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04-07 18:00
기획/ “강북 절대우세, ‘쾌적지수’는 단연 강남”
해운업계 입지 선호도 “강북 절대우세, ‘쾌적지수’는 단연 강남”
해운 일번지 ‘중구’에 선사 42% 몰려있어
포워더는 공항 가까운 마포도 많아…구로도 최근 각광
서울지하철 7호선 논현역과 학동역 사이 거리에는 고급 가구를 판매하는 상점이 즐비해 있다. 이른바 논현동 가구거리로 통하는 이 곳에는 늘 고풍스럽고 멋진 가구를 찾는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또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동대문운동장 방면으로 3백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는 떡볶이 가게들이 빼곡하다. 이곳이 바로 그 유명한 신당동 떡볶이 골목이다.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곳의 주 고객은 단연 10대 청소년이지만 유명세가 높아지면서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이 신당동 떡볶이를 찾고 있다.
이들 논현동 가구거리나 신당동 떡볶이 골목은 같은 업종끼리 군락을 이뤄 고객들의 주목을 받는 곳으로 해운업계에도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다. 바로 선사 및 복합운송업체(포워더)들이 서울 강북지역에 집중적으로 모여 클러스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강북권 중에서도 특히 중구지역은 웬만한 해운업체들이 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많은 업체들이 중구 북창동, 무교동, 서소문동 등에 밀집해 있다.
서울 중구지역 해운업 ‘메카’
본지에 등록된 업체를 업종별로 주소지를 조사해본 결과 국적선사의 경우 전체 73개 업체 중 강북권에 56개 업체가 있으며 이중 중구에만 33개 업체가 자리 잡고 있다. 외국계 대리점선사도 전체 241개 업체 중 중구에 106개 업체가 집중돼있다. 선사들 70%가 강북권에, 거기서도 중구에 42%가 몰려 있는 것이다. 포워더는 서울에 본사를 둔 총 1351곳 중 중구에만 31.5%인 426곳이 밀집해 있으며 종로구 133곳을 포함, 강북권에 분포한 포워더는 990여 곳에 달해 선사와 비슷한 수치인 73%를 차지했다.
이렇듯 중구와 종로구를 중심으로 해운업체들이 군락을 형성하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우선 이 지역이 수출입하주 밀집 지역이 었다는 점이다. 하주들이 많이 위치한 이 지역에 바늘과 실관계라 할 수 있는 선사, 포워더들이 자연 발생한 것이다.
다른 하나는 과거에는 선사와 포워더간에 B/L(선하증권) 원본거래가 이뤄졌기 때문에 상호간 거리가 가까워야 효율적인 업무를 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중구지역의 한 포워더는 “과거에는 선사와 포워더간 오리지날 B/L 거래를 했기 때문에 서로 가까운 곳에 있어야 서류를 주고받기가 쉬웠다. 이 때문에 한 지역에 많은 해운업체들이 모이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1호선 시청역과 2호선 을지로입구역을 둘러싸고 북창동, 소공동, 무교동 등에 있는 빌딩에는 많게는 5~6개 포워더들이 입주해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최근 들어 e-B/L이나 e-D/O 등 전자거래가 활발해지면서 물리적 거리는 큰 문제가 안 돼 강북권을 벗어나 강남지역에 둥지를 트는 업체가 생기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강남구, 서초구, 송파구를 포함한 강남권은 해운업계 신흥 클러스터이기 때문에 중구 등 강북권에 비해 숫자는 빈약하다. 국적선사는 전체 73개중 강남권이 11개이며 외국적 대리점사는 전체 241개 업체 중 48개다. 포워더의 경우 전체 1351개중 160개사가 강남권에 둥지를 틀고 있다. 강남권에 본사 혹은 영업소를 두고있는 선사는 코스코코리아, 흥아해운, 양밍라인, 범주해운, 한진해운 등이 있다.
강남구에 위치한 외국적 대리점선사인 A사의 경우는 외국 본사의 결정에 따라 강남지역에 사무소를 개설한 사례다. 이 회사는 8년 전 강북에서 이곳으로 사무소를 이전했다.
이 회사 한 관계자는 “지금의 사무소로 이전할 당시만 해도 강북지역에는 빌딩 내 한 개 층을 분양하는 경우가 별로 없었다. 마침 강남지역에는 이런 식의 분양이 이뤄지고 있어 한 개 층은 분양받고 다른 두 층은 임대하는 방식으로 해서 사무소를 강북에서 이곳으로 이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강남 영업직원 “한강? 넘을 수 없는 강” 푸념
영업전략이 아닌 사무실 분양을 위한 강남행이다 보니 영업사원들의 업무상 불만도 만만찮다.
그는 “분양 당시 우리나라는 환율이 1달러당 1400원까지 치솟던 IMF 외환위기 시절이었다. 지금은 환율이 900원대로 떨어져 본사는 환차익을 짭짤히 보고 있지만 우리 영업사원들은 강남권 이전으로 인한 불만사항이 많다”고 말했다.
A사 영업담당자들은 매년 본사측에 회사에 대한 건의사항이나 불만사항을 보고할 때 “강북지역에도 영업소를 개설해 달라”는 주문을 빼놓지 않고 넣고 있다. 그러나 그때마다 본사로부터 돌아오는 답변은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달라”는 것이다.
이 회사 한 영업담당자는 “실제 거래하고 있는 하주들은 실하주보다는 대부분 포워더들이며 이들은 대부분 강북지역에 위치해 있지만 서류배달 때문에 거리상의 불편함은 별로 못 느끼고 있다. B/L 배달 등 대부분의 서류업무가 퀵서비스를 통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며 “그러나 정작 해결하기 어려운 점은 강남과 강북의 물리적 거리만큼 영업사원들의 활동영역이 좁아지는 일이다. 실하주나 포워더들이 강북에 많이 위치해 있는데 아무래도 그 지역에 있는 것보다는 거래처를 방문할 기회가 적어질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강남구에 위치한 외국적선사 B사의 한 영업담당자도 “서류업무의 경우 IT의 발달 덕분에 e-B/L등 전자업무가 가능해졌지만 영업은 거래처 사람을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서 친밀도를 높이는 것이 왕도라는 점을 비춰볼때 거리상의 제약은 큰 장벽이 아닐 수 없다. 강북지역 영업사원의 경우 하루에 많으면 거래 포워더 8곳을 방문한다고 들었지만 강남권 영업직원들에게 한강은 넘을 수 없는 강인 것 같다”고 강조했다.
A사의 영업담당자는 이에 더해 강남지역에 있다보니 해운업계 현황이나 하주들에 대한 정보까지 남보다 늦게 접하게 된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는 “해운업계에서 정보가 퍼지는 속도는 생각보다 빠르다. 강북지역 업체의 경우 업계에서 발생한 일에 대해 몇 시간 안에 정보를 접할 수 있지만 강남권 업체의 경우 최소 하루에서 늦으면 일주일까지 그에 대해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예를 들어 어떤 업체가 부도가 났다면 그 회사의 회생 가능성이나 관련사의 미수금 현황과 향후 대처방안에 대해 하루빨리 논의해야 하겠지만 이쪽에선 그런 정보가 쉽게 감지되지 않아 대응속도가 느려진다”고 설명했다.
B사 관계자는 “컴퓨터와 IT가 아무리 발전했다고 해도 해운업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는 발로 뛰는 영업사원의 귀를 통해 들어온다. 강북지역 경쟁사에 개인적으로 친구도 두고 있지만 그리 쓸만한 연락책이 되지는 못한다. 이런 정보는 주로 민감한 사안일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직접 대면하거나 술자리라도 가져야지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법이지 전화 한 통화로 정보를 얻기란 만무한 일이다”고 푸념했다.
이처럼 강남지역 업체 영업담당자들의 볼멘 목소리가 큰 가운데 다른 한편에선 강남지역 입지의 강점에 대한 얘기도 들려온다.
때로는 모르는 게 약!
테헤란로에 위치한 포워더 C사는 강남권 입지가 오히려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강조한다.
C사 한 관계자는 “창립 부터 강남지역에 사무소를 열었으며 강북지역에 사무소를 내는 일은 생각지도 않았다. 강북에 사무소를 열면 업무 외적으로 생기는 폐단이 많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쪽에 몰려 있으면 포워더간 교류도 잦게 되고 다양한 정보를 많이 접하게 되는 건 사실이지만 사실 이 정보라는 것이 ‘양날의 검’이라고 생각한다”며 “정보의 대부분이 모르는 게 약인 루머에 불과한 것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다. 또 자칫하면 우리 회사가 악성 루머에 휘말릴 수 있는 위험에 쉽게 노출된다”고 말했다.
즉 구설수에 휘말리지 않고 다른 포워더들의 관심권 밖에서 외부의 영향 없이 조용하게 업무를 할 수 있는 것이 강남권 입지의 장점이라는 설명이다. 아울러 하주들이 본사를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전하는 경우는 점점 많아지는 추세이며 강남에서 강북으로 이전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강남권 입지의 비전이 밝음을 강조했다.
그는 “바스프나 존슨앤존슨 등 소위 세계 50대기업에 속하는 글로벌업체들은 강남권으로 몰려들고 있지만 정작 우리 포워더들은 강북지역에 오물오물 모여 있으려고만 하는 것 같다. 포워더들이 이렇게 한곳에 모여 있기 때문에 말도 많고 소문도 많아지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포워더 직원들의 이직률이 다른 업종보다 월등히 높은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이러한 점이 업계 발전을 저해하는 가장 큰 폐단이다”며 “우리 회사는 이러한 강북지역의 포워더가 놓이기 쉬운 악영향권에서 비켜서 있는 덕분에 직원들의 이직률도 낮아 업무 분위기가 안정돼 있다”고 설명했다.
강남구 다른 포워더 관계자는 “2008년 즈음에 삼성 SDI가 본사를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전한다는 소식이 들린다”며 “이에따라 많은 포워더들이 강북에서 강남으로 이전할 것으로 보여 강남권 하주시장이 더욱 커질 것” 이라고 예상했다.
강남권 근무환경 지수 ‘쾌적’
강남지역 외국적선사 D사 직원은 강남사무소가 강북보다 더 깨끗하고 조용한 근무환경을 누릴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한다.
이 관계자는 “강남에는 지은지 10년도 안된 빌딩도 많아 근무환경이 쾌적해서 좋고 회사 주변 환경도 주차시설이나 도로정비 등이 상대적으로 잘 돼 있어 편리하다. 물론 강북으로 갈 때 물리적 공간의 차이로 다소 불편한 감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 시청역 주위 말고 다른 지역으로 가는 것은 그리 멀지도 않다”며 “실하주나 포워더도 중구는 물론 마포구에도 분산돼 있으므로 어차피 큰 상관이 없으며 이런 위치상의 문제보다 근무환경이 쾌적하거나 조용한지가 더 중요한 입지조건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강북에 본사를 두고 강남권 하주들을 공략하기 위해 강남영업소를 개설하는 경우도 눈에 띈다. E선사의 경우 10년 전 강남권 영업을 담당하는 강남판매팀을 대치동에 개설했으며 지난 2001년 다시 역삼동으로 이전했다.
E사 강남판매팀 한 관계자는 “강남판매팀을 오픈하게 된 건 아무래도 강북에서는 이 지역 하주들의 개별적인 공략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아직까지 강남권 하주시장이 강북보다는 넓지 않지만 10년 전 영업소 개설 당시보다는 시장이 많이 성장했다”며 “서울판매 전체 실적 중 강남판매팀의 비중이 설립초기엔 10% 밖에 안됐지만 지금은 25~30% 정도로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사 영업직원이 꼭 해야 할 일은 그저 한번이라도 더 거래처를 찾아가는 것이며 그러한 열정이 하주들의 짐을 불러올 수 있다고 믿는다. 결국 경쟁사보다 더 자주 하주를 만나는 수밖에 없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하주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것이 매우 유리한 조건이다”고 말했다.
포워더, 싼 임대료 따라 ‘마포로, 구로로’
강남권이 새롭게 떠오르는 해운업계 클러스터라면 강북에서도 마포구 지역은 중구와 함께 전통적으로 포워더들이 많이 밀집해 있는 지역이다. 그중 특히 5호선 공덕역과 마포역 사이 빌딩에는 많은 포워더들이 입주해 있다. 또 5호선 발산역에서 가양동사거리 사이와 김포공항역 근처 공항동에도 많은 포워더들이 자리 잡고 있다.
본지에 등록된 포워더 전체 1351개 업체 중 마포구에 둥지를 틀고 있는 업체는 1/4수준인 350곳이나 됐으며 강서구에도 128개 업체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마포구 포워더인 F사 한 관계자는 “포워더의 경우 수익에서 사무실 임대료가 차지하는 비중이 큰 편이라서 시청 같은 다운타운 쪽 보다는 임대료가 저렴한 마포 쪽에 사무실을 내는 경우가 많다. 최근에는 임대료 부담 때문에 시청근처에서 2호선 홍대역이나 합정역, 5호선 발산역 근처로 이전하는 업체가 늘고 있다”며 “또 해운보다 항공영업의 비중이 큰 업체일수록 마포지역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공항이 가까워서 창고나 넓은 용지가 필요할 때 임대도 쉽기 때문이다. 국제공항이 김포에서 인천으로 이전한지 오래지만 여전히 이 지역 클러스터는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일부 포워더들은 임대료 부담을 덜기 위해 사무실을 분양받아 입주하는 방식을 이용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일단 임대료 걱정을 하지 않아 좋고 땅값이 오르면 부가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어 꿩 먹고 알 먹는 셈이다”라며 “강남지역 등 투자 전망이 좋은 사무실을 분양받아 가격 상승을 노리는 업체들도 꽤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임대료가 포워더 수익을 좌우할 만큼 많은 비중을 차지하기 때문에 업체들은 임대료가 조금이라도 싼 데로 사무소를 이전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최근 서울디지털산업단지가 자리한 구로엔 IT 기업은 물론 포워더들도 모이고 있다. 현재 이 지역의 임대료가 강남 평균시세의 반값밖에 안되는 수준이기 때문에 포워더들의 구미를 당기고 있는 것. 그러나 교통조건이 썩 좋지 않은 것이 흠이다.
이에대해 한 포워더 관계자는 “구로디지털단지가 개장한지 아직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에 입주를 유도하기 위해 지금은 임대료가 다른 지역보다 많이 싼 편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 지역도 임대료가 오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어쨌든 업체들이 교통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이곳으로 이전하는 이유는 역시 발등에 불인 임대료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기위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한편 최근 광화문 신문로에 새로 들어선 오피시아빌딩에는 다수의 해운업체가 입주해 있어 ‘제2의 해운센터’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이 빌딩에는 현재 외항선사로는 STX팬오션과 창명해운이 입주해 있으며 대리점사인 일성해운도 있다. 포워더는 가람해운, 다우해상, 유맥스해운항공 등 6개사가 둥지를 틀고 있다.
<박자원 기자>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