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월 화재사고를 당한 뒤 인천항의 애물단지 취급을 받아 온 현대글로비스의 자동차 운반선이 해외에서 폐선 절차를 밟는다.
4일 인천세관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인천항 1부두에 정박해 있던 5만2400t(총톤수)급 <오토배너>(Auto Banner,
사진)호가 두 척의 예인선에 이끌려 방글라데시 치타공으로 떠났다.
지난 1988년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건조된 이 선박은 지난 5월21일 인천항에서 수출용 중고 자동차를 싣다가 불이 나 큰 피해를 입었다. 사고 당시 현대글로비스가 소유주인 에이티넘파트너스로부터 장기용선해 운항 중이었다.
3일간의 진화 끝에 불길이 잡혔으나 선박에 실려있던 중고자동차 2474대 중 1594대가 전소됐고 나머지 880대만 다른 배에 옮겨 실려 중동으로 정상 수출됐다. 피해 규모는 소방서 추산 75억원에 이른다.
사고 이후 선박 처리가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 선박이 자력으로 운항을 할 수 없게 되자 선주는 3개월 후 선박해체업자에 260만달러(약 30억원)를 받고 매각했다. 선박을 인수한 ㈜A해양은 부산항으로 예인해 선박을 해체하려고 부산항만공사에 항만시설 사용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불허통보를 받았다. 자동차 6500대를 실을 수 있는 대형 선박이 해체를 위해 정박할 수 있는 부두시설이 없다는 이유였다.
계획에 차질이 발생하자 해체업자는 거제도에 있는 성동조선소를 노크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모색했으나 모두 “노”라는 대답만 들었고 선박은 사고 이후 7개월간 인천항 1부두에 흉물처럼 방치됐다.
해법을 찾지 못하던 A해양은 인천세관에 화재선박 처리방안 컨설팅을 요청했고 양 측은 선박 해체를 가장 많이 하는 국가인 방글라데시로 눈을 돌려 현지 선박해체업체인 B마리타임과 접촉했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B마리타임은 전소된 자동차를 제외한 선박만 사길 바라는 것이었다. 인천세관은 화재 자동차는 관세율이 0%라는 점을 들어 환경청장의 허가를 받은 후 고철로 수입신고하라고 A해양에 권고했고 업체는 이를 받아들여 자동차를 모두 내린 뒤 이날 선박만 방글라데시로 떠나보냈다.
인천세관은 “화재가 난 대형 선박을 해외로 수출함으로써 외화 획득과 인천항 애물단지 처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게 됐다”고 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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