들의 경쟁적인 초대형선 발주는 항만 네트워크의 변화 등도 예상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보면, 초대형선을 수용할 수 있는 항만이 기존의 대형 항만이어서 이 항만들의 중심축은 크게 흔들리지 않은 모습이다. 네트워크의 변화는 중국의 수출 물동량이 크게 늘면서 초래된 직기항 체제가 원인인 경우가 더 컸던 것으로 판단된다.
오히려 시장의 큰 변화는 초대형선 보유 선사들의 공격적인 마케팅이 전개될 가능성이 클 것이란 점이다. 이 선사들의 대부분이 세계 주요 거점에 터미널을 보유하고 있어 집화력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터미널 거점이 부족하거나 초대형선을 보유하더라도 집화력이 없는 경우 상대적으로 열세일 수밖에 없다. 특히, 미주항로보다는 유럽항로에서 이 같은 현상이 더욱 강하게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미주항로는 파나마 운하가 확장이 완료되는 2014년 경까지는 대형선 운항의 확대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대형화에 따른 다른 변화는 신조 선박이 대형화될 뿐만 아니라 기존 시장에서 운항되는 선박도 대형화된다는 것이다. 메인 항로(main trunk)에 초대형선의 투입으로 지선 및 피더 항로로 메인 항로의 선박들이 전환배치(cascading)되기 때문이다.
이는 수급상의 변화도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즉, 큰 선박들이 밀려서 서브 항로로 들어오게 되면, 이 항로에는 선박들이 쌓일 수밖에 없고, 해체나 계선 등으로 선박이 시장에서 나와야 공급 충격이 없다. 따라서 4,000TEU급 이상 컨테이너선들의 경우 미주 항로나 역내 항로로 전환배치가 증가하면 그 이하 선박들은 공급 압력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초대형선 배치가 거의 완료되어 가는게 아니냐는 것이다. 더 이상 초대형선들이 들어오면 밀려날 선박도 없어지고, 공급 압력이 메인항로로 옮겨올 수 있다. 클락슨(Clarkson)에 따르면, 미주항로에서 8,000TEU급 선박은 2007년 7월 10여척 정도에서 2010년 7월 65척으로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3,000~3,999TEU급 선박은 미주항로에서 3년 전 79척에서 최근 22척으로 줄어들었다.
유럽항로는 이 같은 현상이 더욱 심해 2007년 117척의 8,000TEU급 선박이 금년 7월 들어 209척으로 크게 늘었다. 이 같은 시장에서 선사들은 감속운항(slow steaming), 계선(lay up) 등의 전략을 통해 공급 충격에 대응해 온게 사실이다.
그러나 초대형선의 급격한 공급으로 인해 공급 균형을 유지하기 위한 전환배치, 감속운항, 계선 및 해체 등의 전략이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는 경우 시장은 공급 압력이 커지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기댈 곳이 수요인 물동량 밖에는 없다. 다만, 수요는 선사 입장에서 어떠한 역할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선대 포트폴리오를 잘해서 공급 충격을 견딜 수 있는 나름대로의 방법을 강구하거나, 집화력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라거나 하는 당연한 방안 외에 큰 묘수가 안 보인다.
다만, 초대형선 확보가 경쟁력이 되고 있는 것만은 점점 짙어지고 있는 듯하다. 당장 선박을 대형화하자고 하지는 않더라도 개별 선사의 경영 여건을 감안한 적절한 대형화 유도가 필요하다고 지금은 주장해도 큰 무리가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 조선소 중의 하나인 STX조선이 2008년 2만2,000TEU급 컨테이너선 디자인 설계에 들어갔다가 불황기로 중단한 바 있다. 아마 불황기가 없었더라면, 대형화는 더욱 빠르게 진전되었고, 우리가 접하고 있는 최근 1만8,000TEU 뉴스는 과거가 되었을 것이다. 이 같은 점에서 선진적이고 선사인 이용자 편의적인 선박금융시스템의 구축이 제도적인 부분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안이 아닌가 생각된다. <코리아쉬핑가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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