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22 10:58

‘이미 따낸 일감 어쩌나’ 국내조선 저가수주 악순환

인건비 감축해도 척당 32억 손해

올해 상반기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한 일감들이 건조 시점에서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선가가 하락하고 후판 가격이 상승한 탓에 조선사들이 수익성을 확보하는 게 어려울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결국 조선사들의 숨통을 틔워준 수주물량이 수익성보다는 일감확보 차원에서 진행됐다는 지적이다.

수주체감도 상승…수주액은 하강

올해 조선사들의 일감은 지난해와 비교해 늘었지만, 수주액은 오히려 후퇴한 것으로 파악됐다. 올해 전 세계 1~5월 누적 선박 수주량은 653만CGT(수정환산톤수)로 전년 동기 대비 11.1% 증가했다. 반면 수주액은 전년 186억9천만달러 대비 4% 감소한 179억4천만달러로 집계됐다. KB증권 정동익 연구원은 올해 글로벌 신조선 발주전망치를 1700만CGT로 제시했다며, 누적수주는 전망치 대비 38.4%로 예상과 큰 차이가 없다고 설명했다.

국내 조선사들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17.8%로 하락했으나 올해 31.8%로 상승했다. 조선사들이 강점을 가진 LNG선 VLCC(초대형유조선)를 중심으로 일감을 확보했다. 정 연구원은 올해 신규 수주가 급증한 것으로 느껴지는 건 국내 대형조선사들의 시장 점유율 상승에서 기인한다고 밝혔다.

삼성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은 누적 수주가 지난해 연간 수주를 넘어섰다. 현대삼호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도 지난해 수준에 근접했다. 다만 정 연구원은 이는 기저효과에 의한 것으로 매출액 이상의 신규수주를 확보하지 못하면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게 어렵다고 밝혔다.

후판가격 상승세 지속

신조선가 하락과 후판 가격 상승도 조선사들의 수익성을 갉아먹는 주범 중 하나다. 신조선가 지수가 바닥을 치고 상승반전했지만 조선사들과 무관한 벌크선 상승에서 기인했다.

달러기준으로 신조선가 지수는 2016년 말 수준을 유지했다. 하지만 조선사들의 주력선종인 VLCC와 LNG선 선가는 각각 2016년 말 대비 4.1%와 6.1% 하락했다. 환율을 고려한 원화선가 하락률은 9.8%와 11.6%에 이르고, 달러기준으로는 3.1% 상승한 MR 탱크선도 원화기준으로 3% 하락했다.

2015년 말 t당 40만원 수준이었던 국내산 후판(20mm 기준) 가격도 2016년 초부터 상승세가 이어져 현재 58만원까지 상승했다. 달러로 환산한 한·중·일 후판가 평균도 2015년 말 대비 31.4% 상승한 565달러를 기록 중이다. 신조선가에서 후판이 차지하는 비중은 22.8%(아프라막스 기준)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돼 후판가격 상승은 원가에 직접적인 부담을 주게 된다. 정 연구원은 “최근의 신조선가 하락과 원·달러 환율하락, 후판 등 원자재가격상승은 원가절감을 통해 극복하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밝혔다.

KB증권은 결국 올해 상반기 수주한 선박들이 건조시점에서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을 내렸다. VLCC 기준으로 올해 상반기 수주한 선박의 수익성을 시뮬레이션 한 결과, 지난해 평균 대비 올해 상반기 VLCC 신조선가는 8.6% 하락했다. 여기에 원달러 환율 하락분 2.7%를 반영하면 원화기준 선가는 11%까지 하락한다.

건조시점에서 후판가격이 올해 상반기 평균 수준을 유지한다고 가정하면 후판비용은 2016년 대비 8.5% 증가하게 된다. 여기에 구조조정과 무급휴직 등을 통해 직영인력의 인건비 15%를 감축하고 기타 재료비와 경비, 외주인력 인건비, 판관비 등을 10% 감축하면 척당 32억3천만원의 적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KB증권의 분석이다. KB증권은 “매출감소에 따른 고정비 부담 증가를 반영하지 않은 것이라 실제 수익성은 더 악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현재 주요 조선사들의 매출기준 수주잔고는 1년치가 채 안 되는 상황이다. 하반기 들어 수주잔고가 빠르게 소진되면서 조선사들은 신규 수주를 본격 진행하고 있다. 정 연구원은 “저가로라도 수주해서 고정비를 배분할 수 있으면 손실은 제한적이지만, 아예 수주를 못해 매출이 급감하면 더 큰 손실이 불가피하다”며 “신규 수주는 수익성보다는 잔고확보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밝혔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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