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09 09:41
기획/포워딩업계 시황 체감, 회복세와 ‘거리 멀어’
중견 포워더 발해물류 부도 파급력 커
●●● 최근 해운시장은 회복세를 보이며 물동량 증가세를 뚜렷이 보이고 있다.
선사들은 올해 들어 운임회복세에 힘입어 실적 개선을 보였다. 국적선사의 경우 지난 1분기 한진해운, 현대상선, STX팬오션이 흑자를 보였으며, 대한해운은 적자폭을 축소했다. 외국 선사들은 머스크라인, CMA CGM, NYK라인 등이 1분기 흑자전환에 성공했고, APL, 에버그린, CSAV 등은 적자폭을 크게 줄였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에 따르면 2분기 원양 및 근해항로 컨테이너선 시황은 물동량 회복과 선사들의 선복량 조절에 따른 선박공급 감소로 시황 회복세가 유지됐으며, 근해항로 몇 곳을 제외한 모든 항로에서 전 분기 대비 운임 인상이 이뤄졌다.
지난 6월 29일 KMI는 올해 해상물동량을 전년대비 9.7%(지난 분기 예측치 4.8%) 상승한 1억 3,600만TEU로 예상했으며, 이는 금융위기 이전 해상물동량인 1억 3,100만TEU를 넘어선 수준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6월 전국항만물동량의 경우 총 20피트 컨테이너(TEU) 169만2천개로 지난해 같은 달(134만5천개)에 비해 25.8% 증가했다. 상반기 전체물동량은 949만1천TEU로 지난해 처리한 760만4천TEU보다 24.8% 증가했다.
부산항 물동량은 상반기 총 698만6천TEU로 지난해 보다 24.1% 성장을 보였다. 인천항의 컨테이너 처리실적은 실물경기 회복세를 반영하며 91만3천TEU로 전년대비 32.6% 증가했으며, 광양항은 102만1천TEU로 22%의 성장을 보였다.
발해물류 부도로 수익성 악화 수면위로
해운업계 시황회복이 국제물류주선업계엔 악재가 되고 있다. 물량 회복세로 해상운임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국제물류주선업체(포워더)들의 수익성은 치명타를 입게 됐다.
국제물류협회 관계자는 포워더들의 수익성에 대해 “1~2년 사이 나빠진 게 아니다. 몇 년 전부터 꾸준히 수익성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다. 해운시황이 살아나고 있다고 하지만 포워더 수익성은 그렇지 못하고 있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지만 포워더 간의 운임 경쟁과 선사들의 운임인상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얼마 전 발해물류 부도는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낮은 운임으로 운송을 해오던 국제물류업계의 수익성 악화문제를 표면화시켰다. 발해물류는 5월 말 K사장이 잠적하고, 그 동안의 채무로 인해 회사가 부도처리 되자 업계에서 온갖 루머들이 돌기 시작했다.
업계에서 이 사건은 ‘사장이 수십억을 갖고 잠적했다’ ‘빚만 수십억이다’는 식으로 ‘뻥튀기’ 됐다.
이에 대해 발해물류 관계자는 “사장이 갖고 간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거의 모두 빚이다. 회사를 운영하면서 이곳저곳에 채무를 진 것으로 알고 있다. 모든 경영 사안에 대해 사장이 단독으로 결정을 해왔는데 직원들은 자금난에 대해서 알지도 못했다. 잠적하기 며칠 전부터 회사 자금난에 대해 토로해왔는데 이렇게 잠적 할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발해물류의 부도는 사장의 방만한 경영도 문제가 됐지만, 저가로 계약한 화주들과의 거래를 모두 사장이 혼자 맡아 진행해 직원들이 회사의 수익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도 원인이 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자금사정이 어렵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렇게 하루아침에 문을 닫게 될 줄은 몰랐다”며 “많은 물량을 취급하던 포워더마저 무너지니 포워더 수익악화의 심각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남의 일 같지 않다”고 토로했다.
만재화물(FCL)을 주로 취급했던 발해물류는 업계 10위권 규모의 업체였다. 12년간 업계에서 한국-호주-미국을 주력으로 도어투도어(door to door) 서비스를 제공해오며 전 세계로 영역을 넓힌 그야말로 ‘발해의 꿈’을 실현해가던 포워더였다.
하지만 발해물류 부도가 일어난지 일주일도 안 돼 모든 직원들이 퇴사 처리되고 말았다. 10년 경력의 중견 포워더가 하루 아침에 몰락한 것이다. 종이류를 주로 수송하던 발해물류는 1년 전 공개입찰로 계약방식을 전환하면서 수익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사장이 잠적한 후 그 동안 부채문제의 심각성이 드러났다. K사장은 당시 어려워진 자금사정을 해결하기 위해 사채까지 사용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선사, 외상거래 ‘NO’…피해 최소화 대책 부심
발해물류의 부도는 피해액만큼이나 업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회사 관계자에 따르면 선사, 콘솔업체, 해외파트너, 운송사 등 대부분의 거래 기업들이 피해를 입었다. 이 중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선사들이다. M사와 H사는 각각 7억원, 15억원의 손해를 입었으며, 물류기업 H사도 약 8억 5천만원이 넘는 피해를 본 것으로 나타났다. 선사들은 부랴부랴 화주 물량을 잡고 운송비를 받아내려고 애썼지만, 보증보험금액이 2억원 정도 밖에 안돼 피해액의 3분의 1정도만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전적인 피해를 입은 선사들은 앞으로 FCL화물운송을 하는 포워더와 외상거래를 줄여 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외상거래를 하더라도 보증보험 이상 거래하지 않고, 보증보험규모도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선사와 직접거래하지 않고 일명 ‘캡장사’를 하는 포워더를 이용하던 업체들은 선사와 직거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캡장사란 FCL물량을 대량으로 확보하고 있는 포워더가 선사로부터 물량을 내세워 컨테이너당 낮은 운임을 받은 뒤 이를 다시 다른 포워더에 넘기는 운송방식을 말한다. 예를 들어 물량을 많이 갖고 있는 A라는 포워더가 선사에 한 컨테이너당 1000달러에 운임을 받는다. 물량이 많지 않은 B라는 포워더는 선사에 컨 당 1200달러 밖에 받지를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A포워더는 B에게 선사 운임인 1200달러 밑으로 화물을 실어 주겠다고 오퍼하고, B포워더 입장에서는 선사와 직접거래하지 않지만 더 싼 운임에 화물을 실을 수 있어 A포워더와 거래를 한다.
발해물류의 영업은 화물을 많이 유치하고 선사에 운임 협상력을 높여 중간에 마진을 챙겼는데, 물량이 줄어들면서 마진을 남기지 못해 매출에 큰 타격을 받게 된 것으로 파악된다. 소위 캡장사로 수익을 내던 발해물류의 부도는 이 같은 방식으로 영업을 해오는 포워더에게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사례가 됐다.
화주들 터무니없는 입찰조건으로 포워더 압박
발해물류의 경영실적은 1년 전까지만해도 흑자를 보여오다 화주들이 공개입찰로 돌아서면서 수익악화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화주들의 무리한 요구는 늘어난 반면 경기악화로 물량은 줄어들다보니 짧은 기간 동안 수익성은 급격히 나빠졌다.
발해물류가 수송을 맡았던 A화주는 낮은 운임을 요구하며 선사의 운임인상분에 대해서도 적용하지 않는 조건으로 입찰을 내세우기도 했다. 계약을 매년 맺어오던 회사였지만 터무니없는 조건으로 회사가 응하지 않자, A화주는 호주지역물량을 다른 곳에 넘겨버렸다. 발해물류 관계자는 “월 200TEU이상 처리하던 지역의 물량이 줄자 매출에 바로 타격이 왔고 수익성 악화는 더 심해졌다”고 설명했다.
공개입찰로 전환하면서 화주들의 요구에 물류운송업체들의 시름은 더 커져가고 있다. 대량의 물량을 취급하다보니 선사와 거래할 때도 보증보험금액 이상으로 거래를 해왔었다.
중소기업 화주들의 물량을 싣고 있는 B포워더 관계자는 “대형화주는 공개입찰을 내세워 수십 개의 포워더를 모아 놓고 최저운임을 제시한 포워더에게 물량을 맡긴다. 대기업과 운송계약(SC)을 맺을 때는 미리 운임을 예상해서 제공하는데 선사에서 자주 GRI(기본운임인상)를 시행하면 미리 예상치 못한 부분에 대해 화주가 그 부담을 포워더에 떠안게 하는 경우가 많다”며 오히려 물량은 없어도 중소화주의 물량을 받는 것이 요즘 같은 시황에 유리하다고 밝혔다.
하지만 ‘잘나가는’ 포워더들의 도산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발해물류와 같은 사건은 2002년 중견 복합운송업체였던 보닉스 파산으로 나타났었다. 보닉스는 방만한 경영으로 인해 자금사정이 악화돼 도산을 하게 됐고, 국내포워딩업계의 신뢰를 떨어뜨렸다. 2005년에는 아이드림해운항공의 파산으로 또 한 번 격랑에 휩싸이기도 했다.
한 업계관계자는 “주기적으로 도산하는 기업이 나오는 것 같다”며 “시장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포워더의 근본적인 문제”라고 말했다.
콘솔기업들 중간에 끼어 죽을 맛
화물혼재(콘솔리데이션)기업들에겐 발해물류 부도 여파보다 수시로 시행하고 있는 선사들의 GRI로 인한 채산악화가 더 큰 문제다. 얼마 전부터 선사는 빈 컨테이너 부족 현상으로 동남아항로에서 20피트 컨테이너당 30달러의 CIC(컨테이너불균형비)를 부과했고, 성수기에 접어들면서 관련 할증료(PSS)까지 붙이고 있다. 콘솔기업들은 물량이 늘어도 선사들에 추가되는 서차지에 어깨가 버겁기만 하다.
선사들은 운임과 별도의 추가할증료를 각각 받고 있지만, 콘솔기업은 운임청구가 쉽지 않아 일부 할증료를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들어 대형 콘솔기업들이 아시아지역에서 월 500개의 컨테이너를 작업 할 경우 1만5천달러의 CIC비용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는 셈이다.
대형 콘솔기업인 C 관계자는 “물량은 눈에 띄게 늘었지만 선사의 운임인상으로 회복은커녕 수익성은 지난해보다 뒷걸음질 친 격이라고 할 수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운임이 오르다보니 화주에게 운임인상분에 대해 청구하는 게 예전보다 더 어려워 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지난해 말부터 모든 콘솔사에서 적용하기로 한 서류발급비는 콘솔사에 든든한 수익원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예상됐으나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류발급비만큼 기본운임을 할인해주다 보니 수익성면에서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는 것이다.
다른 콘솔업체 관계자는 “수익성으로 나타나진 않았어도 청구하지 않았다면 손해를 입었을 것”이라며 “선사들의 운임인상분의 반도 올리지 못하는데, 이마저 수시로 인상되니 화주 설득할 시간도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콘솔사들은 얼마 전 선사들의 운임인상에 대해 화주에 적극 대응하자는 취지로 모임을 가졌으나 흐지부지 되고 말았다. 포워더들 사이에서도 선사가 GRI를 시행한다고 해도 인상분 전액을 화주측에 적용할 수 없다는 곳이 많았던 까닭이다. 포워더간 의견차이로 화주들을 설득하기는 더 어려운 실정이다.
그렇다 보니 콘솔사의 영업사원들은 물량확보를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지만 ‘구두 값도 안 나오는 일’이 많아졌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물량이 많아 ‘1등급’으로 치는 화주를 유치한다고 해도 오른 운임을 제대로 청구하지 못해 수익성으로 이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포워더들의 이런 푸념이 짧은 시간안에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은 크다. 당분간 선사들이 선박 공급을 크게 늘리지 않고 운임인상을 지속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정지혜기자 jhjung@ks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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