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해운 강대국임에도 불구하고 해사법률분쟁을 전담하는 법정제도가 없다. 국내기업 간 해상 법률분쟁이 발생할 경우 대부분 외국의 중재제도나 재판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나라의 해운산업을 한 단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전문 해사법원을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11월30일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해사법원 설치를 위한 공청회’가 열렸다. 이번 공청회를 주최한 이병석 국회의원은 “해상강국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법률분쟁을 해결해줄 전문해사법원이 없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라며 “전문해사법원이 설치되면 해양산업의 경쟁력 강화는 물론이고, 해외로 유출되는 법률비용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해상사건 90% 이상이 영국으로 유출
해상법과 해사분쟁해결은 영국법이 오랜 기간 지배해왔다. 우리나라의 용선계약, 건조계약 분쟁의 대부분은 런던해사중재로 처리되고 있으며, 연간 300건 정도가 영국으로 유출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반면 대한상사중재원에 제기된 해사중재는 20건에 불과하다. 일본은 해사관련 분쟁의 50%를 자국법과 자국법정에서 처리하고 있다. 우리나라와 크게 대조되는 모습이다.
해상물동량이 동아시아로 집중되며 영국의 주도적인 역할도 옮겨오는 추세다. 대표적으로 중국과 홍콩, 싱가포르가 해상법 메카를 선점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모두 세계 컨테이너 항만 실적 10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국가들이다.
싱가포르는 올해 8월 정부 지원으로 싱가포르국립대학에 해상법센터를 마련하는 등 해상법 중심 국가를 차지하기 위해 국가 차원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홍콩의 경우 1심법원에 해상사건 전담판사 1명을 배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순환보직을 하지 않고 정년까지 해상사건만 전담한다는 점에서 전문성이 더욱 배가된다. 중국은 이미 10개의 해사법원을 두고 34개의 지원을 설치한 상태다.
고려대 로스쿨의 김인현 교수는 국내 빅3 조선사가 엄청난 적자를 겪었을 때 우리나라의 해상법이 제대로 준비돼있지 않아 타격이 컸다고 아쉬움을 나타냈다. 건조 계약을 체결할 때 불리함이 없도록 미리 조정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인현 교수는 “해사 분쟁은 해사 자본으로 연결되고, 해상법 부족은 곧 국력의 부족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해사법정은 독립된 해사법원 없이 전담부만 설치돼 있다. 해상사건은 관할이 있는 어떤 지방법원으로든 소송 제기가 가능해, 재판부의 비전문성이 소송의 지연을 초래하고 만족스러운 판정이 내려지지 않는다.
한국해법학회의 권성원 연구이사는 해사법원 설치를 국부의 유출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법률산업의 일부로 키우는 측면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영국의 뒤를 이어 글로벌 분쟁 해결의 허브가 된다면 외화벌이의 수단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는 것.
더불어 법률산업의 백년대계를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비교적 완결된 제도로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권성원 연구이사는 “독립된 법원을 설치해 전문화된 법관들이 더 오랫동안 일하면서 지식을 축적하고 판례를 남기도록 장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사법원 1심법원 설치가 가장 효과적
김인현 교수는 가장 이상적인 해사법원제도 도입방안은 해사법원을 1심법원으로 설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처럼 1심법원으로 설치할 경우, 해사전담 판사는 10명 정도 늘어나고 홍보 및 교육면에서도 큰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해상사건이 연간 400~500건으로 가장 많은 서울지역에 지방법원급 해사법원을 설치하고, 상대적으로 사건수가 부족한 부산에 서울해사법원 부산지원을 설치한다. 순차적으로 인천과 광주에 지원을 두는 방안까지 구상돼있다.
일각에서는 지방법원급으로 설치하기에는 사건 수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해양 유류오염 사건 등은 꾸준한 수요가 아니라 한시적인 수요를 창출할 뿐이어서, 한정된 사법자원의 효율적 배치 측면에서 필요성이 적다는 것이다.
김인현 교수는 “해상사건은 일반사건보다 처리가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단순히 사건 수로 비교하는 것은 불공평하다”며 가중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권성원 연구이사도 국래거래와 관련돼있는 사건들을 재분류 해본다면 사건 개수를 늘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1심법원 설치가 현실적으로 어려울 경우에는 고등법원으로 설치하는 방안도 있다. 1심을 거친 사건을 모두 한 곳에 집중시키는 것이다. 해사법원을 고등법원으로 설치한 국가는 단 한 곳도 없어 우리나라 특허법원이 좋은 참고사항이 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이렇게 되면 상대적으로 중요한 1심 사건을 비전문화된 기관이 맡는다는 한계점이 여전히 남는다.
이외에 홍콩과 싱가포르처럼 1심법원에 해상사건만 전담하는 전담판사를 지정하거나, 해상사건 전담부서를 지정하는 방안도 있다. 김인현 교수는 바로 1심법원 설치가 어려울 경우, 전담부서를 설치해 전담판사를 지정한 뒤 1심법원을 순차적으로 설치하는 차선책을 내놨다.
공청회에 참석한 김앤장 법률사무소의 김상근 변호사는 해사법원 설치를 장기적인 전략을 가지고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에 해사법정이 없던 시스템에서 사건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볼 것이 아니라, 해사법정이 왜 설치돼야 하는가를 중심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해상사건이 부족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해사법원이 설치되고 사건을 어떻게 관할하느냐에 따라 빠른 속도로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상근 변호사는 “일단은 지원형태로 만들고 사건 수가 늘어난 뒤 독립된 법원 형태로 설치하는 것은, 동아시아로 해운·조선의 중심이 넘어오는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라며 해사법원 설치를 강력히 촉구했다.
< 박채윤 기자 cypark@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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