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 전 동중국해에서 발생한 이란 유조선과 중국 화물선의 충돌사고를 놓고 배상 책임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8일 중국 교통운수부에 따르면 6일 밤 양쯔강 하구에서 동쪽으로 160해리(약 296km) 떨어진 해상에서 파나마에 선적(船籍)을 등록한 16만4000t(재화중량톤)급 유조선 <산치>(SANCHI,
사진)호와 홍콩 선적 7만6000t급 벌크선 <시에프크리스탈>(CF CRYSTAL)호가 충돌해 유조선 선원이 실종되고 그 배에 실려 있던 기름이 유출됐다.
유조선은 이란에서 우리나라 한화토탈이 수입하는 콘덴세이트(초경질 원유) 13만6000t을 싣고 충남 서산시 대산항으로 가다 사고를 당했다. 벌크선은 사고 당시 6만4000t의 곡물을 싣고 미국에서 중국 광둥성으로 항해하던 중이었다. 사고로 유조선에 화재가 나 이란인 30명 방글라데시인 2명 등 선원 32명이 실종된 것으로 파악됐다. 벌크선에 타고 있던 중국인 선원 21명은 모두 구조됐다.
<산치>호는 이란국영유조선(NITC) 소유로, 지난 2008년 4월 현대삼호중공업에서 지어져 노르웨이독일선급(DNV GL)에서 선박검사증서를 취득했다. 선주배상책임보험(P&I)은 영국계 버뮤다 회사인 스팀십뮤추얼(SMUA)이다. 선박은 선사가 한화토탈과 맺은 운송계약을 수행 중이었다.
<시에프크리스탈>은 중국선박공업그룹(CSSC) 자회사인 베이징 소재 청시(澄西)조선에서 2006년 12월 건조했으며 미국선급(ABS)과 노르웨이 스컬드P&I(SKULD)에 각각 가입해 있다. 중국 저장성 원링창펑쉬핑(溫嶺市長峰海運)이 소유주다.
중국 해난당국은 사고 해상에 구조선과 해양오염방제선을 급파해 선박 구난에 나섰으며 우리나라 해양경찰도 선박 1척과 헬기 1대를 지원했다.
그렇다면 사고에 대한 배상 책임은 어디서 져야 할까?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김인현 교수는 화주인 한화토탈은 손해 배상 책임 대상에서 제외될 것으로 내다봤다.
김 교수는 “선체용선(나용선)인지 여부가 (화주의) 손해 배상 책임에 영향을 미친다”며 “선원이 모두 이란인인 것에 미뤄 선체용선이 아닌 정기용선이나 항해용선일 것으로 보이며 이럴 경우 우리나라 정유회사는 화주의 지위에 있을 뿐"이라고 판단했다.
선체용선은 용선자가 빌린 배에 자사 선원을 태우고 선박관리를 모두 책임지는 임차 방식을 말한다. 반면 정기용선이나 항해용선은 선주로부터 선박과 선원 일체를 일정 기간 또는 항해 기준으로 빌리는 방식으로 주요 선박비용을 선주가 부담한다.
유류오염손해배상조약(CLC)은 등기선박소유자에게 책임을 집중하고 있어 유류오염 피해자가 발생하더라도 우리나라 화주 측에 배상을 청구하지 못한다는 해석이다.
김 교수는 또 화주가 화물 피해에 대해 운송인인 유조선 선주에 손해 배상 청구를 하면 운송인은 항해과실면책을 주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항해 중 충돌로 발생한 손해를 항해과실면책이 되도록 한 국제조약이 근거다. 다만 화주는 사고 상대방인 벌크선 선주에 과실 비율에 따른 손해 배상 청구가 가능하며 상대방은 화주에게 항해과실을 주장할 수 없다.
김 교수는 화주가 적하보험자에 잃어버린 원유 손해 보험금 청구를 하면 보험자는 보험금을 먼저 지급한 뒤 화주 지위를 대신해 벌크선 선주에게 구상청구를 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사고 상대방은 일반상선이어서 1976년 제정된 선주책임제한 조약(LLMC)에 따라 책임제한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한화토탈은 “NITC와 이란에서 대산항까지 이란산 초경질원유를 일정 기간 수송하는 계약을 맺은 단순 화주일 뿐 사고 선박을 빌리지 않았다”고 밝혔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