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기사A씨는 오늘도 고초를 겪는다. 도로명 주소 개편이 그 원인. 새롭게 바뀐 주소를 찾아 골목길을 헤집고 다니지만 익숙하지 않은 도로명과 건물 번호를 찾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배송해야 할 물건은 산더미인데 시간은 흐르고 고객은 독촉전화를 연신 걸어댄다.
내년 1월 1일부터 도로명 주소가 전면 시행됨에 따라 택배·쇼핑몰·음식점 등 배달 관련 업체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나섰다.
도로명 주소는 일제잔재로 그동안 사용해 온 주소를 토지의 번지에서 합리적인 건물번호로 되돌려야 한다는 게 취지다. 아울러 물류혁신 및 유비쿼터스사회 실현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위치정보 인프라가 구축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도로명에 기반한 도로명주소로 주소체계를 전화해야만 한다는 게 이유다.
취지는 좋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도로명 주소 개편으로 택배업계는 때 아닌 ‘비상’이다. 택배기사가 물품 하나를 배송하면 받는 금액은 보통 700~800원이다. 이 때문에 물건을 한 개라도 더 배송해야 하는 택배기사 입장에서는 도로명 주소 전면시행은 달갑지 않은 소식이다. 택배기사에게 시간은 곧 ‘돈’ 이기 때문이다.
H택배사의 영업소장은 “도로명 주소가 사용되면서 택배분류작업 시간이 늘어났다. 옛 주소와 도로명 주소를 병행해서 사용하다 보니 주소를 이중으로 검토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배송시간도 길어지고 노동생산성도 크게 악화됐다”고 토로했다.
이어 “정부에서 충분한 대책과 홍보를 하지 않고 옛 주소와 도로명 주소를 병행해서 사용함으로 인해 혼란이 더 가중되고 있다. 내년부터 도로명 주소를 전명 시행한다고 하지만 어르신들은 여전히 옛 주소 사용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쉽게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또 다른 택배업계 관계자는 “도로명 주소 도입 취지는 좋지만 현실을 고려하지 않고 충분한 홍보와 시행기간을 거치지 않아 어려움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며 “기존 주소는 번지수만 알면 어느 곳인지 금방 알 수 있지만 도로명 주소는 여전히 생소하다”고 말했다.
그는 “새 주소가 길을 따라 건물 번호가 순서대로 돼 있어 옛 주소와 비교해 편하게 찾아갈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외워야 하는 길이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특히 OO동의 경우 골목길이 많아 외워야하는 길 이름만도 수십개에 달한다”고 불만을 제기했다.
정부는 도로명 주소가 도입되면 주소를 찾기 쉬워져 연간 3조4000억원의 물류비 절감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택배업계에서는 오히려 혼란이 가중됐다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모쪼록 정부가 택배업계의 의견을 좀 더 수렴해 혼란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지리전문가들 역시 “한국인의 지리 관념은 도로명 주소와 같은 선 개념이 아니라 주소의 동·리와 같은 면의 개념이 익숙하다”며 “100년 동안 익숙한 옛 주소를 대신해 새 주소가 정착되기까지 적어도 10년이 넘는 시간은 걸릴 것이다”고 분석했다. < 김동민 기자 dmkim@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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