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펠터미널코리아 전경 |
‘울산항’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액체화물’이다. 매년 1억9천만t 규모의 액체화물이 울산항에서 처리되기 때문이다. 울산항은 액체화물 처리 국내 1위, 전 세계 3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서울에서 3시간 반을 달려 도착한 곳은 울산항에서 세 번째로 가장 많은 액체화물을 처리하는 오드펠터미널코리아다. 이 회사는 지난해 한 세기를 맞은 노르웨이 오드펠과 국내 석유화학 선도 업체인 대한유화의 합작으로 2002년에 설립됐다. 다우, 바스프, 사솔, SK, 동서 등 주요 트레이더와 케미컬 기업이 이 회사의 주요 고객이다.
오드펠터미널코리아의 첫 인상은 ‘안전 제일’이었다. 출입관리실에서 신상정보를 작성 후, 터미널 현장으로 들어설 무렵 본인의 손에 종이 한 장이 전달됐다. 바로 안전정보카드다. 카드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화재, 폭발, 누출, 가스방출 등에 대한 비상조치 사항이었다. 이제야 이곳이 위험물인 액체화물을 다루고 있는 장소라는 점을 실감했다.
현장에 들어서자 두 귀를 먼저 의심했다.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안벽크레인, 리치스태커 등 수많은 기계음이 섞여 들리는 컨테이너 터미널과는 정반대였다. 아침부터 내리고 있는 비 때문에 그런지 정적은 더욱 짙게 깔렸다. 기자를 먼저 맞은 건 다양한 사이즈의 저장 탱크와 파이프였다. 색은 모두 같았지만 파이프가 향하는 종점은 모두 달랐다. 알고 보니 탱크로리 트럭, 인근 정유공장, 선박 등 파이프의 목적지는 다양했다.
이 터미널에는 3만~5만DWT(재화중량톤수)급 유조선들이 부두에 뱃머리를 댄다. 머나먼 북미 땅에서 액체를 가득 싣고 태평양을 건너온 선박들이 터미널에서 파이프라인을 이용해 액체를 하역한 후 탱크에 저장한다.
“트레이더들이 동남아시아나 한국, 중국 등에 팔고 싶을 때는 큰 배에 액체화물을 싣고 들어옵니다. 그러면 저희 터미널 탱크에 화물을 보관해 두었다가 구입을 희망하는 고객이 나타나면 다시 배로 나가거나, ISO 컨테이너, 탱크로리 트럭, 드럼 등으로 운송되죠.”
이날 현장을 안내한 오드펠터미널코리아 박동순 상무(사진)는 20여 년간을 현장에서만 근무한 액체물류 전문가다. “액체화물의 종류는 무수히 많고 저장용량과 화물의 특성에 따라 보관설비가 다 달라요. 따라서 프로세스가 일률적인 컨테이너 터미널과는 다르게 매우 유연하게 대처해야 합니다.”
제조공장의 경우 대개 고정된 파이프라인으로 작업하지만 이 터미널은 화물의 종류에 따라 파이프도 다양했다. 그는 경우에 따라서는 같은 설비로 여러 종류의 화물을 취급하기 때문에 오염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설비의 모든 부위를 깨끗이 세정하는 것이 고객이 믿고 맡긴 화물을 안전하고 좋은 품질로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라고 밝혔다.
이 터미널에서는 윤활기유, 에탄올, 부탄올, 아크릴로니트릴, 메틸아이소부틸케톤 등 취급하는 액체만 50여종에 달한다. 이런 액체류들은 이 터미널에서 한 해 동안 100만t이 처리된다. 액체의 종류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할 경우 섣불리 대처해선 안 된다. “만약 소방서에서 나올 경우 화재 진압이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화물에 대한 안전 보건자료가 저장 탱크 외벽에 항시 부착돼 있습니다.”
▲액체가 담긴 대형 탱크 |
액체화물이 담기는 이곳 터미널의 탱크는 총 85기이며 저장능력만 약 31만kL(킬로리터)에 달한다. 우유 한 팩인 1L(리터)의 1000배가 1kL라는 점을 생각해 볼 때 엄청난 양이다. 550kL의 액체를 담을 수 있는 소형 탱크부터 최대 1만kL까지 부피도 다양했다. 화물 특성에 따른 보관 조건을 맞추기 위해 스테인레스 스틸 재질 탱크 및 보온, 보냉 설비의 탱크도 갖춰져 있다.
자나 깨나 안전관리는 ‘필수’
안전은 곧 예방이다. 대형사고는 엄청난 인명과 재화의 손실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이 터미널도 예외는 아니다.
오드펠터미널코리아는 최고의 품질과 안전을 위해 다국적 화학업체들이 요구하는 CDI-T(Chemical Distribution Institute-Terminals) 인증을 획득했다. 이밖에 국제규격인 ISO-9001, ISO-14001, OHSAS 18001 인증을 취득해 신뢰도 제고에 힘쓰고 있다.
박 상무는 “CDI-T 협회 사이트에는 인증을 취득한 업체의 설비현황, 안전장비, 관리 절차서 등의 유무 등이 세부적으로 올라와 있다. 화주들은 본인의 액체화물을 맡길 업체의 CDI-T 질문 내용의 점수와 안전도 등을 고려해 선택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회사는 작업자가 불안전하다고 생각되면 누구라도 작업을 멈추고 보고 후 안전도 제고 후 작업할 수 있도록 방침을 정해 실행하고 있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그는 손가락으로 원형 탱크를 가리켰다. 탱크를 자세히 보니 겉면에 빨간색과 노란색의 작은 파이프가 있었다. 박 상무에 따르면 화재가 발생할 경우 빨간색은 주위 탱크의 화재로 인한 복사열로 불이 번질 것을 대비해 탱크 벽면에 물을 뿌리는 냉각을, 내부로 연결된 노란색 파이프는 탱크 화재시 탱크 안으로 폼이 뿌려져 질식소화 기능을 한다고 밝혔다. 단순히 둘러져 있는 파이프로만 생각하기엔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작업자가 파이프배관을 통해 드럼통에 액체를 주입하고 있다. |
원형 탱크를 뒤로 하고 인기척이 나서 둘러보았더니 친숙한 물건이 눈에 들어왔다. 컨테이너였다. 현장 담당자와 터미널에 들어선 이후 처음 마주한 작업자는 파이프배관을 통해 드럼통에 액체를 주입하고 있었다. 그 옆에서는 액체로 채워진 드럼통이 지게차에 실려 컨테이너에 채워지고 있었다. 매일 이렇게 나가는 드럼통은 약 400여 통에 달했다. 20피트 컨테이너에는 80통을 적재할 수 있다. 하루에 5TEU가 작업되는 셈이다.
마지막으로 기자의 발걸음이 향한 곳은 소방 펌프실이었다. 이 곳에는 화재 발생 시에 진압이 필요한 물탱크와 이를 이송할 충분한 능력의 펌프가 설비돼 있으며, 평소에도 소방 배관 내부는 항상 적정의 압력이 걸린 상태에서 터미널 전체에 분포돼 있다. 정전시에도 대응 가능토록 엔진을 이용한 대용량의 펌프도 2기가 구비돼 있다. 혹시라도 모를 상황에 대비한 안전 방어막이 몹시 견고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금까지 안전하게 터미널이 가동될 수 있었던 비결을 묻자 박 상무는 평소 안전을 최우선 하는 CEO의 리더십과 지속적인 교육훈련을 통해 직원 모두의 안전 의식이 철저히 고취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많이 본 기사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