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나마운하 통항료 인상으로 국내 선사들이 200억원 가까운 비용을 추가로 내게 됐다.
파나마운하청(ACP)은 지난달 길이 125피트(약 38m) 이상의 선박에 일률적으로 1만달러의 담수할증료(Fresh Water Surcharge)를 부과하는 내용의 새로운 요율 체계를 수립했다. 담수할증료는 가툰호 수위 변화에 따라 1~10% 범위 내에서 기존 통항요율을 인상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ACP는 또 기존에 있던 통항예약수수료와는 별도로 선폭 91피트(약 28m)를 기준으로 부과하는 선박방문작성료를 신설했다. 폭 91피트 이상인 선박은 5000달러, 길이 125피트 이상 폭 91피트 이내인 선박은 1500달러를 각각 내야한다.
일일 통항 선박수도 제한한다. 통항 48시간 전까지 마쳐야 하는 사전 예약 수를 현재의 31척에서 27척으로 4척 줄인다는 방침이다. 신 요율정책은 이달 15일부터 발효됐다.
ACP의 통항요율 인상으로 해운업계의 비용 부담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25일 선주협회에 따르면 국내 7개 선사의 파나마운하 통항료는 연간 1500만달러(약 183억원) 이상 늘어나는 것으로 조사됐다.
지금까지 국내 선사의 연간 통항료는 1억5000만달러였다. 요율 인상으로 기존 통항료의 10% 이상을 추가 부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현대상선을 비롯해 대한해운 유코카캐리어스 팬오션 현대글로비스 KSS해운 SK해운 들이 파나마운하를 이용하고 있다.
일본 해운업계도 25억~41억엔(270억~440억원)의 추가 비용 부담이 발생한다는 조사 결과를 내놨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부와 해운업계는 파나마 측에 할증료 적용 유예를 요청했다.
선주협회와 해양수산부는 지난 13일 나타나시오 코스마스 시파키 주한 파나마 대사를 만나 “이용자의 의견수렴 없이 일방적으로 할증료 통보 후 불과 한 달 뒤에 시행하는 것은 절차상에 문제가 있다”며 “적어도 6개월 정도의 유예기간을 두고 시행하는 게 필요하다”는 입장을 전했다.
이와 별도로 파나마운하청에도 할증료 적용을 6개월 늦춰 줄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협회는 서한에서 “세계적인 해운불황에다 저유황유 규제와 코로나19 사태로 해상물동량이 급격히 줄면서 각종 해운지수가 연일 최저치를 경신하는 등 해운시장이 심각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할증료 유예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제해운회의소(ICS) 아시아선주협회(ASA) 유럽공동체선주협회(ECSA) 등의 국제해운단체도 공동으로 파나마운하청에 요율 인상 연기를 요청했다.
하지만 해운업계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CP는 통항료 인상 유예 불가 통보를 선주협회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운하청은 기록적인 가뭄으로 운하 수위가 낮아진 상황에서 선박의 안전한 통항을 위해 가툰 호수에 추가 댐 건설을 계획 중이며 건설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선 할증료 부과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파나마운하는 길이 93㎞의 갑문형 운하로, 대서양에 인접해 인공호수인 가툰호가 자리잡고 있다. 해발 26m의 가툰호를 정점으로 태평양 방면과 대서양 방면에 각각 4개의 갑문이 계단 형태로 이어져 있다. 선박이 통과할 때마다 가툰호의 물이 대량으로 사용된다.
지금까지 주변 산에서 물이 충분히 공급돼 가툰호 수위가 유지됐지만 최근 인근 도시의 생활용수 증가와 지구 온난화로 물 부족이 심해지는 상황이다.
특히 지난해는 예년보다 강수량이 20%나 감소하면서 지난 70년간 5번째로 비가 적은 해로 기록됐다. 파나마지역 연평균 강수량은 2600mm였으나 지난해는 2100mm에 그쳤다. ACP는 이에 대응해 통항 선박 수심을 제한하는 조치를 내린 바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파나마운하청의 입장이 완강해 선사들이 추가 비용을 낼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며 “황산화물규제와 안전운임제 도입에다 파나마운하 통항료까지 인상되면서 선사들의 채산성이 크게 악화될 것으로 우려된다”고 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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