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물류의 대동맥 역할을 하고 있는 수에즈·파나마운하의 정상화 여부가 올해 컨테이너선 시황을 좌우할 거란 관측이 나왔다. 더불어 벌크선 시황은 수요 감소로 전년과 비슷하거나 악화하는 반면, 탱크선과 가스선시장은 공급량이 적어 호조를 띨 것으로 예측됐다.
올해 조선시장은 효자 선종의 발주 감소로 주춤하겠지만 내년에 다시 강세를 띨 것으로 보인다.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는 이 같은 내용의 해운조선시황에 대한 올 한 해 전망을 담은 보고서를 최근 발간했다.
‘컨’ 물동량 증가율 4% 그쳐
올해 컨테이너선은 수에즈·파나마운하에서의 통항 정상화 여부가 시황을 좌우할 거란 분석이 나왔다.
수출입은행 해외경제연구소 양종서 연구원은 올해 전 세계 경기가 크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을 들어 컨테이너 물동량 증가율이 3~4% 수준에 그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선복량은 전체의 80% 수준인 306만TEU 안팎의 신조선이 해운시장에 쏟아지면서 공급과잉 현상이 이어질 것으로 봤다. 조선사들의 인력 수급 문제에 따른 생산 차질로 일부 물량의 인도가 지연되고, 시황 악화에 의한 폐선이 늘어난다는 점을 고려해도 8% 내외의 선복량 증가를 피하긴 어려울 거란 분석이다.
특히 올해 인도되는 선박이 1만2000TEU급 이상의 대형선 비중이 높아 미국 유럽 등 원양 노선에서의 상황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우려했다.
양 연구원이 예상한 유일한 변수는 양대 운하의 정상화 여부였다. 이들 운하의 통항 차질이 지속되면 운임이 비교적 높은 수준에서 유지되거나 하락을 방어할 수 있겠지만 정상화될 경우 하반기 이후 운임이 침체 수준으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을 거란 주장이다.
그는 “양대 운하의 문제가 정상화될 경우 컨테이너선 시황은 다시 하락 추세로 돌아설 것으로 보이나 예상외로 양대 운하의 문제가 지속될 경우 시황이 운임이 비교적 높은 수준에서 형성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올해 벌크선 시황은 전년과 유사하거나 소폭 하락하는 수준이 될 것으로 관측했다. 전 세계 경제 성장이 지난해와 유사한 수준이 예상되고 경기 둔화에서 벗어날 가능성이 높지 않아 큰 폭의 수요 증가를 기대하긴 어려울 거란 지적이다.
여기에 중국 정부가 다양한 경기부양 정책을 시도하겠지만 지방정부 부채 등을 고려하면 건설과 부동산 경기부양에 투자될 여력이 높지 않다는 점도 부정적 요인으로 들었다. 올해 선복량 증가율이 3% 이내로 높지 않은 가운데 예상외의 수요 증가가 나타나면 운임이 빠르게 상승할 가능성도 높다.
양 연구원은 “현재와 같은 낮은 수요 증가 기대감 하에서는 전년 대비 평균적으로 유사하거나 낮은 시황을 나타낼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탱크선 시황은 벌크선 컨테이너선과는 대조적으로 강세를 띨 전망이다. 제한적인 신규 선복 공급과 교역노선의 장거리화 등이 시황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올해 해운시장에 공급되는 신조선이 크게 적어 운임과 용선료 등의 시황이 충분히 지지될 거란 예상이다.
수출입은행에 따르면 올해 원유운반 유조선의 인도 예정량은 연초 선복량의 0.8%에 불과하고 제품선의 인도 예정량도 약 2.2%의 낮은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양 연구원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점유율 유지와 미국의 증산 경쟁으로 유가가 크게 하락하며 예상외의 수요 발생과 시황 급등 가능성 등 석유시장과 운송시장의 불확실성은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나 수요보다는 탱커의 제한적 공급으로 시황 강세가 유지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 가스선시장도 비교적 양호한 시황을 유지할 것으로 관측됐다. 올해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인도 예정량은 연초 선복량의 약 12%에 해당하는 물량으로, 시황에 상당한 부담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양 연구원은 시황 침체 시 많은 수의 노후선 폐선이나 퇴출로 공급조절이 가능하고 양대 운하의 정상화 문제도 소폭이나마 운임을 지지할 가능성이 남아있어 비교적 양호한 수준의 시황은 유지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액화석유가스(LPG)선 역시 다소 하락할 것으로 예상되나 현재 시황이 높은 수준에 있어 비교적 양호한 시황은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다. 선복 인도량은 연초 선복량의 약 6% 수준으로, 비교적 많은 물량이며 높은 용선료 수준으로 폐선에 대한 기대감도 낮아 2024년 중 약 5% 내외의 선복량 증가가 예상된다고 분석했다.
조선업계 현안은 인력난 해소와 생산시스템 안정화
올해 조선시장은 지난 3년여간 시황을 이끌었던 효자 선종의 발주 감소가 예상되면서 잠시 숨고르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양 연구원은 올해 국내 조선사들의 선박 수주량이 전년 대비 약 11% 감소한 약 900만CGT를 기록, 1000만t(CGT·수정환산톤)대가 붕괴될 것으로 내다봤다. 수주액 역시 8% 줄어든 약 275억달러(약 36조7000억원)에 머물 것으로 점쳤다.
같은 기간 글로벌 발주량 역시 전년에 비해 30% 줄어든 2900만t, 발주액 역시 30% 급감한 810억달러(약 108조2000억원)에 그칠 전망이다.
그동안 조선사들의 수주잔고를 든든히 책임졌던 컨테이너선은 수에즈·파나마운하의 통항 차질에 수급 상황이 악화되고 있으며, LNG 운반선은 신조 수요가 정점을 지나며 발주 감소로 이어질 전망이다.
특히 해운업계가 암모니아 연료 추진선박의 상용화를 앞두고 관망세를 강화할 가능성이 있어 올해 신조선 수요를 끌어낼 유인이 약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올해 주춤한 시황은 내년 반등에 성공해 조선업계의 충격은 크지 않을 것으로 봤다. 암모니아 엔진의 상용화가 이뤄지는 데다 강화되는 탈탄소 규제에 대응한 수요가 발생하면서 내년 신조선 발주가 다시 늘어날 거란 지적이다.
양 연구원은 “암모니아 운반선과 액화이산화탄소 운반선 등 새로운 선종의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이들 물량이 전체 수요의 감소를 메우기엔 크게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조선사들은 올해 수주전에서 안정적인 일감 확보에 힘입어 신조선가 협상에서 우위를 점할 전망이다. 올해 1월 초 기준 국내 조선사들의 수주잔량은 3930만t으로 전년 대비 2% 늘었다. 초대형 컨테이너선과 LNG 운반선 등 건조 단가가 높은 선박을 중심으로 약 3년 반 치의 일감을 확보했다.
2년 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한 조선사들은 가격 협상력에서 우위를 점해 건조 단가를 올리는 게 수월해진다. 건조 단가 상승은 조선사들의 외형 확대로 이어진다.
올해 조선업계의 최대 과제는 인력난 해소와 생산시스템 안정화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지난 2022년 조선학과 졸업생은 850명으로 2014년 1241명과 비교해 32% 급감했다. 같은 기간 연구기술 인력은 9만2000명으로 2014년 대비 55% 줄었다. LNG 운반선 수주 확대로 화물창 생산 인력은 올해 약 1300명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생산 인력 부족 문제에 대응해 해외 기능 인력을 도입해 부족 인력을 보완하고 있지만 생산시스템 안정화 수준에는 크게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여기에 인력 운용에 여유가 있는 중국에 의존하고 있지만 일정 수준의 기술 지도가 필요한 데다 국내 생산기술이 경쟁국에 유출될 우려가 높다.
양 연구원은 “중국 역시 한국 물량을 받아주기 어려운 상황으로까지 변하고 있으므로 국내 조선업의 생산능력이 국내에서 회복되지 못한다면 시간이 갈수록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우려가 제기된다”고 말했다.
이어 “불가피한 기술 유출과 경쟁력 저하로 이어지며 심각한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있어 2024년엔 생산 부문에 어느 때보다도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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