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해사기구(IMO)가 2020년부터 선박의 황산화물 배출 규제를 강화할 계획인 가운데 미국과 그리스가 주도한 단계적인 규제 도입안 채택 시도가 유럽의 반대로 무산됐다.
29일 한국선급에 따르면 지난 22일부터 26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열린 국제해사기구(IMO) 해양환경보호위원회(MEPC) 제73차 회의에서 황산화물 배출 규제 시행 과정에 경험축척기간(EBP, Experience Building Phase)을 두자는 안건이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IMO는 2020년 1월1일부터 전 세계 해역을 항해하는 선박들의 황산화물 배출량을 현행 3.5%에서 0.5%로 낮추는 내용의 새로운 환경 규제를 시행할 예정이다.
현재 황산화물 배출 규제 대응책은 저감장치인 스크러버 설치와 규제에 적합한 저유황유 사용, LNG 연료 사용 등으로 나뉜다. 스크러버는 기존 연료인 저가의 고유황유를 계속 쓸 수 있는 건 장점이지만 설치에 수십억원이 들어가는 문제점도 존재한다. 고유황유와 저유황유의 가격 차이가 클수록 스크러버 설치가 유리하다.
저유황유를 사용하는 방법은 연료유만 갈아타면 돼 가장 간편한 방법으로 통한다. 하지만 아직 정유사들이 생산설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아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데다 가격이 비싸다는 단점이 있다.
LNG 연료 사용은 선박 기관을 아예 새롭게 바꿔야 해 선박을 신조하지 않는 이상 효과적인 대응책이 되지 못한다. 아직까지 LNG벙커링 시설을 갖춘 항만이 많지 않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새로운 규제 도입으로 연료유 가격이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를 들어 단계적인 규제 시행을 제시했다. 이른바 2020년 규제 시행 이후 실측 데이터를 분석해 그 결과에 따라 필요할 경우 협약을 개정하는 경험축적기를 두자는 것으로, 협약 연기와는 무관하다는 게 미국 정부의 입장이다. 세계 최대 해운국인 그리스도 미국과 같은 편에 서 있다.
경험축적기 도입안은 협약의 개정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어 시장에 큰 혼란을 불러일으켰고 이번 회의에서도 가장 중요한 의제로 논의됐다. 하지만 격렬한 논의 끝에 결국 채택이 불발됐다. 편의치적국과 저개발 국가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으나 IMO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유럽연합 국가들의 반대에 직면했다.
경험축적기 도입 여부는 내년 5월 열리는 제74차 MEPC 회의에서 판가름날 전망이다.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유럽 국가들의 반대를 뚫고 자신들의 뜻을 관철시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다만 미국의 의도는 황산화물 규제를 일단 시행한 뒤 그 결과를 따져 제도 개선을 모색한다는 것이어서 차기 회의 결과와 상관 없이 IMO의 황산화물 규제는 계획대로 2020년 1월1일부터 발효될 것으로 예상된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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