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해항로도 지난해 해운 불황의 시련을 비켜갈 수 없었다. 특히 유럽항로의 길목인 동남아항로는 원양선사들의 캐스케이딩(선박 전환배치) 전략에 치여 선복과잉의 후유증을 톡톡히 앓았다. 운임은 곤두박질 친 반면 연료비용은 껑충 뛰면서 선사들의 수익성은 악화일로를 내달렸다. 2010년에 영업실적 최고기록을 갈아치웠던 근해항로 취항선사들이 지난 한 해 줄줄이 적자 성적을 낸 것에서 깊은 불황의 그늘을 읽을 수 있다.
올해 들어선 해운시황 침체의 주 원인이었던 원양항로가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는 점에서 근해항로 선사들도 시황 회복에 대한 기대감을 키우고 있다. 원양항로 취항 선사들은 최근 운임회복에 결사항전 태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항로에선 100% 가까운 운임인상(GRI)을 실시해 성공을 거뒀으며 북미항로도 전체적인 운임 수준이 500~600달러가량 높아졌다. 1월 3월에 이어 4월에도 또 한 차례 GRI를 도입하며 본격적인 수익 내기에 돌입했다.
근해항로도 선사 협의체를 중심으로 운임회복을 위한 담금질에 한창이다. 동남아항로가 3월부터 운임인상에 들어갔으며 한중항로도 4월부터 운임회복을 꾀할 계획이다.
근해항로 빅4 매출 늘었지만 수익 곤두박질
근해항로 국적선사 빅4인 고려해운 장금상선 STX팬오션 흥아해운 등은 지난해 영업이익이 크게 꺾이거나 적자 전환했다. 지난해 이들 4개 선사의 전체 매출액은 3조257억원으로 1년 전의 2조8415억원에 비해 6.5% 성장했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STX팬오션과 흥아해운이 적자를 냈으며 고려해운도 간신히 흑자에 턱걸이하는데 머물렀다.
STX팬오션 컨테이너선부문의 영업이익은 2010년 -1억원에서 지난해 -540억원으로 적자폭이 껑충 뛰었으며 흥아해운은 같은 기간 202억원 흑자에서 -61억원으로 적자 전환했다.
고려해운은 97% 감소한 14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을 내는데 그쳤다. 적자는 면했지만 지난해 운임하락, 연료비 상승이란 해운시장 이중고에 크게 고전했음을 엿볼 수 있다. 장금상선은 482억원의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2010년의 900억원에 비해 반 토막 난 수준이지만 다른 선사들에 견줘 비교적 견실한 수익을 냈다는 평가다.
근해항로 선사들의 수익악화 배경엔 동남아항로의 부진이 자리 잡고 있다. 지난해 동남아항로는 대규모 선복 공습으로 큰 어려움을 겪은 항로 중 하나다. 물동량은 늘어났지만 선복 과잉으로 운임은 오히려 크게 떨어졌다. 원양항로와 비슷한 시황 패턴을 보인 셈이다.
동남아정기선사협의회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동남아 8개 지역(대만·홍콩·필리핀·태국·싱가포르·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베트남)으로 수출된 해상항로 컨테이너 물동량은 104만7천TEU를 기록했다. 2010년의 98만5천TEU에 비해 6.3% 성장한 실적이다. 수입 컨테이너 물동량은 80만3천TEU로, 1년 전 70만1천TEU에 비해 14.6%나 늘어났다.
하지만 지난해 동남아항로 운임은 크게 떨어졌다. 부대할증료를 포함해 20피트 컨테이너(TEU) 당 500~600달러대를 형성했던 동남아 주요항로 운임은 지난해 최고 20~30% 급락했다. 300달러대 후반까지 떨어진 지역도 포착됐다. 반면 선박 연료유 가격은 2010년 450~470달러(IFO 180cst 기준)에서 1년 새 650달러대까지 치솟았으며 올해 들어선 750달러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선사들은 지난해 유가할증료(BAF) 외에 긴급유가할증료(EBS)를 도입하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했지만 급락한 시장 환경에 무위에 그치고 말았다. 흥아해운의 경우 지난해 동남아항로에서 8% 늘어난 3355억원의 매출액을 거뒀으나 운항원가가 20% 이상 늘어나면서 수익성은 크게 뒷걸음질쳤다.
한 국적선사 관계자는 “지난해 동남아항로는 케스케이딩에 의한 선복 증가로 선사들은 제살 깎아먹기식 출혈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다”며 “반면 벙커비용은 천정부지로 치솟아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게 선사들의 지상과제였다”고 지난 한 해를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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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항로만 ‘독야청청’
한중항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한중항로는 일부 노선을 제외하고 좋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고 선사들은 말한다. 물동량은 매년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운임은 바닥권을 헤매고 있는 실정이다. 황해정기선사협의회(YSLC)에 따르면 지난해 한중항로의 수출 수입 컨테이너 물동량은 각각 110만4천TEU 149만9천TEU로, 2010년에 비해 각각 8.1% 7.3%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한중항로는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를 강타했던 2009년에도 수출항로에서 플러스 성장할 만큼 물동량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하지만 운임은 그 반대다. 부산항 기점 수출 운임은 20~30달러를 넘어 0달러로 치닫고 있는 데다 수입항로의 경우 마이너스운임 폭이 날로 커지는 기형적인 시장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한중항로의 어려움은 더욱 커졌다. 중국 선사들의 서비스 확대로 평택항 기점 운임마저 0달러 시대로 접어들기에 이른 것이다. 인천·평택항 기점 노선은 한중항로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곳으로 평가받는다. 장금상선이 다른 선사들과 달리 선방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인천·평택항을 기점으로 한 한중항로 서비스를 다수 운영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장금상선의 자회사인 한성라인의 지난해 영업실적이 크게 뒷걸음질치지 않은 것도 인천-웨이하이란 차별화된 서비스 때문이다. 하지만 이젠 인천·평택 기점 노선마저도 향후 전망이 불투명해지게 됐다.
한일항로는 근해항로 중 유일하게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는 곳이다. 물동량은 비록 다른 두 항로에 비해 성장 폭이 높지 않지만 운임은 외부 환경의 부침에 아랑곳 않는 저력을 보여줬다. 지난 2007년 말 도입한 선적상한제(실링제) 효과다. 선적상한제 도입 후 한일 수출항로 운임은 한 때 300달러 이상까지 치솟았다가 하락 해 몇 년 째 TEU당 230~250달러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에도 이 같은 운임 수준은 흔들림이 없었다.
작년엔 특히 동일본 대지진이 물동량 폭증이란 호재로 작용해 선사들의 실적이 껑충 뛰기도 했다. 한일항로를 주력으로 서비스하는 선사들이 지난해 두각을 나타낸 이유다.
한국근해수송협의회(KNFC)에 따르면 지난해 한일항로 물동량은 165만1천TEU로, 2010년에 비해 12.4% 늘어났다. 이 가운데 수출 물동량은 95만6천TEU로 16.8%나 급증했으며 수입 물동량은 69만4천TEU로 6.8% 늘어났다. 흥아해운은 지난해 한일항로에서 16.8%의 매출액 신장을 일군 것으로 파악됐다. 한일항로를 주력으로 사업을 벌이고 있는 동진상선도 10%의 외형 성장을 달성했다. 일본 대지진에 따른 반사이익을 톡톡히 누린 셈이다.
운임회복 성공조짐 보인다
올해 근해항로 선사들은 연료비 상승 폭에 맞춰 BAF를 인상하는 한편 동남아항로와 한중항로에서 운임회복을 반드시 성공시킨다는 각오다.
가장 부각되고 있는 항로는 단연 동남아항로다. 동남아항로는 3월 이후 동시다발적인 운임회복 프로젝트에 돌입했다. 선사들은 3월1일 포워더(국제물류주선업체) 등의 단기수송계약(스팟) 화주들을 대상으로 동남아항로 운임을 TEU당 50달러 올렸다. 물동량이 강세를 띠고 있는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와 필리핀 마닐라의 경우 성공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총액으로 따져 대략 500달러 안팎까지 운임이 상승했다고 선사들은 전했다. 베트남 호치민과 하이퐁의 경우 수입노선에서 인상분이 대부분 적용됐다는 평가다.
선사들은 4월부터는 대형화주들을 대상으로 한 2차 GRI에 들어간다. 주요 목표는 전자회사와 석유화학제품(레진) 화주들이다. 또 3월 GRI에서 비협조적이었던 일반화주들을 대상으로 4월 중순께부터 추가적인 GRI 드라이브를 가동한다. 현재 부산과 서울에서 1곳씩의 포워더가 GRI에 협조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선사들은 이들과의 협상이 잘 진행되지 않을 경우 명단을 시장에 공표하는 강공책까지 불사한다는 구상이다. 취항선사 관계자는 “자카르타와 마닐라는 선복상황이 빠듯해 운임회복이 잘 이뤄지고 있다”며 “원양선사들도 아시아 지역에서 선복 조정에 들어가고 있어 전망은 낙관적”이라고 말했다.
한중항로도 운임회복에 나선다. 황해정기선사협의회는 4월부터 최저운임제(AMR) 형태의 운임회복 프로그램을 도입한다. 최저운임 가이드라인은 TEU 기준으로 50달러가 될 전망이다. 현재 수출항로 운임 수준에 미뤄 약 30~50달러를 인상한다는 전략인 셈이다. 선사들은 BAF도 기존 수출 80달러 수입 160달러에서 각각 100달러 190달러로 올려 받기로 방침을 정했다. BAF 인상은 4월2일부터 이뤄진다. 한일항로에선 BAF를 3월15일부터 기존 100달러에서 125달러로 인상했다.
이와는 별도로 3국간 항로에서의 운임회복도 진행된다. 중국과 일본 지방항만을 잇는 항로에서 선사들은 엔화할증료(YAS) 130달러 긴급유가할증료(EBS) 170달러 긴급비용회복할증료(ECRS) 50달러 등 다양한 형태의 부대운임 도입을 통해 총 350달러가량 운임을 인상할 계획이다. 3월 초부터 남중국발 동남아행 노선에선 터미널할증료(THC)를 600위안에서 750위안으로 올려 받고 있기도 하다.
운임회복을 성공시키 위해 선사 단체도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동남아정기선사협의회는 3월 말 대만선사 4곳을 찾아가 운임회복에 동참해 줄 것을 요청했다. 4월 중순께엔 회원사 사장단 회의를 마련해 운임회복 의지를 재확인한다는 계획도 세워 두고 있다.
아시아역내협의협정(IADA)은 운임회복을 독려하기 위해 당초 4월11일 개최할 예정이었던 사장단 회의를 3월 말로 앞당기기도 했다. KNFC도 3월 말 임원회의를 갖고 BAF 부과 현황을 파악하는 한편 수입항로에서의 운임회복에 대해 숙의했으며 YSLC는 3월16일 열린 정기총회에서 운임회복 계획을 확정한 뒤 회원사와 구체적인 도입방안을 논의 중이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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