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0-21 16:20

KSG글동산/ 유년(幼年)

서대남 (본지 편집위원)
호수공원에 왠 소년이 섰네
산비둘기 맑은 눈에 구름이 돌듯
지금 물 거울에 비치는 일흔박이 소년을!

하늘 가까운 산골 옴팍마을
상수리목 빗질하던 꼬부랑 학교길
오릿목 물들인 깜당 저고리 소맷등에
쉴새없이 문댄 콧물이 장판으로 번질번질
그 아이 그 소년 그 청년이
이젠 일흔에 한살 빠진 높은 벼슬 "할아범!"

새벽잠 없어 여명에 아침이슬 가르며
새작골 써릿들 논밭을 한 바퀴 휘잉 돌곤
"나락 자라는 소리가 부스럭 부스럭!
울 손자 키 크는 소리가 부쩍 부쩍!" 하시던
이 할아범의 할아범도 일산 호수마을에 오셨다.

늑대바위 묏등서 설레는 마음만 만지작
옅은 눈빛으로 깊은 가슴 살찜 죄며
수런대는 잎새들 반겨 맞고 웃는
느릎나무 속닢피는 산길 내달리던

그 소년 이젠
삐걱대는 관절로 뒤뚱이며
호수공원에서 유소년으로 달음박질 한다.

돌담 옆집 소녀와 산풀 목걸이 엮어 걸고
맑은 영혼 헹궈 바람결에 띄우던
그 소년 이젠 천국을 잃은 오셀로 처럼
이 곳 약초섬에 신선으로 머물겠다네.

벗이며 친구야 모두가 그러더이다
빨리 가려면 혼자서
멀리 가려면 함께 가는게 좋다니

오늘 일산 호수공원
이리도 어여쁜 꽃과 나무와 풀잎들
행간을 가로질러 팔각정 벤치에 모아

누군지 아직 만나지 않은 사람이
어쩌면 내 사람일 것 같아
앳된 일흔살 소년의 미소를 석상으로 새겨
우리들 모두의 유년의 분화구 삼아
이 자리 이 터에 돌을 세운다

편집자주 : 이 글은 사회복지법인 연꽃마을이 올들어 창립 20주년을 맞아 등단기록이 없는 60세이상을 대상으로 하여 전국 700여명의 순수 아마추어 글꾼들이 참가한 가운데 일산 호수공원에서 개최한 ‘전국 어르신 백일장 대회’ 운문부문에서 주어진 글제목 “유년(幼年)”으로 입선한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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