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7-08 08:05
선박을 주문한 사실을 공개하지 말아 달라는 주문이 많다는 조선업계의 전언이다. 요즘 국내 조선업체들이 해외 선사들로부터 수주할 때 자주 듣는 말이다. 최근 브라질 굴지의 한 철광업체는 국내 조선사에 벌크선 발주를 내면서 아시아에 근거를 두고 있는 페이퍼 컴퍼니가 주문을 낸 것처럼 발표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선가가 낮을 때 선박을 많이 확보해 호황기 때 시장을 선점하려는 전략"이라며 "외부에 알려질 경우 선점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이유로 주문 사실을 숨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의 해운업 사정은 판이하다. 한진해운,현대상선 등 주요 해운업체들은 부채비율을 낮추라는 채권은행의 요구로 신규 발주는 엄두도 못내고 있다. 한국생산성학회 주최로 7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해운산업 생산성 제고를 위한 제도개선 과제' 세미나에서 최순권 항만물류경영연구소장은 "불황기를 지나 회복세로 돌아선 지금이 투자 적기"라며 "해외 선사들이 벌써 움직이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고 지적했다.
해외 선사들의 공격적인 행보는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최 소장은 "중국의 코스코(COSCO)사는 앞으로 3년 동안 총 매출을 65% 성장시키겠다고 발표했다"며 "정부의 막강한 여신 지원 덕분"이라고 사례를 들었다. 작년 부도 위기에 몰렸던 칠레의 CSAV사도 정부의 구제금융을 계기로 부활,업계 순위를 불과 1년 만에 16위에서 10위로 끌어올렸다.
작년 2분기 이후 중고선 매매도 활발해진 것으로 나타났다. 최 소장은 "올 1분기 중고선 매매가 월 평균 44척으로 호황기였던 2006년 수준과 비슷하다"며 "싼 값에 선박을 확보하기 위한 자산 투자가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생산성학회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해운업 활성화를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영석 계명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서비스산업이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외화 중에서 30~40%를 해운업이 담당하고 있다"며 "선박 전문 투자기관을 육성해 대형화를 유도하는 것만이 한국 해운업의 살 길"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한국선주협회는 선박보증기금 설립을 추진 중이다. 정부가 일정 부분을 출연하고 해운업체들이 나머지 금액을 조달해 5000억원 정도를 마련하는 안이다. 하 교수는 "한국정책금융공사 같은 곳이 기금을 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코리아쉬핑가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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