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적컨테이너에 적용 중인 안전운임을 두고 국내 해운업계와 정부 간 갈등이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번엔 안전운임을 산정하려고 국토교통부가 실시한 원가조사가 도마 위에 올랐다.
국적 외항해운사 단체인 한국해운협회는 2일 국토부가 2022년 안전운임을 산정하려고 만든 ‘환적컨테이너 화물차주 원가 조사 결과’ 보고서의 신뢰도에 의문을 드러냈다.
화물차주 70명을 설문한 결과를 토대로 작성된 이 보고서는 지난달 13일 안전운임 실무급 협의체인 전문위원회에 발표됐다.
해운협회는 안전운임 산출 근거로 제시된 ‘내품 상하차 작업시간’을 예로 들며 부실 조사 의혹을 제기했다. 화물차주 설문 조사 결과 응답자의 94%인 66명이 환적컨테이너 운송 과정에서 1시간 이상의 내품 상하차 작업이 발생한다고 답했다. 내품 상하차 작업시간은 1.66의 비중으로 내년도 안전운임에 반영될 예정이다.
문제는 환적컨테이너는 봉인된 상태에서 우리나라를 경유만 하는 화물인 까닭에 국내에서 짐을 담거나 꺼내는 작업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에서 컨테이너선에 실려 부산 북항에 들어온 환적화물이 트럭으로 부산 신항으로 옮겨진 뒤 대형 선박에 실려 그대로 유럽이나 미주로 가는 식이다. 존재하지도 않는 작업을 원가에 포함시켜 안전운임을 계산한 셈이다.
협회는 차량 이동거리 산출도 문제 삼았다. 환적화물은 항내에서 수송되기 때문에 실제 이동거리가 4~13km 수준으로 짧은 데도 설문에 참여한 화물차주의 15%가 매일 400km 이상을 운전한다고 답했다. 조사 결과대로라면 해당 화물차주는 연간 3억원을 웃도는 운임을 환적화물 운송으로 벌어들인다는 계산이 나온다.
조사에선 공차운행률 50%, 무시동 에어컨, 히터 설치비, 수입차와 고가차, 화물연대 가입비 등을 원가 항목으로 반영했다. 공차율 50%라는 건 모든 화물차가 돌아갈 땐 짐을 싣지 못한다는 걸 의미한다. 협회는 38%의 차주가 컨테이너를 내린 곳에서 바로 다른 화물을 싣고 있어 실제 공차율은 25% 미만이라고 주장했다.
이 밖에 주행거리 평균연비 운송일수 운송횟수 업무시간 등의 조사가 차주 답변에만 의존해 객관성을 담보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협회 관계자는 “전체 화물차주의 2~3%만을 현장에서 섭외해 진행한 원가 조사는 표본이 부족한 데다 별도의 검증 절차를 마련하지 않아 신뢰도에 문제가 있다”며 “환적화물 안전운임의 불합리성을 수차례 문제제기했음에도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9월24일 해운업계의 주장을 받아 들여 “2021년 부산항 환적컨테이너 안전운임 고시가 비합리적인 방식과 객관성이 결여된 수치를 적용하고 과다 산정돼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앞서 법원은 지난 1월에도 2020년 환적컨테이너 안전운임 취소 소송에서 해운사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이 재판 항소심은 이달 중으로 결과가 나올 예정이다.
원가조사 보고서에 내품 상하차작업비 명시
국토부는 해운협회의 주장을 일축했다.
해명자료에서 “화물차주 원가조사는 공식 통계를 최대한 활용하되 불가피한 경우에 한해 설문 조사방식을 사용하고 있고 원가조사 결과는 안전운임위원회에서 타당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일부 조정을 거쳐 결정된다”며 “환적컨테이너는 내품 상하차 작업시간 대신 ‘항만에서 화물차에 컨테이너를 싣고 내리는 작업시간’이 원가 조사에 반영됐다”고 말했다.
화물차주 운송 원가는 교통연구원과 회계법인 검증을 거쳐 객관적으로 조사되고 물류 전문가와 이해관계자로 구성된 화물자동차 안전운임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안전운임에 반영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국토부 해명과 달리 ‘환적컨테이너 화물차주 원가 조사 결과’ 보고서엔 ‘내품 상하차 작업시간’ 항목(
사진)이 적시돼 있다.
해운협회는 “환적컨테이너는 크레인을 이용해서 바로 차량에 싣거나 내리는 게 작업시간의 전부”라며 “크레인 작업을 기다리는 대기시간은 따로 조사에 반영돼 있어 국토부 해명은 사실과 다르다”고 재반박했다.
문재인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에 포함된 안전운임제는 2020년 1월1일 수출입 컨테이너와 시멘트를 대상으로 전격 도입됐다. 화물차 운전자의 과로·과적·과속을 금지하고자 정부에서 적정운임을 조사해 매년 발표하며 안전운임보다 낮은 운임을 지급하면 과태료 500만원이 부과된다. 2022년 12월31일까지 3년간 일몰제로 운영된다.
제도 도입 과정에서 환적컨테이너까지 안전운임 대상에 포함돼 해운업계가 반발하는 상황이다. 해운협회에 따르면 2019년 310억원이었던 국적 컨테이너선사들의 환적화물 트럭운송 비용은 안전운임제가 도입된 지난해 490억원으로 57% 급증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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