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5-27 11:06
KSG에세이/ ‘바다의날’의 각별한 思惟
서대남 본지 편집위원
‘바다와 항구’ 그 추상적 낭만의 斷想
오늘 5월31일은 우리 해운업계엔 아주 뜻 깊은 ‘제15회 바다의 날’이다.
1976년 교통부 해운국으로부터 외청으로 독립해 설립된 ‘항만청’ 개청일 3월13일을 해운의 날로 제정, 이듬해 77년 ‘제1회 해운의 날’ 첫 행사를 성대히 치른 역사부터 계산하면 실은 제34회가 되는 셈이고 50년 해운공사(KSC), 53년 근해상선과 남성해운 설립, 55년 해무청 창설 그리고 해방이 되던 45년 군정청 교통국과 46년 운수부 해운국으로까지 아득히 거슬러 올라가면 어언 65년이 된다.
바다행정을 일원화해 해운업과 수산업 그리고 조선업을 하나로 묶어 국무회의에 참석하는 장관부처의 행정기관으로 격상시켜야 한다는 업계의 오랜 여망은 3차산업을 관장하는 해운항만청과 1차산업을 관장하는 수산청에 2차 산업인 조선업까지를 겨냥했으나 조선업 대신 해양경찰청을 외청으로 하여 1996년 ‘해양수산부’를 창설하기에 이른다. 그 해 5월31일을 ‘해운의 날’보다 넓은 의미의 ‘바다의 날’로 새로이 제정해 제1회 행사를 거행한 이래 올해 제15회를 맞게 됐다.
그러나 오늘날 해운업계에 종사하는 육해상 직원 모두가 늘 원자재 수입과 완제품 수출을 위한 해상물동량 선적과 양하를 위해 기능하는 물량장 또는 벌크화물선의 접안능력이나 컨테이너 처리갯수로 항만과 부두를 평가를 하다보니 그 옛날 시적이고 낭만적이며 서정적 문학의 소재로 우리에게 다가오던 바다와 뱃길, 항구와 부두가 안겨주던 뮤즈나 시심은 급격한 산업화 물결에 크게 퇴색한 같아 안타깝다.
프랑스 극작가 장 라신느가 그리스신화에서 소재를 얻어 작품화한 것으로 알려진 <페드라>(Phaedra). 아테네 왕 테제의 젊은 왕비 페드라(멜리나 머큐리)가 전실 자식인 히폴리투스(앤서니 퍼킨스)에게 연정을 품고 불륜의 애정행각을 벌이다가 운명에 항거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 종말의 이 작품이 영화로 각색돼 <죽어도 좋아>란 제목으로 상영됐을 때 이는 낭만이 잉태해 비극을 초래한 음란성 로맨스의 극치로 평가돼 상당 기간 인구에 회자됐다. ‘1962년은 벤허의 해’로 떠들석하게 한 찰턴 헤스턴과 스티픈 보이드 주연의 영화 <벤허>와 함께 장안의 극장가에 큰 화제가 되기도 했던 기억이 새롭다.
1950~60년대 젊은이들이 향유했던 바다에 대한 낭만은 영상물 외에 문학작품의 소재로도 각광받았다. 시름없이 궂은 비 내리는 낯선 항구에서 하룻밤 풋사랑의 인연으로 긴 밤을 지새우고 정만을 남겨둔 채 떠나간 마도로스와의 추억을 잊지 못해 애태우는 선술집 아가씨의 하염없는 애모와 연정은 뭇사람의 심금을 울리는 통속문학의 소재가 됐으며 신파극이나 유행가로도 쓰여 롱런의 인기를 누렸던 것이다.
포구의 선착장 뱃머리에서 출항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에도 섬섬옥수 잡은 손 서로가 떼지 못해 울먹이던 이별의 서정은 고도화된 기계설비와 매머드 부두의 대형화 시설 그리고 고속화된 선박입출항의 빈도와 거대한 하역장비의 간단없는 조작에 따른 굉음에 밀려 연안부두나 국제여객터미널로 불가피 자리를 옮겼다. 바다와 항구에서 이뤄지던 고전적이며 전통적인 운치있는 서정과 로맨스의 현장은 북적이는 장터로 변형돼 시적 서정과 낭만의 확대재생산은 커녕 그나마 국제공항으로 ‘이별의 로망스현장’ 무대를 옮긴 지 오래다.
바다와 항구 부두의 뱃머리는 이제 더 이상 만남과 이별이 연출되는 낭만과 로맨스의 대상이 아닌가? 항구는 그저 화물이나 여객을 싣고 내리는 상하차와 적양하 해상물류의 거점이요 바다는 오직 이를 실어나르는 배들이 단순히 해상 운송수단으로 오가는 물길이요 뱃길일 뿐인가?
시와 소설 수필 희곡 등 언어나 문자를 매체로 하는 문학작품의 소재를 제공하던 무한정한 낭만의 보고(寶庫)로서의 바다와 항구 그리고 부두와 포구는 산업화·기계화에 밀려 이젠 대단원의 막을 내린같아 아쉽기 이를 데 없게 된 것이다. 푸른 파도를 가르는 뱃고동 소리를 뒤로하고 님 떠난 밤부두에서 홀로 우는 여인의 흐느낌이 멎은지 오래고 굳은 약속을 남기며 다시 오마던 파이프담배 입에 문 첫사랑 마도로스는 IMO/STCW의 1급해기사, 지체 높은 양반으로 품격이 높아져 그 옛날 항구마다 정을 두고 떠나던 사나이가 더 이상 아닌 함흥차사가 된지 오래란다.
현대화에 쫓겨 포구를 서성대던 선술집 아낙들의 입술 짙은 옛 모습들은 이젠 티킷다방에서 문자메시지를 날리는 마돈나로 변했고 됫박 주전자로 기울이던 동동주 주안상은 스카치와 캔맥주가 대신하는 인스턴트 자판기에 축출, 옛 흔적을 찾을 수도 없으며 오색등 찬란한 샹들리에 불빛과 헤비메탈 뮤직에 테크노댄스 음악이 판치는 항구의 뒤안길 밤 풍경은 ‘미나도 마찌 13번지’가 아닌 그저 비싼 술 파는 유흥가로 변하고 말았다.
하긴 세상 곳곳에 낭만과 로맨스는 시들고 사랑과 정서는 메마르고 그래서 ‘술 한잔에 시 한수’ 김삿갓 식의 서정적인 풍류와 운치는 오랜 가뭄을 견디다 못해 ‘빈사의 백조’나 ‘굶주린 갈매기’ 꼴이 된 지가 오래다. 1960년 10여만t에 불과하던 우리나라 선복량이 72년의 100만t 기록을 계기로 불과 50년 사이 지금은 300배 이상으로 늘어 세계 제 5위에 이른 기적을 생각하며 고독한 자아를 달래는 마법의 묘약처럼 기슴 속에 아롱지는 낭만의 티끌을 감미로운 환상으로 패러디해 허구적 로맨스라도 엮어가고 싶은 게 평생을 머문 해운 종사자들의 꿈이리라.
바다와 항구 뱃길과 선박 그리고 짐들과 세월에 더해 낭만과 풍류로 이어지는 크고 작은 해운업계의 인연들을 곱게 보듬어 소중한 추억의 실타래로 엮어 먼 훗날 생각날 때마다 몰래 꺼내보는 사진첩 같이 빛바래 퇴색한 뒤에라도 언제고 추억할 수 있는 회상의 여로가 되게 누구나와도 오래도록 함께 하는 다정한 친구요 길벗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바다는 넓고 험하지만 월리엄 워즈워드는 해질 무렵 칼레 해변의 고요와 적막 속 다정한 임의 입김을 서정적으로 노래했고 알프렛 테니슨은 산산조각이 나게 바윗돌이 부서지도록 휘몰아 치라고 성난 파도의 노여움을 갈파했으며 존 메이스필드는 출항하는 뱃머리에서 다시 흘러간 옛날의 추억을 찾아 문득 다시 떠나고 싶다고 바다에의 향수를 섬세한 감정으로 읊조리며 바다와 항구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탁월한 문학적 소묘를 통해 창작의 터전으로 활용했다.
“바다는 언제 잠드는가?”
“이 세상 가장 높은 곳에 바다가 있네”를 쓴 작고한 선장시인 김성식은 바다는 가장 높은 곳에 있다며 33년간
의 선상생활을 주옥같은 시작(詩作)으로 일관했었고 가수 최백호는 “밤늦은 항구의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뱃고동 소리를 들어보라”며 뒤늦게 <낭만에 대하여>를 노래해 갯내음 물씬 나는 부두의 낭만으로 한때 중장년층의 노래방 선곡 베스트가 되기도 했었다.
대양을 항행하는 항해사나 기관사도 당직이 끝나면 시 한수를 적어보고 갠트리크레인이나 트럭킹 기사도 휴식 시간엔 시 한 줄을 읽어보며 본선 운항을 지원하는 공무·해무팀이나 영업팀도 쉬는 날엔 바다에 배 띄워 먹고 사나니, <죽은 시인의 사회>(Dead Poet's Society)의 로빈 윌리엄스처럼 메마른 우리의 가슴에도 바다와 배 그리고 항구와 부두를 소재로 뮤즈의 밀알을 심어 시심의 화단을 가꾸며 아울러 바다를 이용해 영혼도 맑게 헹구는 우리 모두 아직은 살아있는 이 땅 최후의 낭만주의자가 돼 보자.
바다란 더 없이 넓은 해역은 뭍의 연장으로 이미 우리 인류가 진출할 마지막 삶의 터전이 돼 가고 있으며 자원의 보고이자 메마른 정서를 적셔 마음을 살찌우는 광활한 일대 로망스의 터전이려니 바로 그 ‘최후의 로맨티시스트’로 남는 것도 바다에 평생을 몸 바쳐 일한 해상직원이나 육상직원 모두에게 벼슬이요 훈장이길 바란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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