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유조선사 유로나브와 노르웨이계 선사 프런트라인의 합병을 놓고 유로나브 설립자와 노르웨이 해운왕의 기 싸움이 거세지는 모습이다.
노르웨이 해운왕인 욘프레드릭센이 이끄는 프런트라인은 현지시각으로 지난 11일 유로나브와 통합을 위한 본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계약서엔 지난 4월7일 합의한 통합 내용이 담겼다.
통합 회사 이름은 노르웨이 선사의 이름을 그대로 쓰게 된다. 유로나브의 휘호 더 스툽(Hugo De Stoop) 최고경영자(CEO)가 통합 회사 수장에 취임한다.
통합 이후 프런트라인은 본사를 현재의 버뮤다에서 키프로스로 이전한 뒤 벨기에 유로넥스트브뤼셀과 노르웨이 오슬로, 미국 뉴욕 증시에 상장한다는 방침이다.
양사는 4분기(10~12월)에 유로나브 주식 1주당 프런트라인 주식 1.45주 비율로 주식교환을 진행할 계획이다. 주식 교환은 프런트라인이 유로나브 지분 50%를 초과 보유하면 마무리된다. 계약 체결일 현재 프런트라인은 유로나브 지분 18.8%를 보유 중이다.
통합회사 지분은 기존 유로나브 주주가 55%, 프런트라인 주주가 45%를 보유하게 된다. 지난 4월 통합 합의 당시 발표됐던 59 대 41의 비율에서 소폭 조정됐다.
프런트라인은 주식교환 절차가 마무리되면 소액주주의 주식을 강제 매입하는 스퀴즈아웃을 추진하는 것도 검토할 예정이다.
사베리스, 유로나브 지분 20%로 확대…합병 반대 재천명
하지만 유로나브의 최대주주인 벨기에 사베리스(Saverys) 가문이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통합이 성공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지난 4월 양사가 통합에 합의한 다음날 반대 의견을 냈던 사베리스 가문은 통합 계약이 체결되자 같은 입장을 재확인했다.
지난 1995년 유로나브를 설립하고 25년간 경영해 온 사베리스 가족회사 CMB(Compagnie Maritime Belge)는 프런트라인과 유로나브가 계약서를 체결한 다음날 뉴욕 증권거래소에 공시한 성명서에서 “프런트라인의 인수입찰을 지지하지 않는다”며 “자사가 찬성하지 않을 경우 스퀴즈아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프런트라인이 유로나브를 합법적으로 합병할 수 있는 가능성도 매우 낮다”고 말했다.
벨기에 공공인수합병법은 주주총회 참석 주주의 75%의 찬성으로 합병을 승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스퀴즈아웃은 전체 지분의 95%를 보유해야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유로나브 지분 20.28%를 보유한 CMB가 반대하면 스퀴즈아웃 절차는 진행조차 할 수 없고 합병도 쉽지 않다는 게 CMB의 판단이다.
CMB는 성명에서 “프런트라인과 유로나브의 결합이 유로나브 주주들에게 부가가치를 창출할 것으로 믿지 않는다”고 잘라 말하면서 “1.45 대 1로 정한 교환비율 역시 투명하지 않은 데다 유로나브 주주들의 가치를 희석시킬 위험이 있다”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아울러 지난 4월 통합 반대 이유로 제시했던 원유운반사업의 불확실성을 다시 꺼내들었다. 유로나브 최대 주주는 “세계적으로 탈탄소가 가장 중요한 흐름이 된 상황에서 원유 운송에 초점을 둔 유로나브의 현재 사업전략에 의문을 제기한다”며 “이 질문은 통합회사에도 똑같이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로나브가 경영난을 겪던 지난 2020년 4월 지분율을 5% 미만으로 낮췄던 CMB는 지난해 9월 욘프레드릭센이 유로나브 지분 9.8%를 취득하며 최대주주로 올라선 뒤 프런트라인과의 합병을 추진하자 1억7700만달러를 투자해 주식 재매입에 나섰고 결국 올해 3월 지분 13.23%를 확보하며 최대주주로 다시 올라섰다.
이후로도 프런트라인과 치열한 지분 확보 경쟁을 벌이며 7월 현재 지분율 20%를 넘어섰다. 이 회사가 가진 지분의 총가치는 5억3000만달러에 이른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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