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감항능력 결여와 손해 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는 영국해상보험법상의 근인설에 따른 근인관계보다 그 범위가 넓은 광의의 개념이라는 최근의 판례를 중심으로
<2.21자에 이어>
바. 엔진출력(마력) 부실고지 등에 관한 계약 취소(avoid)주장에 대해
① 피고들이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이 사건 보험계약 및 이 사건 공제계약의 체결 당시 이 사건 선박의 객관적 가치가 보험 및 공제가액보다 현저하게 미달된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
또한, ② 영국해상보험법상 최대선의의 원칙에 기초한 고지의무는 원칙적으로 계약체결단계에서 발생하는 의무이므로, 원고가 이 사건 보험계약이 체결되기 전에 이 사건 항해의 예인방법에 대해 부실고지했다는 점에 대한 아무런 주장·증명이 없는 이상 이 사건 항해 직전에 이 사건 예인방법에 대해 부실고지했음을 이유로 하는 피고들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최대선의의무가 계약이행단계에서도 존속하기는 하나, 피보험자에 대한 과도한 부담을 초래하고 보험계약관계의 형평을 훼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계약체결 전 최대선의의무가 계약이행단계에 동일하게 적용돼서는 안 되고, 계약성립 후 최대선의의무는 범위 면에서 매우 제한적이고 소극적인 의무일 뿐 계약의 일방 당사자에 대해 상대방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이고 완전하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의무의 범위가 확대되는 것은 아니며, 결과적으로 일단 보험계약이 성립하게 되면 최대선의의무는 악의에 의한 행동을 삼가야 할 의무로 축소된다는 것이 현재의 일반적인 해석으로 보이고, 이에 따르면 일단 계약이 성립된 후에 발생한 중요한 사실은 원칙적으로 고지의무의 대상이 아닌 것이 된다).
사. 영국해상보험법상 손해방지의무 위반으로 인한 면책 주장에 관해
(1) 영국해상보험법 제78조 제4항은 ‘피보험자와 그 대리인은 손해를 방지 또는 경감시키기 위한 합리적인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It is the duty of the assured and his agents, in all cases, to take such measures as may be reasonable for the purpose of averting or minimizing a loss)’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영국해상보험법 제55조 제2항 a호는 담보위험을 근인으로 해 손해가 발생한 경우 비록 그 손해가 선장이나 선원의 불법행위 또는 과실이 없었더라면 발생하지 않았을 경우에도 보험자로 해금 보상책임을 지도록 규정하고 있어 위 두 조항의 충돌이 문제될 수 있는데, 이에 관해 영국해상보험법 제78조 제4항은 그 의무 위반이 이전의 담보위험을 대체해 해당손해의 근인으로 될 정도로 중대한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된다고 해석된다.
따라서 영국해상보험법 제78조 제4항의 효과는 매우 제한적이고, 단순한 과실이 아닌 중대한 과실 또는 무모하게 한 중대한 의무위반의 경우에 한정된다고 봄이 타당하다.
(2) 영국해상보험법상 손해방지의무 위반으로 인한 피고들의 면책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
아. 영국해상보험법상 감항능력 결여로 인한 면책 주장에 대해
(1) 이 사건 선박이 이 사건 항해 개시 당시 감항능력이 있었는지
(가) 관련 법리 : 영국해상보험법 제39조 제4항은 “어느 선박이 부보된 해상사업에서 통상 일어날 수 있는 해상위험을 견디어낼 수 있을 만큼 모든 점에서 상당히 적합(reasonably fit)할 때에는 감항능력이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고 규정하고, 제39조 제5항은 “기간보험(Time Policy)에서는 해상사업의 어떤 단계에서이든 선박이 감항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묵시적 담보가 없다. 그러나 피보험자가 선박이 감항능력이 없음을 알면서도(with privity of the assured) 항해하게 했다면 보험자는 감항능력이 없음으로 인해 발생한 일체의 손해에 대해 책임을 지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영국해상보험법상의 법리에 의하면, 해상보험의 경우 감항성 또는 감항능력(seaworthiness)은 ‘특정의 항해에서 통상적인 위험에 견딜 수 있는 능력(at the time of the insurance able to perform the voyage unless any external accident should happen)’을 의미하는 상대적인 개념으로서, 어떤 선박이 감항성을 갖추고 있느냐의 여부를 확정하는 확정적이고 절대적인 기준은 없고, 특정 항해에서의 특정한 사정에 따라 상대적으로 결정돼야 하며(대법원 1996년 10월11일 선고 94다60332 판결 참조), 항해보험의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감항능력 불비로 인한 보험자의 면책을 인정하지만, 기간보험의 경우에는 그러한 묵시적 담보가 인정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되, 예외적으로 피보험자가 선박이 감항능력이 없음을 알면서도 항해하게 한 경우에 한해 보험자가 면책될 수 있다(대법원 2001년 5월15일 선고 99다26221 판결 참조).
따라서 이 법리에 의하면, 이 사건 보험계약 및 이 사건 공제계약과 같은 선박기간보험에서 감항능력 결여로 인해 보험자가 면책되기 위해는 손해가 감항능력이 없음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어야 하고, 피보험자가 감항능력이 없음을 알고 있어야 하며 이러한 감항능력의 결여와 보험사고 사이에 인과관계, 즉 손해의 일부나 전부가 감항능력이 없음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라는 점이 인정돼야 하되, 이러한 요건에 대한 증명책임은 보험자가 부담한다(대법원 2002년 6월28일 선고 2000다21062 판결 참조).
(나) 판단 : ① 비록 예인방법에 관한 구속력 있는 기준 등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 선박의 예인방식은 예인업계에서 널리 통용되는 지침 상의 외해에서 주로 사용되는 예인방식에 해당하지 아니하고, 원양항해에서는 사용되기 부적절한 방식인 점, ② 해심 역시 이 사건 선박의 예인방식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 연구용역결과에 따라 그 예인방식이 원양항로와 겨울철 계절의 특성에 적합하지 않는 것이라고 판단한 점, ③ 이 사건 항해시기인 12월 중의 이 사건 항해에서 예정한 장거리 원양항로 상 통상적으로 예견되는 기상상황은 프랑스 선급 및 AJ협회가 발급한 관련 증서에서 정한 항해조건을 충족시키는 것이 매우 어려워 보이는 점, ④ 더욱이 AJ협회가 발급한 예인적합증명서는 탄자니아가 아닌 제주까지 항해할 것을 전제로 한 예항검사에 따른 것이고, 그 허가의 기초가 된 기술자문회사의 예인항행안전평가 역시 제주까지의 항해에 대한 평가일 뿐이어서 이 사건 선박의 감항성을 뒷받침하는 자료로 삼을 수 없으며, 실제로 이 사건 항해의 기상 상황이나 항로가 위 증명서나 프랑스 선급의 인증서에서 정한 운항 조건 내지 허가 조건을 충족하지도 못한 점, ⑤ 이 사건 항해의 항로를 전제로 R의 예항검사 기준에 따르면 이 사건 항해에서 사용된 예인방식은 아예 허가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이고, 이 사건 선박이 조우한 기상상황이 원양항로의 항해에서 통상 예견되는 위험범위를 벗어난 것으로 보이지도 않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 선박은 겨울철에 3척의 부선을 예인해 탄자니아까지 원양항로로 운송하는 이 사건 항해에서 통상적인 위험에 견딜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다고 봄이 타당하다. 결국 예인방식의 부적절성 등으로 인해 이 사건 선박의 감항능력이 결여됐다는 피고들의 주장은 이유 있다.
<계속>
< 코리아쉬핑가제트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