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선주협회가 30년 역사의 당주동 시대를 접고 여의도로의 이전을 추진한다. 협회 회관 건립 계획이 발표된 지 5년 만에 결실을 눈 앞에 두고 있다. 협회 50년 역사 이래 처음으로 회관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뜻 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다만 이전 위치를 놓고 불만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여의도가 교통 접근성이 좋지 못하다는 점이 이유다.
18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선주협회는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두산인프라코어 빌딩(사진) 인수를 전제로 협상을 진행 중이다. 협회 회장단은 최근 가진 회의에서 매입 가격을 낮추는 조건으로 빌딩의 매입을 승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전신인 대우종합기계가 본사로 쓰던 이 건물은 지하 3층 지상 10층 규모로 1996년 11월 준공됐다. 유동성 확보에 주력하고 있는 두산그룹의 비업무용 자산 매각 정책에 따라 부동산 시장에 매물로 나왔다. 인근에 9호선 국회의사당역이 있다.
매입 가격은 325억원 안팎으로, 선주협회는 이종철 회장의 지시로 두산 측에 추가적인 가격 인하를 요청한 상태다. 협회는 가격 협상이 마무리되면 내년 정기총회 승인을 거쳐 사무실을 옮겨갈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협회가 건물주에게 가격을 10억원가량 더 낮춰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안다”며 “건물주가 협회의 의견을 수용하면 매매계약을 체결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협회 임원은 "가격인하를 요청한 뒤 건물주측에서 (협상) 중단을 통보했다"며 "최종 계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확정된 건 없다"고 말했다.
협상이 매듭지어질 경우 협회는 회원사에서 조성한 200억원가량의 회관건립기금과 일반기금 활용, 세종빌딩 사무실 매각 등의 방법으로 매입대금의 80% 이상을 자체 조달하고 나머지를 은행으로부터 빌릴 계획이다. 현재 쓰고 있는 세종빌딩 사무실 가격이 4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는 점에 미뤄 협회가 은행으로부터 차입하는 금액은 50억원 안팎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로써 지난 2007년 처음 발표된 회관 마련 계획이 드디어 결실을 맺게 됐다. 당시 협회는 국내 해운업의 위상을 높이고 회원사 임직원들의 재교육을 위해 해운센터빌딩을 건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현재 쓰고 있는 사무실이 오래된 데다 협소하다는 게 이유였다. 협회는 해운산업합리화가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1983년 6월에 현재의 세종빌딩 사무실을 분양받아 입주한 바 있다.
임대수입 등으로 부가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었다. 협회는 두산인프라코어 빌딩으로 이전할 경우 건물의 9층과 10층을 협회 사무국 및 근해항로 협의체에서 사용하고 나머지 공간을 임대한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알려졌다.
전대미문의 해운 호황을 구가하던 시절이어서 재원 확보가 용이하다는 점도 사옥 매입을 결정한 배경이 됐다. 당시 협회는 4년간 400억원의 회관 건립 기금을 조성키로 했다.
2008년 말 터진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 해운경기가 곤두박질치고 선사들 재정이 크게 악화되면서 이 계획은 잠정 보류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었다. 기금 모금은 200억원에서 중단됐다. 하지만 지난해 정기총회에서 재추진이 전격 결정됐다. 해운시황이 어렵다고해서 필요한 회관 건립을 마냥 늦출 수만은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협회는 빌딩 매입 과정에서 가격대에 맞는 매물을 찾기 어려워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이른바 ‘4대문 안’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 종로구와 중구 일대는 가격이 비싸 목표한 금액대의 매물을 찾을 수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협회는 결국 여의도로 눈을 돌렸으며, 두산인프라코어 빌딩을 매입 대상 1순위에 올렸다. 여의도는 광화문 인근에 비해 빌딩 가격이 대략 100억원 정도 싼 것으로 알려졌다.
건물 매입이 막바지에 이르렀지만 해운업계 내에선 여의도 이전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들린다. 회원사들이 종로구와 중구에 밀집해 있는 데다 여의도가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협회가 국회 로비를 목적으로 여의도 입성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도 눈에 띈다.
서울권 선주협회 회원사 140곳 중 종로구와 중구에 본사 또는 영업본부를 둔 곳은 66%인 94곳(흥아해운 포함)에 이른다. 회장단 및 이사사의 경우 21곳 중 14곳이 4대문 안에 자리 잡고 있다.
한 정기선사 관계자는 “교육이나 회의 등을 목적으로 사옥 매입을 추진한다고 말하면서 정작 위치는 회원사들이 찾아가기 어려운 곳을 정했느냐”며 “회의가 잦은 정기선사의 경우 여의도로 협회가 옮겨가게 될 경우 어려움이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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