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실에서 미처 빠져나오지 못한 아이들이 소방호스에 매달렸다. 호스 끝에 이순애도 매달렸다.
“조금만 더 힘내요.”
서정민은 외쳤다.
아이들이 한 가닥만 잡고 힘들어하기에 서정민은 주변에 있는 호스 하나를 더 찾았다. 찾은 소방호스 한쪽을 배 난간에 묶고 다른 한쪽을 4층 홀 쪽으로 던졌다. 아이들은 호스를 겨드랑이에 끼고 가까스로 벽을 타고 올라왔다.
이순애도 호스를 잡았다. 그러나 힘이 부쳐 선실 바닥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오전 9시 35분경 목포해경 소속 경비정 123정(110톤)이 도착했다. 어선단속정에는 구조전문 인력이 타고 있지 않았다. 민간어선이 속속 도착했다.
세월호는 좌현 쪽으로 45도 기울었다. 3층과 4층 객실은 아직 물에 잠기지 않았다. 123정은 세월호의 좌현에 접근해 구조작업을 시작했다. 아이들은 복도에 줄을 서서 구조를 기다렸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에 해경이 있었으나 그들은 배에 오르지 않았다.
승객 K씨는 선체가 점점 기울어지자 3층 안내데스크로 기어갔다. 안내데스크에 있던 승무원 박지영은 승객들이 탈출해도 되는지 거듭 무전기에 대고 물었다. 그녀는 그 후에도 무전기를 들고 10여 차례 탈출 여부를 물었지만 끝내 선장과 항해사 누구도 그녀에게 답을 주지 않았다.
계약직 직원인 그녀는 대학에 다니던 중, 아버지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와 여동생의 생계를 위해 휴학하고 세월호에서 승무원으로 일하고 있었다.
선실 안에 물이 들어와 학생들이 서로 북돋아 가며 복도로 나갔다.
“구명조끼를 입어.”
구명조끼를 입지 않은 학생이 보이자 박지영은 자기 것을 벗어주었다.
“언니는?”
“괜찮아. 선원은 맨 마지막이야.”
배가 기울면서 박지영은 미끄러져 옆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러면서 크게 소리 질렀다.
“모두 탈출하세요.”
이 소리는 4층에서 필사적으로 탈출을 시도하고 있던 이순애의 귀에도 희미하게 들렸다. 눈을 들어 올려다보니 갑판 쪽에 서정민이 보였다. 그는 호스를 잡고 올라오는 아이들을 끌어올리기에 바빴다. 이순애를 구조하러 4층으로 내려가려했다. 그러나 호스에 매달린 아이들 때문에 더 갈 수 없었다.
이때 이순애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민 씨, 아이들부터 구하세요. 아이들이 떨어지려 해요.”
배가 휘청 더 기울었다. 기울어진 갑판이 수면에 닿자 바닷물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호스를 잡고 올라오던 아이들이 물을 뒤집어썼다. 서정민은 그들에게 호스를 놓치지 말라고 소리쳤다. 그러나 몇 명은 물에 휩쓸려 도로 선실 바닥으로 떨어졌다.
깨진 창문으로 바닷물이 급격히 차오르자 학생들끼리 도와 탈출하기 시작했다. 서로 받쳐 주고 끌어올려 주며 선실에서 빠져나왔다. 1반 학생 30여 명은 비상구 방향으로 가 대기했다. 자기부터 살겠다고 먼저 나가려는 친구는 없었다. 비상구 바깥으로 학생들은 줄을 서서 빠져 나갔다.
학생들이 해경 구명보트로 옮겨 탄 뒤 큰 파도가 쳤다. 그 물결에 배에 남아 있던 10여 명의 학생이 배 안으로 휩쓸려 들어갔고 다시 빠져나오지 못했다.
해경 구명보트 2대가 학생들이 배에서 내려오기만을 기다렸다.
구조된 학생들이 “배에 친구들이 많이 있다”고 알렸지만 해경은 배 안으로 들어가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앞서 9시30분에 목포해경 항공구조단 소속 헬기 팬더 511호가 도착했다. 사고신고 접수 후 30여 분만이다. 511호는 세월호 상공을 떠돌며 갑판 위에 있거나 바다에 떠 있는 사람을 찾고 있었다.
서정민은 머리 위 헬기를 바라봤다. 헬기에서 사람은 안 나오고 카메라만 고개를 내밀더니 몇십 초 동안 사진을 찍었다.
“왜 온 거지?”
의아해하고 있는데, 구조원이 헬기에서 바구니를 타고 내려왔다. 승객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헬기 소리가 너무 커서 의사소통이 어려웠다. 헬기 구조원이 손가락 다섯 개를 폈다. 아이들 5명을 헬기로 올려 보냈다. 구조원이 다시 손가락으로 여섯 명이라는 신호를 보냈다. 옆에 있던 남자들과 함께 협력해서 여섯 명을 헬기로 올려 보냈다. 승객들을 업고 이동하는 구조대원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는 게 보였다.
또 한 대의 헬기가 도착했다. 제주해경 항공구조단 소속 513호였다. 7인승 헬기는 제주 북방 3마일 해상에서 불법 외국어선 단속 임무를 벌이다급히 세월호로 왔다. 5명(조종사, 부조종사, 정비사, 전탐사 및 구조사)이 탑승하고 있었다. 헬기는 좌현 60도로 기운 여객선을 발견하고 접근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구니를 타고 내려온 구조원은 배로 들어가지는 않았다.
서정민은 화가 치밀어 소리를 질렀다.
“지금 선실 안에 사람들이 많아요. 소화호스에 매달려 있는 사람들을 보세요. 저들은 어떡하란 말입니까?”
“바깥에 있는 사람을 먼저 구해야 합니다. 산 사람이라도 구해야 합니다.”
그들도 소리쳤다.
선실 안에 있는 사람은 죽은 사람이라는 뜻인가.
구조원은 냉정했다. 훈련된 냉정함은 바닷바람처럼 차가웠다.
서정민은 선실 바닥을 내려다보았다. 이순애는 보이지 않았다. 학생 몇 명이 벽을 기대며 호스를 잡고 올라올 뿐이다. 학생들이 올라오는 것을 다 도와주자 파도가 또 한 차례 배를 덮쳤다. 물이 차오른 4층 선실은 이순애를 영영 감춰버렸다.
서정민은 힘이 다 빠져 갑판에 누워버리고 말았다.
누군가 그를 세차게 흔들었다.
“배가 침몰하고 있는데 이러심 어떡합니까? 빨리 배를 탈출하세요.”
한 남자 승객이 구명조끼 하나를 가져다 입혀줬다. 살고 싶은 생각이 사라진 서정민에게 그의 호의는 강요로 느껴졌다.
123호 해경은 세월호를 향해 방송을 내보냈다.
“승객 여러분 모두 바다로 뛰어내리십시오.”
방송은 헬기 소리에 묻혀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헬기 소리를 듣고 아이들은 희망을 가졌는지 휴대전화로 서로 대화하곤 했다.
한 아이는 엄마와 통화했다.
“배가 되게 많이 기울었어. 헬리콥터가 와.”
“그래 다행이다. 헬리콥터가 온다니.”
“엄마 보고 싶어.”
“살 건데 무슨 소리야?”
“살아서 보자. 엄마!”
통화는 끊겼다. 배가 기울자 그 아이는 미끄러져 선실 바닥에 떨어졌다.
<이 작품은 세월호 사고의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허구적 상상력을 가미한 창작물이며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기업 지명 등은 실제와 관련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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