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진해운 사태 이후 변화의 기로에 서있는 국내 해운업계와 무역업계가 상생을 도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한국선주협회와 한국무역협회는 지난 22일 무역센터 대회의실에서 ‘선·화주 상생의 길’ 세미나를 공동 개최했다. 이날 국내 해운사와 화주는 양측의 상생협력 방안을 모색했지만 물류비 문제를 놓고 온도차를 보였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지난 2월 무역협회와 선주협회가 공동 발주한 ‘선화주 상생을 위한 정책과제’에 대한 연구용역 결과가 나와 청중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윤재웅 연구원은 한진해운 사태 이후 국적선사의 동남아항로 점유율이 더욱 높아졌다며, 선사들이 앞으로 더 많은 항로를 놓아야 화주들이 해외로 나아갈 수 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선·화주 상생을 위해 상호 지분출자와 장기운송 계약을 바탕으로 한 동반자적 관계 형성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처럼 국내 화주 중심의 서비스 강화 노력이 선행돼야 선사들이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특히 그는 화주의 선사에 대한 지분투자를 통해 중장기적으로 위험과 수익을 공유해 '트레이드 오프' 관계를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연구원은 “해상운임이 화주에게는 비용, 선사에게는 매출로 이어지는 상충관계(trade-off)가 있어 경기 사이클에 따라 입장이 바뀌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선화주의 상생을 위해 정부의 관심과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며, 동반자적 관계 형성에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진해운 사태 이후 국내 선사의 자국화물 적취율은 전 세계 컨테이너 항로에서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아시아 역내 화물에 대한 자국 적취율은 증가하고 있는 반면, 유럽 미주 등 아시아 역외 취급실적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2012년 20.8%였던 아시아 역내 적취율은 지난해 24.2%로 확대됐지만, 같은 기간 아시아 역외는 8.7%에서 6.8%로 감소했다.
컨테이너 항로 역시 한일 한중노선은 각각 118개 73개로 높은 반면, 호주와 남미 구주항로는 각각 2개 4개 5개에 불과하다. 적자 노선 폐지와 신규 노선 미개발은 화주에게 영업 환경 악화를 의미한다. 원양항로 서비스 비중이 높지 않아 화주들의 외국적선사 이용이 불가피해보이는 대목이다.
윤 연구원은 일본의 사례를 언급하며 정부가 운임 보조를 통해 필수 항로를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신규 및 적자노선을 조인트벤처(JVC)로 분리해 정부 및 화주의 지속적인 출자를 통해 노선을 유지하고 흑자 시기에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지원 모델을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국적선사를 이용하는 화주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우리나라의 필수선대 지원액은 지난해 61억8천만원에서 올해 57억원으로 줄었다. 국가 필수선대 지원비를 운항비 보조로 확대해 컨테이너 화주가 저렴하게 국적선사를 이용할 수 있도록 제도의 범위와 지원내역을 강화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정부가 화주에게 지원이 가능한 수출입 부대비용은 부두이용료 환급과 수수료 지원이 있다. 그는 "국적선사를 이용하는 화주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면 운임을 낮출 수 있는 대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그는 국내 조선업계와의 상생 방안도 내놓았다. 그는 한국선박해양의 아시아 역내 선사와 소형선박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는 현대미포조선 성동조선해양 대선조선 STX조선해양 등 중소조선소와 상생을 위한 방법이라 정부 정책과 부합한다는 설명이다.
화주 "물류비 절감위해 외국적선사 이용"
무역업계를 대표해 발표에 나선 한국타이어는 국적선사의 '운임 경쟁력 문제'와 '선적 서비스 커버리지'에 대해 지적했다.
한국타이어의 외국적선사 이용률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4년 83.5%였던 비중이 2016년 88.5%까지 확대됐다. 2014년 16.5%에서 지난해 11.5%로 쪼그라든 국적선사 이용률과 대조적이다.
한국타이어의 국적선사 이용률은 주로 북미(15.8%)와 중동(16.1%), 아태(14.9%) 지역에 집중됐다. 외국적선사는 전 항로에서 평균 80%의 높은 비중을 보였다. 국적선사 이용률이 제로인 중남미, 아세아·인도에서 외국적선사를 통한 수출 비중이 100%라는 점이 눈에 띄는 부분이다.
한국타이어 고건 책임은 "물류비를 줄이기 위해 국적선사와 비교해 약 20% 운임이 저렴한 외국적선사를 이용할 수밖에 없다"며 "회사의 해외 판매 채널과 국내 선사들의 서비스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고 있어 신규 거래처 발굴과 판매 확대에 제약이 따른다"고 말했다. 또한 북미는 국적선사의 커버리지가 89%이지만 선임이 경쟁선사 대비 20% 높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화주의 상생 정책과 관련해 국적선사의 광양항 기항을 가장 먼저 꼽았다. 지난해 약 30%의 물량을 광양항을 통해 수출한 한국타이어는 한진해운 파산으로 물류비 부담이 커졌다. '2M+H'의 광양항 서비스 축소로 한국타이어는 부산항을 통해 화물을 보냈고 내륙운송료로 매달 약 1억1천만원의 물류비가 늘었다. 고 책임은 "광양항 기항시 비용 절감을 위해 국적선사의 이용에 대해 검토가 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밖에 그는 KCFI(Korean Container Freight Index·가칭)를 개발해 선·화주의 합리적인 운임 의사결정을 위한 지표로 활용하자고 제안했다. 현재 국내 화주들은 SCFI(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 CCFI(중국발컨테이너운임지수)와 같은 중국발 인덱스를 차용해 운임 추이를 확인하고 있다. 고 책임은 "한국과 중국 운임의 동기화가 100% 되지 않아 적정 운임 산정에 애로가 발생한다"며 "해수부나 선주협회 등의 기관에서 취합해 공표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기극복 지원보다는 자구노력만 강요"
자구노력을 강요하고 채권회수에만 급급한 공직자들과 금융당국을 향한 쓴소리도 나왔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은 채권단의 강요로 핵심자산인 선박과 터미널 등을 매각해 부채상환에 사용했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벌크선과 LNG선을 사모펀드가 매입, 에이치라인 및 현대LNG해운이 설립됐다. 한국선주협회 김경훈 부장은 우리나라가 IMF 실패사례를 반복하고 있다며, 채권단의 자구노력이 경쟁력 강화에 전혀 도움이 안 돼 결국 한진해운이 파산에 이르게 됐다고 밝혔다.
정책금융기관의 해외선사 지원실적도 우리나라와 기업과 극명히 갈린다. 2009년 이후 해외선사에게는 108억달러가, 우리 기업에게는 19억달러가 지원실적으로 집계됐다. 특히 머스크에는 42억달러를 지원해 세계 1위 선사의 몸집을 더욱 키워주는 역할을 했다. 그는 우리나라 금융기관이 국적선사 대비 9배 이상의 금액을 외국 해운사에 지원해줬다고 밝혔다.
김 부장은 우리나라 해운업 재건을 위해 원양과 근해에서 각각 100만TEU 20만TEU 이상의 선복을 확보한 글로벌 메가 캐리어가 육성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전략물자 선박을 인수해 설립된 에이치라인과 현대LNG해운의 해외매각을 방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한국근해수송협의회 김근홍 사무국장은 "외국적선사들은 우리나라가 모항이 아닌 단지 기항을 하기 때문에 많은 화물을 집화하기 위해 당연히 저가운임을 제시할 수밖에 없다"며 "국적선사들이 자국 화주에게 무료장치기간 제공 등 보이지 않는 더 많은 서비스를 제공하는데도 불구하고 운임 때문에 외국적선사를 이용하는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동남아 취항선사들이 최근 최소한의 채산을 맞추기 위해 운임회복을 하고 있다"며 "앞으로 선화주간 정례적인 모임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한국타이어 주상현 책임은 "타이어 시장도 중국기업들의 성장으로 경쟁이 치열해 물류비를 줄이기 위한 경영진의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며 "사실상 단기간에 개선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장기적인 대책이 가시적으로 보인다면 의지를 갖고 협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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