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매미 일기
“여름 한철 치열하게 살다 가는 저녁매미처럼, 구원을 호소하지도 헛된 희망을 갖지도 그렇다고 회피하거나 포기하지도 않겠다”
이 소설은 창렬한 각오로 삶의 신념을 지키는 중년 무사의 이야기를 통해 시대소설 특유의 품격 있는 미의식과 고답적인 낭만을 고스란히 선사한다.
이 작품으로 수차례 수상후보에만 그쳤던 하무로 린은 나오키상 수상작가라는 당당한 영예를 안게 됐다.
그는 자극으로 충만한 일본 소설시장에는 ‘역사‧시대소설 열풍’이라는 새바람을 몰고 왔다.
주인공 중년 무사는 주군의 여인을 탐했다는 죄목으로 편벽한 산골마을에 유폐돼 지배 가문의 족보를 작성하고 십 년 후 자멸할 것을 명받은 인물이다.
무사는 죽음이 기다리는 서늘한 시간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남편의 죄목이 간통임에도 부인은 의심하거나 분노하기는커녕 유배지까지 동행하여 묵묵히 지아비를 섬긴다.
한편 중년 무사를 감시할 겸 유배지를 찾은 청년 무사는 고매한 중년 무사의 삶에 감복해 본분을 잊고 그가 혹시 누명을 쓴 게 아닌지 사건의 진상을 조사한다.
게다가 유배지 마을의 농민들은 냉소하거나 경멸하기는커녕 무사를 존경해 마지않는데…. 대체 이들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는 것일까?
매미는 긴 기다림의 울분을 털어내듯 여름 한철 온몸을 불사르며 운다. 그리고 비겁한 겨울을 살기보다는 당당하게 죽음을 택한다.
예부터 선비의 삶을 매미에 비유하고, 조선의 왕이 매미날개를 형상화한 익선관을 머리에 쓴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저녁매미 일기>는 짧은 생을 치열하게 사는 저녁매미처럼 신념을 위해 승자의 저편, 패자·약자 옆에 서기를 주저하지 않은 무사와 그 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녁매미 일기>는 죽음에 다가서는 하루하루를 사는 인간의 근원적인 아이러니를 담았다는 점에서 카뮈의 <이방인>을 닮았다.
또한 중년 무사의 가족과 그 주변 이야기는 드라마틱한 가족소설이자 풋풋한 연애소설로도 읽히며 섬세한 성장소설로서의 매력도 드러낸다. < 김보람 기자 brkim@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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