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1-31 14:44

기획/ 한겹 선박 2011년 퇴출 파장은…

정유·선사측 막대한 비용 호소…조선업계 ‘대체수요 호재’

●●● 태안 기름 유출사고의 주범인 단일선체 유조선이 2011년 1월1일부터 국내 해역에서 퇴출된다.

해양수산부는 기름 유출사고 이후 정유사들과의 속전속결식 회의 진행과 교섭을 통해 단일선체 유조선의 퇴출시기를 당초 결정보다 4년 앞당기기로 확정했다. 단일선체 유조선중 선령 25년 이상인 선박은 2010년에 퇴출하고 2011년부터는 모든 단일선체 유조선의 국내 해역 운항을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다만 선체는 한겹이지만 선측(뱃전)이나 선저(배밑바닥)가 이중구조인 유조선은 2011년말까지 퇴출을 1년간 유예키로 했다. 해양부는 해양환경관리법 하위법령인 ‘선박에서의 오염방지에 관한 규칙’에 이같은 내용을 담아 3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허베이스피리트호가 기름 1만2천547㎘를 유출하며 대형 환경재앙을 일으킨 이후 취해진 조치여서 ‘소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란 비판의 소리도 들리지만 정부가 사고 이후 발빠른 움직임으로 단일선체의 조기퇴출로 선회한 것은 환영할만 하다는 평가다.

프레스티지 침몰로 한겹 유조선 퇴출 급물살

단일선체유조선의 운항금지 움직임은 지난 2002년 11월 스페인 연안에서 발생한 프레스티지 침몰 사고 이후 촉발돼 유럽연합(EU)의 대응과 함께 전 세계 해운업계로 확산됐다. 당시 프레스티지호는 7만7천t의 중유를 싣고 싱가포르로 향하던중 폭풍우를 만나 두동강난 채 침몰했고, 이로인해 1만t의 기름이 유출돼 바다를 오염시켰다.

국제해사기구(IMO)는 이 사고 이후 지난 2003년 12월4일 국제해양오염방지협약(MARPOL)을 개정해 단일선체 유조선 운항제재에 들어갔다. IMO는 협약에서 5만t(재화중량톤) 이하의 단일선체 유조선은 2008년부터 중질유 운송을 금지하는 한편 2011년 이후부터는 경질유(원유, 연료유, 윤활유)를 운송하는 모든 단일선체 유조선의 운항을 금지키로 했다. 다만 당사국의 유류수급 또는 환경정책에 따라 선령 25년 미만의 선박은 2015년까지 운항연장을 허용하는 예외조항을 뒀다.

IMO 규정을 보면 알 수 있듯 현재 단일선체 유조선 중 운항금지를 놓고 쟁점이 되고 있는 선박은 나이가 25년 된 경질유 수송선이다. 지금 한겹구조의 선박을 퇴출시켜야 한다는 목소리도 결국 이들 선박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밖에 선박들은 IMO 규정에 따라 이미 운항금지가 발효됐기 때문이다. 이와관련 허베이스피리트호는 지난 1993년에 지어진 것으로 사고 당시 선령은 14년이었다.

해양수산부는 지난해 단일선체 유조선 운항금지 시점을 처음 정할 땐 선령 25년미만 선박은 2015년까지 운항을 연장하는 것으로 했었다. 정유업계쪽 손을 들어 IMO의 예외조항을 제도화한 것이었다. 당시 해양부는 2010년 퇴출로 가닥을 잡아가는 듯 했으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비용 등을 이유로 강하게 반발하는 정유사들에 막혀 결국 운항 연장쪽으로 방향키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같은 결정은 사상최악의 환경참사를 불러온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고로 말마임아 잘못된 판단이었음이 증명되고 말았다.

올해 단일선체 유조선 퇴출시한을 앞당기는 과정에서도 정부와 정유업계의 의견이 팽팽히 대립해 합의에 어려움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해양부는 1월8일 선사와 SK에너지·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SK인천정유등 5대정유사들을 불러 운항금지시기 조정에 머리를 맞댔다. 해양부는 이날 2009년부터 선령 25년 이상된 유조선을 단계적으로 퇴출하고 2010년부터 운항을 전면 금지한다는 정부 계획안을 알렸다. IMO 안보다 퇴출시한이 1년 더 빠른 것이었다.

정부는 회의에서 운항 횟수기준으로 지난해 53%였던 단일선체 유조선의 용선률을 올해 25%선까지 낮추고 2009년엔 5% 미만까지 줄여줄 것을 정유사측에 요청했다. 하지만 정유업계는 준비기간 부족과 계약파기 문제 등을 이유로 IMO 규정대로 2010년까지 운항허용을 주장했다.

같은달 15일 정유사측의 구체적인 감척계획을 토대로 갖기로 한 2차회의는 대한석유협회가 감척계획을 제출하지 않아 무산되기도 했다.

결국 1월18일 해양부 강무현장관과 정유사단체인 대한석유협회 김생기회장의 독대에서 운항금지안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이날 양측은 당초 계획안보다 1년 늦춘 2011년으로 퇴출시한을 확정하고 2010년 전에라도 정유업계가 자율적으로 용선을 줄여나가는데 합의했다.

정유업계는 단일선체 유조선 용선율을 올해 42%, 2009년 30% 등 매년 12%씩 줄이기로 했다. 결국 큰 틀에서 국제해사기구(IMO)가 권고했던 2011년 운항금지안이 대부분 수렴되는 쪽으로 제도화됐다고 볼 수 있다.

“이중선체 전환비용 천정부지”

단일선체 유조선의 조기퇴출은 이번 허베이스피리트호 사건을 계기로 바꿀 수 없는 대세가 됐다. 하지만 이를 직접 이행해야 하는 정유사와 선사들은 이중구조 선박으로의 전환에 막대한 부담을 호소하고 있다. 지난해 퇴출시한을 처음 정하는 과정에서도 정유사측은 2010년에 단일선체 유조선이 운항금지될 경우 원유수송에서 1619억원, 경질유 수송에서 92억원의 비용이 상승하게 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지난해 국내에 원유수송을 위해 들어온 유조선 입항횟수는 총 683회였다. 이중 단일선체 유조선은 53%인 361회 입항했다. 척수로는 전체 437척 중 52.4%에 달하는 229척의 단일선체 유조선이 국내 해역을 오갔다. 때문에 이번 합의대로 올해 단일선체 연간 이용률을 42%로 낮춘다고 할 경우 정유사들은 45~46척의 선박을 이중구조로 바꿔야 할 판이다.

현재 국내 정유사들이 1년 이상 용선해 쓰고 있는 유조선은 40여척 가량이며 이가운데 2010년 이후까지 장기용선한 선박은 12척이다. 스팟 용선이야 선박 교체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지만 장기용선의 경우 계약파기에 따른 불이익과 선박 수배에 따른 용선료 상승 등 감수해야 할 문제가 크다.

이에 대해 석유협회 관계자는 “정유업계의 기본 입장은 이중선체를 이용한다는 것이지만 이것이 말처럼 결코 쉬운 것이 아니”라며 “이중선체 선박을 섭외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장기계약을 파기할 경우 무는 위약금이나 이에 따른 선사와의 거래 단절 등 어려운 점이 많다”고 말했다.

정유업계는 또 2010년 이후 이중선체 유조선의 공급부족으로 원유도입 계획에 차질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현재 전세계 원유 수송선은 약 490여척으로, 이중 단일선체는 33% 가량인 160척으로 파악된다. 2010년 이후 필요한 이중선체 유조선은 단일선체 대체분 160척과 원유 운송증가분 30척 등 총 190척으로 전망되고 있다. 하지만 이 기간까지 시장에 인도되는 이중선체 신조선은 약 150척인 것으로 파악돼 약 40척 가량의 공급부족이 예상된다.

정유업계와 같이 선사들도 이중선체 선박으로의 전환에 따른 비용 부담이 만만찮다.

현재 유조선을 운영중인 국적 외항선사는 현대상선과 SK해운, STX, 대림H&L, 대보해운, 창명해운, 선우상선, 우림해운, 성호해운, 세광쉬핑등 10개 선사로 파악된다. 이들이 운영중인 유조선대는 총 44척 가량으로 이가운데 이중선체는 23척, 단일선체는 21척이다. 단일선체 유조선 21척 중 선사들이 직접 소유한 선박은 14척, 장기용선한 선박은 7척이다.

이중선체의 신조선가는 최근 조선업계 호황으로 척당 1천억~1500억원까지 치솟았다. 또 개조를 한다 쳐도 4만5천t(총톤수)의 경우 190만달러(약 19억원), 15만t 이상인 VLCC(초대형유조선)의 경우 2천만달러(약 190억원)에 이르러 선사들에 상당한 비용을 안길 것으로 파악되고있다. 선우상선과 성호해운, 대보해운등이 각각 1척씩을 이중선체로 개조한 바 있는데 높은 개조비용을 호소했다는 후문이다.

이와관련 현대상선측은 “선박건조 또는 용선확보에 2년이상이 소요돼 운항금지시기가 앞당겨질 경우 준비기간등이 부족하다”며 “신조를 현재상태에서 발주요청해도 2012년이후에나 인도받을 수 있어서 그 기간중 공급부족을 보충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조선업계, 17조원 대체 수요 발생

이와 비교해 단일선체 조기퇴출은 조선업계로는 호재가 아닐 수 없다. 2015년까지 운항할 수 있었던 한겹짜리 선박들이 모두 두겹으로 전환할 경우 조선업체들은 막대한 대체수주를 보장받을 수 있다.

지난해 의견수렴과정에서 국내 조선업계는 단일선체 유조선이 2011년 퇴출될 경우 384억달러의 대체수요가 발생하고 이중 약 182억달러(17조원)를 국내업체들이 수주할 것으로 판단한 바 있다.

펀리(Fearnley) 및 로이즈등에 따르면 2010년 단일선체 유조선 퇴출대상은 총 478척(6205만7천DWT) 규모로 파악됐다. 선형별로 ▲20만t급 이상 초대형유조선(VLCC) 152척(4106만8천t) ▲12~20만t의 수에즈막스 44척(645만6천t) ▲80~12만t의 아프라막스 72척(684만4천t) ▲5만~8만t의 파나막스 45척(287만t) ▲파나막스급 이하 165척(481만9천t)이었다.

이중 한국은 척수 기준으로는 33.2%인 206척을 수주할 것으로 예상됐으며 발주가격이 가장 높은 VLCC는 53.8%인 82척, 수에즈막스에서 60%인 26척을 수주할 것으로 예상됐다.

또 클락슨 및 푸르덴셜투자증권 분석에 따르면 1월 현재 원유 운반선의 전세계 공급 과잉분은 1050만DWT로 VLCC로 환산할 경우 35척 정도인 반면 퇴출 시점이 앞당겨진 단일선체 유조선은 628척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현재 오만 정부에서 10척의 VLCC 발주 계획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가운데 다른 나라에서도 발주를 서두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올해 최소 20척 이상의 VLCC가 발주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같이 단일선체 유조선의 조기퇴출로 관련 업계가 미칠 이해득실에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지만 선진국은 이미 단일선체 유조선의 자국입항을 사실상 금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주목된다.

선진국은 이미 단일선체 ‘안돼’

클락슨에 따르면 이미 2011년 단일선체 유조선 퇴출로 방향을 정한 미국, 유럽의 경우 지난해 입항한 초대형유조선(VLCC) 331척 중 단일선체 유조선은 단 한 척도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와 비교해 아시아 지역은 단일선체 VLCC 628척중 95.6%인 606척이 운항돼 선진국의 규제로 운항이 어려워진 단일선체 선박이 아시아권으로 집중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이중 한국은 27.6%인 173척의 단일선체 VLCC가 운항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또 선령 25년을 갖고 퇴출시한을 정한다고 하지만 선령에 관계없이 단일선체 선박의 위험성을 간과해선 안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단일선체 유조선은 그 자체로 사고 이후 걷잡을 수 없는 환경오염을 야기할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견해다.

일례로 허베이스피리트호도 지난해 사고 당시 지은지 14년밖에 안된 젊은 선박이었다. 때문에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이 선박은 정부가 지난해 정한 2015년 퇴출 제도로 향후 몇년간 국내 해역을 계속 왕래했을 것이란 추론이 가능하다. 국내 연안은 그만큼 이번과 같은 참사가 발생할 가능성도 함께 떠안고 있어야 했을 터.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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