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
한국의 해운산업은 1970년대 이후 급속한 발전을 이룩함으로써 괄목할 만한 양적 성장을 달성했다. 그 결과 2008년 1월 기준 한국 외항해운업의 선박보유량은 3,676만 DWT로 세계 6위를 차지했다. ISL, Shipping Statistics and Market Review, 52-7, July, 2008, p.15. 그런데 이와 같은 양적 성장의 이면에는 여러 가지 문제점도 있다.
첫째, 한국 해운산업에 있어 무엇보다 심각한 근본적인 문제점 가운데 하나는 지식·기술기반의 발전 기반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특히 해운중개, 해상보험, 해사 중재·법률서비스, 선박금융 등 해운관련 부대서비스업의 발전이 극히 초보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들 분야는 고도로 지식집약적인 서비스로서 막대한 부가가치의 창출이 가능한 것으로 평가된다. 런던의 경우 선대(fleet)와 항만물동량의 세계적 비중이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해운물류활동의 세계 중심으로 기능하고 있는 것은 고도의 전문지식을 갖춘 전문가의 확보 및 이를 바탕으로 한 해운물류산업 클러스터(cluster)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둘째, 해운경영의 채산성이 개선되고는 있으나 높은 금융비 부담 등으로 인하여 일본 등 주요 경쟁국들에 비하여 여전히 낮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 채산성의 연도별 등락이 심하여 경영의 안정성이 낮다는 점 등이 지적될 수 있다.
한국 해운기업의 채산성 부진은 선박투자시기 선택의 오류에서 기인되는 바 크다. 해운산업은 고도로 자본집약적인 산업으로서 선복(船腹) 확보시 투자된 금액의 다과(多寡)에 따라 가격경쟁력(운임경쟁력)과 채산성이 크게 좌우된다. 해운경영에서 기업별로 크게 차이가 나는 원가항목은 자본비로서, 이는 주로 선박확보금액에 의하여 결정되기 때문이다. 기타 비용 즉, 연료비, 화물비, 선원비 등은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일반적임. 선박의 최적투자는 해운불황시 구입(신조발주)하고 호황시 매각하는 것이다. 운임수준이 저점에 달한 해운불황시에는 선박 발주량도 적어 조선소의 가동률 및 선가가 낮은 수준에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파나막스급 건화물선 신조선가는 1999년 3~4월에 1,900만 달러까지 하락했으나 2008년 2월에는 저점의 약 3배에 해당하는 5,500만 달러로 상승했음(Clarkson, Shipping Intelligency Weekly, 각호 참조).
다음 표를 보면 한국 해운기업의 선박 보유량은 2000년대 초 1,200만 GT 내외에서 2008년 말에는 2,138만 GT 내외로 최근 5년간 80% 정도나 급증했다. 한국 선주들은 선가가 최저수준에 달했던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중에는 선복확보 실적이 거의 없었으며, 시황이 본격적으로 회복되고 선가도 폭등한 2003년 이후부터 선복확보에 본격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한국 수출입화물에 대한 국내 해운기업의 적취율(積取率)이 낮은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한국 해운기업의 수출입화물 적취율은 35% 내외이나 외국적선 용선을 제외한 국적선 적취율은 1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선주협회, 「해운연보」 각호. 이와 같이 낮은 한국 해운기업의 수출입화물 적취율은 가변성이 큰 해외시장에 대한 의존도를 높임으로써 안정적인 성장기반 구축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우려가 크다.
한편, 일본의 경우 자국 해운기업의 수출입화물 적취율은 60% 이상을 유지하고 있어 한국 해운기업과는 대조적이다. 日本船主協會, 「海運統計要覽」 각호. 이와 같은 차이는 양국의 선·하주 협조관계의 차이에서 기인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즉, 한국에서는 선주와 하주의 협조체제 구축이 부진한 반면, 일본에서는 양자의 협력이 긴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일본에서는 커미션 캐리어(commission carrier)제도가 정착됨으로써 긴밀한 선하주 혈조체제가 구축된 것으로 판단된다. 커미션캐리어는 경쟁적인 해운시장의 커먼 캐리어(common carrier) 운송수단의 적재공간이 있는 한 어느 하주에게나 운송서비스를 제공하는 운송인. 와 비경쟁적인 조직 내의 인더스트리얼 캐리어(industrial carrier) 중간형태로 볼 수 있음.
넷째, 한국 해운기업들은 사업다각화 사업다각화란 기업이 본래의 경영활동 이외의 다른 분야에 진출하는 것을 말함.가 극히 부진한 바, 이 역시 주요 문제점 가운데 하나이다. 한국 해운기업들은 해상운송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며, 운송이외의 부문 예를 들면 항만운영, 크루즈, 기타 다양한 물류업무에 대한 영업범위의 확대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에 반하여 세계 유수 해운기업들은 공급사슬(supply chain)의 전과정에 걸쳐 다양한 물류서비스를 제공하는 종합물류기업으로 전환함으로써 제2의 도약을 실현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본 NYK(Nippon Yusen Kaisha) Line의 경우 2005년 이후 “New Horizon 2007" 계획을 수립·추진하여 육·해·공을 망라한 글로벌 종합물류그룹으로 전환함으로써 물류 통합자(logistics integrator)의 기능을 수행한다는 목표를 지향하고 있음. NYK의 종합물류본부는 이러한 구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설치된 부서인바, 컨테이너 운송, 물류, 자동차, 항만의 4개 사업부문으로 구성되어 있음.
성장기반 확보과제
한국이 진정한 해운강국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런던을 벤치마킹한 지식·기술 기반의 해운산업 발전 기반을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우수한 전문인력의 양성 및 관련산업 클러스터(cluster)의 구축이 한국 해운산업 발전의 전제조건이 된다. 한국 해운산업이 지식·기술 기반의 성장기반을 갖춤으로써 해운중개, 해상보험, 해사 중재·법률서비스, 선박금융 등 해운관련 보조서비스업의 발전을 달성하기 위한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고도의 지식과 기술을 갖춘 해사전문인력의 양성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에는 해양계 고등학교 및 대학교 이외에도 다양한 해사전문인력 양성과정이 주요 대학 및 대학원에 개설되어 있다. 그 결과 정규교육과정의 양성규모가 주요 외국에 비하여 많은 편이다. 정봉민, “해사전문인력 양성메카로의 부산 발전방안”, 「해운도시 부산 발전방향」 심포지움, 한국해양수산개발원·부산항발전협의회, 부산광역시, 2008. 10. 29. 따라서 한국의 해사전문인력 양성과 관련된 문제점은 양적인 문제라기보다는 질적인 문제로 판단된다. 특히 해사업무의 국제성을 고려할 때 외국어 구사능력이 주요 문제점으로 대두되고 있다.
한국의 해운 및 관련 산업 전문인력에 대한 교육·훈련은 전반적인 지식·기능이 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으로 이행하지 못하는 저기능 균형(low skill equilibrium)의 함정과 유사한 악순환에 빠질 위험이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저기능 균형은 재화와 용역이 저기능의 근로자에 의하여 생산되고, 그 결과 저임금을 받게 됨으로써 저기술의 저가·저질 재화와 용역을 구매하게 되는 악순환을 의미함(David Fingold and David Soskice, "The Failure of Training in Britain: Analysis and Prescription", Oxford Review of Economic Policy, Vol. 4, 1988, p.21~54 참조). 즉 전문성이 낮은 인력에 의하여 질적 수준이 낮은 해운 및 관련 서비스가 생산·공급되며, 해운 및 관련 기업들도 생산성의 저하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고기능·고임금 근로자보다 저기능·저임금 근로자를 고용하게 됨으로써 질적 수준이 낮은 서비스의 생산이 지속되는 현상이 나타날 우려가 있다.
이러한 악순환의 고리를 탈피하기 위해서는 교육에 대한 충분한 투자, 기업의 신지식 및 기술의 과감한 도입 등이 요구된다. 특히 ⅰ)대학간 경쟁여건의 조성, ⅱ)교과운영에 있어서 해사산업의 수요변화에 질적·양적 측면에서 신축적으로 부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대학내부의 경직성 완화, ⅲ)산·학 네트워크의 구축, ⅳ)국제노동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춘 전문인력의 양성 등이 요구된다. 그 이외에도 보다 근본적인 대책으로 초·중·고교 과정에서 교육의 국제화를 실현해야 할 것이다.
둘째, 해운산업에 대한 세제지원정책은 지속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1990년대 중반 이후 유럽국가들을 중심으로 도입된 톤세제도의 시행은 해운산업의 발전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 이외에도 제주선박등록특구제도 선가의 0.02%에 해당하는 등록세만 부과하고, 취득세, 공동시설세, 재산세 등은 면제됨., 선박투자회사의 선박펀드에 대한 배당소득 조세감면 등의 세제지원도 지속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선박금융 기능이 강화되어야 한다. 선박금융은 국내 해운기업의 선박확보를 지원하는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특히 해운산업은 자본집약적 특성을 가지므로 선박확보에 따른 금융비용의 다과(多寡)는 해당 해운기업의 국제경쟁력을 결정하는 주요 요인이 된다. 선박금융의 개선방안으로는 우선 국책은행의 선박금융 대상범위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 「무역해운조선 동반발전을 위한 대량화물 운송체제 구축방안 연구」, 2005, p.202-212. 즉, 한국수출입은행의 선박건조자금 지원대상기업이 국내기업(국내 조선소)으로 제한되어 있는바, 불가피한 경우 국내선주의 외국조선소 발주 선박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선박투자회사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 선박투자회사는 대선료(貸船料) 및 매매차익을 목적으로 선박에 투자하는 회사이다. 선박투자회사제도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조세감면 혜택의 강화가 요구된다. 선박펀드는 2008년 말까지 적용되던 액면 가액 3억원 이하 배당소득에 대한 비과세가 2009년부터는 5% 분리과세로 변경됨. 조세감면 혜택은 고속상각제도와 병행하여 보완적으로 시행하되, 최소한 세계 5대 해운국 진입 목표연도인 2011년까지 연장 적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선박펀드에 대한 출자액 소득공제제도를 도입하여 선박펀드 출자를 활성화해야 할 것이다.
넷째, 선하주간 실질적인 협력관계가 구축되도록 해야 한다. 선하주간 협력체제의 구축은 해운기업과 하주 모두에게 해상운송관련 불확실성을 감소시킴으로써 경영의 안정성 제고에 기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선하주 협력체제의 구축은 극히 미흡한 것으로 판단되는 바, 상대적으로 낮은 국적선 적취율이 이를 나타내고 있다.
2007년 기준 외항화물 8억 6,252만 톤 가운데 국적선에 의한 운송량은 1억 4,720만 톤으로, 국적선 적취율이 17.1%에 불과했음(www.spidc.go.kr, 2008. 10. 31). 선하주 협력의 대표적인 외국 사례는 앞에서 언급한 일본의 커미션 캐리어체제를 들 수 있다. 일본의 이러한 선·하주 협력관계는 1950년대 고도성장기의 해상운송 수요를 효과적으로 충족시키기 위한 필요에서 업계 자율에 의거 발전된 것이다. 즉, 선주와 하주 모두 협력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협력의 강화방안을 모색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선하주 협력의 유형 또는 분야는 ⅰ) 장기운송계약, 제3자물류(또는 제4자물류) 3자 물류(3PL)는 기업의 하나 또는 그 이상의 물류기능이 제3자에게 아웃소싱(outsourcing)되는 공급망 관리의 사례임. 그리고 4자 물류는 물류 업무 수행 능력 및 정보기술, 컨설팅 능력을 보유한 업체가 공급망상의 모든 활동에 대한 계획과 관리를 전담하여, 물류관리를 최적화함으로써,물류 효율화를 도모하는 것임., 기타 장기 거래관계의 구축 예를 들면 해운기업은 특정 하주의 계열사 조선소에 지속적으로 신조 발주하는 대신, 하주는 해당 해운기업의 운송서비스를 지속적으로 이용. ⅱ) 공동이용의 금융기관을 통한 협력, ⅲ) 직·간접적인 지분참여, ⅳ) 항만 등 물류시설에 대한 해운기업·하주 공동 투자 등에 의하여 선주와 하주 사이의 연계성을 높이는 방안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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