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적 선사의 국제 경쟁력을 제고하고 선박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해 선박조세리스제도 도입이 절실히 요구된다는 주장이 나왔다.
정지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11월22일 서울 여의도 해운빌딩에서 열린 해운금융포럼 세미나에서 “국제해사기구(IMO)의 해운산업 탄소 배출 규제에 대응한 친환경 선박 대체 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 같이 말했다.
선박조세리스는 선박자산의 가속상각을 허용해 세금 납부 지연 효과로 발생하는 세제 혜택을 투자자와 선사에게 배분하는 금융 기법이다. 세제 혜택을 투자자와 선사가 공유하기 때문에 민간 투자자의 선박금융 유입을 기대할 수 있다. 프랑스의 조세리스, 일본의 조기 구매 옵션 포함 운영리스(JOLCO)가 대표적이다.
해양수산부와 한국해양진흥공사는 지난 2022년 선박조세리스제도 도입을 추진했지만 예비타당성 평가를 통과하지 못해 무산됐다.
스페인, 조세리스제도로 조선산업 국제화
정지선 교수는 이날 선박조세리스제도를 도입한 프랑스와 일본 영국 스페인 등의 해운 선진국 사례를 분석하면서 우리나라가 가야할 방향을 제시했다.
프랑스는 선가의 15%를 절감할 수 있는 조세리스제도를 도입해 CMA CGM 등의 자국 선사와 항공사 경쟁력 강화에 활용하고 있다.
투자자가 선박조세리스 거래에 참여하면 선가의 19%에 해당하는 세제 혜택을 제공하고 이 중 15%를 선박을 운항하는 선사에게 돌려줘 전체 가격의 85% 정도로 선박 건조가 가능하도록 제도화했다.
아울러 리스 계약을 체결할 때 선사는 8년간의 가속상각 기간이 끝나면 선박을 매입할 수 있는 옵션을 부여받는다. 선박 매입 옵션이 행사되면 투자자는 지분 매각 차익의 95%까지 세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프랑스의 선박조세리스제도는 크레디아그리콜CIB, BNP파리바, 소시에테제네랄(SG) 등 상업은행이 투자자로 활발히 참여할 만큼 활성화돼 있다.
일본의 JOLCO 제도는 선사가 투자자에게서 확정된 가격으로 선박을 조기에 매입할 수 있는 권리(EBO)를 보유하는 리스 거래다. 익명조합(TK)에서 선가의 20∼30%에 해당하는 투자 자금을 모집해 선박을 지은 뒤 12년 정도의 리스 기간 동안 세제 혜택을 향유하는 게 특징이다.
선박 투자자는 JOLCO 거래로 4~5%의 투자수익률을 얻을 수 있고 선사는 자기 부담 없이 우량한 조건으로 금융을 100% 조달해 선박을 신조 또는 임차 방식으로 도입할 수 있다.
영국은 1960년 항공기 선박 철도 등의 고가 자본재 구입을 촉진하려고 조세리스제도를 정부 차원에서 도입했다. 제도 도입 이후 주로 항공기 구입에 이 제도가 활용되다 1996년 11월 세법 개정으로 항공기의 가속상각률이 25%에서 6%로 크게 줄어들면서 선박 투자 수단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영국의 선박조세리스는 선박의 편의치적이 가능하고 정부의 사전허가가 필요 없다. 해운기업은 영국의 조세리스금융을 이용할 경우 선박을 직접 구입했을 때보다 비용 8% 정도를 절감할 수 있다.
영국 해운사였던 P&O네들로이드뿐 아니라 일본 NYK MOL, 프랑스 CMA CGM 등 세계 유수 선사들이 이 제도를 이용해 선박을 도입했다.
스페인도 2002년 선박조세리스제도(STL, Spanish tax lease)를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가속상각, 조기상각, 톤세 등의 방식으로 선가의 25~30%를 세제 지원하는 제도다. 투자자에게 법인세 절감 효과, 선사에게 선박 인수 가격 절감 효과가 발생한다.
2002년부터 2010년까지 273건, 총 80억유로 규모의 거래가 성사될 만큼 이 제도는 스페인 조선산업 국제화에 큰 기여를 했다. STL 거래의 과반수가 외국 선사였던 반면 조선소는 1건을 제외하고 모두 스페인 국적이었다고 정 교수는 지적했다.
세제 혜택이 워낙 커 2010년 유럽 7개국 조선협회가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스페인을 제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EC 제소 이후 개편한 STL2 제도는 혜택이 크게 후퇴하면서 거래 규모가 3분의 1 수준으로 축소될 만큼 활용도가 크지 않은 편이다.
정 교수는 외국 사례를 반영해 한국형 선박조세리스제도도 국내 등록 선박에 대해 가속상각을 허용하고 리스 제공자인 SPC가 감가상각의 주체가 돼 세제 혜택을 받도록 하는 특례를 도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리스 기간이 끝난 뒤 선사가 선박을 매입하면 양도 차익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는 정책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해사물류통계 ‘주요 4개국 선박조세리스제도 비교’ 참고)
“세제혜택 부활하면 선박펀드 1조규모 조성 가능”
세계로선박금융 조규열 대표이사는 선박펀드의 세제 혜택을 복원해 IMO의 환경 규제에 대응하고 선박금융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2년 선박투자회사제도가 도입된 뒤 2008년까지 3억원 이하 배당이익 면세(3억원 초과 15.4% 분리과세), 2013년까지 1억원 이하 5.5% 분리과세(1억원 초과 15.4%), 2015년까지 5000만원 이하 9.9% 분리과세(2억원 이하 15.4%) 등의 과세특례제도가 운영되다 2016년부터 모든 세제 혜택이 일몰됐다.
조규열 대표는 세제 혜택이 제공되던 2015년까지 선박펀드의 민간금융 투자금액은 최대 1조5000억원에 이르렀으나 이후 종적을 감췄고 대신 정책금융기관에서 그 자리를 메웠다고 전했다.
그는 세제 혜택이 다시 복원되면 선박금융 시장에서 민간 선박펀드를 1조원 규모까지 조성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선박펀드뿐 아니라 보증사업이나 해양진흥공사에서 진행 중인 선주사업에도 개인과 기관 투자자들의 자금을 유치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
해사물류통계 ‘선박투자회사 주요 투자자 및 규모 추이’ 참고)
이어진 토론에서 전기환 한국해양진흥공사 사업전략부장은 “선박펀드의 세제 혜택이 일몰된 건 투자자가 줄어든 게 원인으로 봐야 한다. 수익률은 낮은 반면 리스크는 높아 투자자들 사이에서 선박펀드를 점점 기피하는 현상이 발생했다”고 진단하면서 “선박금융에서 투자자의 기대수익률을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을지 계속 연구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양종서 수출입은행 수석연구원은 “선박조세리스나 선박펀드의 세제 혜택 도입이 예비타당성 심사를 통과해야 하는데 만만치 않다”며 “해수부뿐 아니라 관련 부처와 국회 정무위 기재위 등을 대상으로 우군을 만들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경훈 해운협회 업무이사는 “선박금융에서 민간금융을 활성화하는 게 비우량 선사 또는 중소선사에게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연구해야 한다”며 “조세리스제도의 실질적인 이용 대상인 중소선사들은 정작 영업이익 등의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이용하기 어려운 구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우수한 중앙대 교수는 “조세리스제도 도입 명분을 탈탄소 정책뿐 아니라 다른 부분에서도 찾아야 한다”며 “선박투자회사 활성화가 자본시장에 끼치는 긍정적 영향 등을 검토해서 논리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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