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7 08:39

“토종 해운중개업체에도 동등한 기회 제공돼야”

인터뷰/ 한국해운중개업협회 이광희 회장
국내 해운업계, 외국 브로커 쏠림 문화 확산
선박가치평가등 협회 재정 강화 사업 확대
 


올해 2월 취임한 한국해운중개업협회 이광희 회장(피데스 대표)이 국내 중개업체를 배제하는 해운업계 분위기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광희 회장은 기자와 만나 국내 해운기업이나 조선소들이 외국계 해운중개업체와 거래하고 국내 중개인에겐 거래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조차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회장은 이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해운협회 등을 비롯한 관련 업계에 협조를 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선박 가치 평가 등의 사업을 확대해 협회 재정을 개선하는 데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피데스가 최근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낸 비결로 해운 컨설팅 업체로의 변신을 꼽았다. 

Q. 한국해운중개업협회 회장에 취임한 지 10개월 정도가 지났다. 소감은?

본의 아니게 중책을 맡게 됐다. 한국해운중개업협회 회장에 지난 2월 취임을 했는데 현실이 좀 녹록지 않다. 잘 알다시피 외국계 중개업체들이 한국에 지사를 개설해서 사업을 점점 늘리고 있지 않나. 한국계 회사들은 점점 위축이 되고 인원도 계속 이탈하는 상황이다.

10개월 동안 이 문제를 어떻게 개선해야 할지 협회에 애정을 갖고 계신 회원사와 협의를 하고 있지만 사실 완벽하게 개선할 수 있는 방안을 찾기가 쉽지 않다.

그렇지만 회장으로서 이렇게 가만히 놔둘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다가오는 2025년엔 해운, 조선, 선박금융을 포함한 모든 업계와 해양수산부에 도움을 요청하려고 한다.

저희가 어떤 경쟁력을 가지고 고객들에게 어떻게 서비스를 제공할지를 현실화하는 제안을 좀 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서 몇 가지 안을 준비해서 내부 조율하고 있다. 해양수산부와 해양진흥공사 해운협회를 필두로 관련 업계의 조언을 받고 구체적으로 상의도 하려고 한다. 

Q. 국내 해운중개업체들의 경영난이 지속되면서 협회도 회원사 확보와 재정 강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상황은 어떤가?

해운중개업이 허가제가 아닌 신고제로 운영되다 보니 해양수산부에 등록된 업체가 1000개가 넘는다. 이 중 해운중개업협회에 가입한 회원은 60개 정도고, 매달 5만원의 회비를 내는 회원사는 20곳밖에 되지 않는다.

협회가 재원을 마련하고 활동을 하는 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그래서 제가 회장에 부임하면서 회장단에서 활동할 수 있는 비용을 저희 회사(피데스)에서 찬조했다. 

지금 업계가 당면한 가장 큰 과제는 고급 인력이 외국계 중개업체로 빠져 나가는 문제다. 처우나 서비스 등이 토종 중개회사와 다른 부분이 있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된다. 우리 스스로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다만 조선소나 해운사에서 국내 중개인보다 외국계 중개인을 선호하고 심지어 외국계 브로커에만 거래를 주는 회사들이 꽤 있다. 능력이 안 되고 실력이 안 돼서 국내 업체가 경쟁을 못한다기보다 아예 기회조차 못 받아서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10년 전만 해도 국내 업체와 외국 업체가 협업하면서 상생하는 구조였다. 하지만 지금은 (해운업계에서) 외국 업체와 직접 거래를 하고 한국 업체는 피하는 경향이 있다. 국내 (해운중개)업체가 역차별을 받는 거지. 과거엔 선사와 중개인 간 유착 관계가 있기도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무엇보다 실력으로 서비스로 경쟁하는 시대가 이미 됐는데도 일부는 선입견 때문에 아직도 한국 중개인과 거래하는 것조차 꺼리고 배제한다. 우리도 물론 더 노력해야겠지만 관련 업계도 최소한 (국내 브로커가) 같이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해외 사례를 든다면 아직도 일본이나 중국은 자국 내 해운중개업체를 먼저 이용한다. 일본은 시코쿠 선주나 종합상사가 일본 중개업협회의 네트워크를 먼저 찾아보고 안 되면 해외 네트워크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은 클락슨이나 (외국계) 큰 회사가 이미 들어가서 경쟁을 하지만 관시(關係)를 고려해서 가능하면 자국 브로커를 중시하는 경향이 아직도 있다. 외국계 회사가 과연 우리의 어려움을 대변할 수 있겠나?

시장이 좋을 때는 다 행복하겠지만 시장이 안 좋고 어려울 때는 토종 회사가 우리나라 해운조선산업을 위해 좀 더 적극적으로 역할을 하지 않겠나?

Q. 해운중개업협회는 수익 사업으로 선박 가치 평가 사업 등을 진행해 왔다. 사업 성과는?

염정호 전임 회장 때 해양진흥공사와 해운중개업협회가 MOU(협약)를 맺고 선박 가치 평가를 3년 이상 제공해 왔다. 해외 유수 중개업체보다 국내 업체에서 세심하게 평가하는 게 더 도움이 되고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회원사가 선박 가치 평가를 하고 받은 보수의 30%를 협회에 후원토록 해서 재정을 확충하려고 한다. 이 외에도 선박금융 등의 분야에서도 해진공과 제휴를 확대하고 있다.

국내 선사가 중국 조선소에 선박을 발주할 때도 해양진흥공사가 금융을 지원하는데, 이때 저희가 정보와 지식을 제공해서 올바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Q. 클락슨이나 브래머 SSY 등 외국계 브로커들이 진출하면서 토종 중개업체의 입지가 약화하고 있다. 국내 업체들의 국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대책이 필요해 보인다. 

단기 대책과 장기 대책이 있을 것 같다. 단기 대책은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역차별을 받고 있는 부분을 개선하는 거다.

국내 업체들이 과거에는 준비가 안 됐다든지 정보력이 떨어졌다든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서비스 질이 낮았다고 한다면 지금은 저희 회사를 포함해서 감히 말씀드리지만 외국계 회사와 비교해서 뒤처지지 않는 회사들이 많다. 이런 회사들조차도 한국계 회사라는 이유만으로 기회조차 못 받는다. 해운협회나 선사에서 전향적으로 생각해 주면 국내 업체가 경쟁할 수 있는 체제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또 해운조선 관련된 업체에서 일하다 퇴직한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에게 재취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사업을 내년에 시작하려고 한다. 퇴직자 중 인맥이나 노하우가 많은 사람들을 우리 협회에서 영입해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수익이 생기면 나누는 식이다. 선박 신조나 투자 프로젝트 등에서 이들을 활용할 수 있을 거다.

장기적으로는 중개업에 자격증(라이센스) 도입을 추진하려고 한다. 중개업 설립이 신고제다보니 업체가 난립해 있다. 신고제를 다시 허가제로 바꾸는 건 쉽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대신 중개업을 하는 사람들이 취득하는 라이센스를 만들면 시장이 안정화할 거라 생각한다.

영국은 중개업을 하려면 카스비즈니스스쿨 같은 과정을 밟아야 하다. 우리는 자격증 있는 사람들이 해운중개업을 할 수 있도록 하고 기존에 중개업을 하는 분도 재교육을 하는 시스템을 만들면 좋을 듯싶다.

Q. 피데스는 척박한 국내 선박 브로커 시장에서 최근 몇 년간 신조선 중개를 중심으로 빠른 성장을 일궜다. 비결이 뭔가?

중개업은 처음엔 고객 수요에 맞춰서 후행적으로 움직이는 산업이었다. 선박을 사달라든지 팔아달라든지 고객들이 요청하면 용선을 하거나 화물을 잡거나 했다.

하지만 저희 회사는 전통적인 중개업에서 탈피하려고 시도해서 3~4년 전부터 컨설팅 개념의 업체로 체질을 바꿨다. 고객을 미리 만나서 고객 생각에 맞춰서 아이디어를 짜고 그 회사가 어떤 투자를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같이 고민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 그 결과물들이 최근 3~4년 동안 나왔다고 보면 된다.

초대형 암모니아 운반선(VLAC)을 언제 발주하는 게 좋은지, 초대형 원유 운반선(VLCC) 언제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투자하는 게 좋은지 함께 연구하고 신조나 용선, 필요하면 선박금융까지 같이 구조화하는 작업을 했다.

자동차선 사업의 미래를 고민하는 회사에게 어느 시점에 배를 어떻게 발주하고 자사선으로 할지 용선으로 도입할지, 용선한다면 어떤 선주와 어떤 방식으로 하는 게 좋을지 컨설팅했다.

중개업 자체가 경쟁도 심하지만 차별성이 없으면 살아남기는 더욱 어렵다. 그래서 뭔가 우리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선박 조선 선박금융을 포함하는 컨설팅업체로 변신했다.

회사의 방향성을 그렇게 잡았는데 해운이 반등하는 시기와 적절히 맞아 떨어져서 고객들이 저가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를 맞았다. 이제 중개업체는 고객과 동반 발전하는 사업의 반려자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Q. 해운 시장이 홍해사태 지속 여부, 트럼프 2기 출범, 공급 과잉, 지역 분쟁 등 다양한 다양한 현안에 직면해 있다. 내년도 해운 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나?

올해는 해운과 마찬가지로 중개업도 굉장한 호황이었다. 중개업은 거래 건수가 중요한데 올해 4월부터 한 8월까지 100척 정도의 신조 시장이 형성이 됐었다.

내년은 전체적으로 긍정보다는 어려움에 직면할 것으로 보는 게 대세인 거 같다. 하지만 저는 연착륙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해운엔 환경 규제 등의 무수한 변수가 있다. 조선도 마찬가지다. 선박 가격이 약세를 띠겠지만 과거처럼 급속하게 떨어지지는 않을 거 같다. 국지전이 꽤 있는데 전쟁이 끝나면 당연히 따라올 게 재건 수요다.

중국도 지금 경기가 굉장히 안 좋은데 시진핑 집권 2기에 계속 이렇게 갈 수는 없을 거다. 건설 등에서 더 크게 경기 부양을 할 수 있다. 그런 게 시장에 플러스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거래 빈도수는 올해보다 줄어들 거 같다. 전체적으로 약보합세를 띨 거라 본다.

Q. 정부당국 또는 업계에 당부하실 말씀이 있다면?

저희 중개업이 사실 쉽지 않은 업이긴 하지만 그래도 준비도 많이 돼 있고 경험도 많고 해서 서비스를 할 수 있는 모든 준비가 다 돼 있다. 그러니 선입견 가지지 말고 토종 업체들에게도 편하게 연락을 하고 노하우를 다양하게 활용해 주셨으면 좋겠다.

기회도 많이 주고 경쟁도 더 할 수 있게 해주시면 저희가 거기에 맞는 서비스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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