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02-22 11:44

기획/ 역대 최저 벌크시황에 허덕이는 해운물류업계

벌크선사 채산성 악화로 포워더도 수익 줄어
저유가에 프로젝트도 줄줄이 ‘스톱’

지난해 해운시장에는 ‘역대 최저’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었다. 컨테이너 시장에서는 유럽항로에서 20피트 컨테이너(TEU)당 200달러라는 역대 최저 해상운임이 내걸리며 선사들의 근심을 가중시켰다. 떨어진 운임을 끌어올리고자 선사들은 운임인상(GRI)을 통해 반전을 노렸지만 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기대감에 부풀어 올랐던 선사들의 기대치도 한순간에 움츠러들었다.

벌크선 시장에서도 ‘역대 최저’라는 말이 수차례 등장하며 냉기류가 흘렀다. 건화물선 운임지수(BDI)는 연일 최저치를 경신하며 추락을 거듭했다. 지난해 2월18일엔 역대 최저치인 509포인트를 찍었으며, 연말에는 400포인트대를 맴돌며 한 해를 마무리했다.

올해 첫 시작도 순조롭지 못했다. 1월13일 400포인트대가 무너진 BDI는 한 달도 채 안돼 300포인트대로 내려앉으며 역대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2월15일 현재 기준 BDI는 295포인트를 유지하고 있다. 1만1100포인트대를 유지했던 2008년과 비교하면 대조적인 모습이다. 벌크선 시장의 부진은 대형선인 케이프 사이즈를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올 들어 100포인트대로 하락한 케이프사이즈운임지수(BCI)는 최근 190~210포인트를 유지하고 있다.

중국의 경제성장률 둔화와 철광석·석탄의 수요 감소, 선박의 공급과잉은 건화물선 시황을 악화시킨 주범으로 꼽힌다. 중국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6.9%로 나타났다. 1990년(3.8%) 이후 25년 만에 처음으로 7% 이하로 떨어졌다. 산업생산활동도 15.7%에서 6.9%로 반토막 났다.

주요 교역국인 중국과 인도의 석탄 수입량은 매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 중국과 인도의 석탄 수입량은 1년 전에 비해 크게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외신에 따르면 중국의 지난해 석탄 수입량은 전년 대비 8700만t 감소한 2억406만t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30% 이상 감소한 수치다. 석탄 수요가 많은 인도의 지난해 수입량 역시 전년 동기 대비 15% 감소했다. 지난해 12월 수입은 전년 동월 대비 34% 감소한 1235만t으로 6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대기오염 방지를 위한 규제 강화와 경기침체는 수입 급감으로 이어졌다.

벌크선 인도량 > 해체량

해체량을 웃도는 선박 인도량도 공급과잉을 불러와 가뜩이나 좋지 않은 벌크선 시장의 수급 불균형을 부채질했다. 올해 1월 벌크선 인도량은 역대 최고치인 90척(722만DWT)으로 55척(464만DWT)인 해체량을 웃돌았다. 선형별로는 파나막스급(7만~13만t급)이 선박 인도량 부문에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석탄과 철광석의 최대 수입국인 중국의 경제성장 둔화와 수급 불균형으로 인해 벌크선사들은 허덕이고 있다. 일일 수익이 약 4000~5000달러라고 가정할 경우, 고정운항비에 금융비융을 포함하면 7000달러는 넘어야 선사들은 수익이 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중국-호주항로에서 t당 약 3달러의 수익이 나며 손에 쥘 수 있는 운임은 1000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선사 관계자는 “3달러는 한국 돈으로 따지면 약 3600원 꼴이다. 현재 이러한 해상운임은 비정상적인 수치이며, 자금력이 있는 회사라면 해체나 계선(선박을 매어두는 일)을 택하면 되지만, 그렇지 않은 곳은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선사들의 선박은 해체장으로 몰리고 있다. 20년 선령의 중고선들이 줄지어 고철로 바뀌고 있으며, 15년 선령의 선박들도 예년에 비해 해체량이 늘었다. 해체장으로 향하는 선박이 증가하면서 해체선가도 낮아지고 있다. 고철 값이라도 마련해 부담을 조금이라도 덜고자 하는 선사들에게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다.

MEIC(해운정보거래센터)에 따르면 2014년 LDT(선박을 해체하기 위해 지급하는 선가 단위)당 400달러에 달했던 해체선박 가격은 최근 240달러선까지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중고선가와 해체선가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아 선사들은 너나할 것 없이 해체 작업에 동참하고 있다. 선사 관계자는 “선주들이 벌크선 해체를 진행하고 있지만, 아직도 선복이 많아 수요 공급의 불균형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불투명한 앞날 포워더들도 ‘한숨’

벌크와 프로젝트 화물을 주로 취급하는 국제물류기업(포워더)들은 벌크선사들의 고전에 웃을 수 없는 처지다. 해상운임이 곤두박질치자 대형, 중소형 포워더 가릴 것 없이 수익이 크게 줄었다. t당 10달러를 형성했던 운임이 3달러 수준으로 반토막 나자, 포워더들은 수익을 내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굵직굵직한 입찰 또한 예년에 비해 크게 줄어 포워더들의 경쟁을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발주사들은 차일피일 발주를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포워더들은 현재 내려간 운임이 언제 반등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해상운임의 변동 폭이 크면 운임인상 가이드라인을 화주에게 일일이 전가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포워더 관계자는 “지속적으로 떨어지는 운임도 문제지만, 언제 또다시 반등할지 모르는 운임 때문에 걱정이 매우 크다”고 밝혔다. 일부 업체는 벌크로 나갔던 화물이 기록적인 운임하락으로 인해 컨테이너로 나가는 경우도 있어 화물이 줄고 있다고 전했다.

운임덤핑도 포워더들에게 골칫거리로 작용한다. 벌크시장에서 형성되고 있는 수준보다 더 낮게 운임을 깔고 들어오는 업체가 수두룩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해운시황 전망은 포워더들의 운임덤핑을 부추기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시황이 좋질 않다보니 광물과 프로젝트건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입찰 때 낮은 운임을 오퍼하는 업체가 수두룩하다”고 말했다.

발레, BHP, 리오틴토 등 자원 메이저들을 주로 상대하는 브로커들 역시 시황침체로 인해 수입이 줄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포워더 관계자는 “컨테이너와 마찬가지로 벌크시장도 결국에는 화주 중심의 마켓이다 보니 물량이 없으면 시장이 활기를 띠지 못한다. 시황이 좋지 못해 일부 포워더들은 미수금으로 인해 문을 닫을 지경에 처했다”고 토로했다.

프로젝트 화물을 주로 취급하는 포워더들은 장기 레이스를 펼치고 있는 저유가 기조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프로젝트건수가 많은 중동과 러시아 발주사들의 현지 구매력이 높지 않아 보류되거나 연장된 사업이 많다. 발주처에서 주문을 미루며 상황이 나아지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게 포워딩 업계의 전언이다. 또 EPC(설계조달시공) 업체와 선사와의 직거래도 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포워더에게 들어갈 물류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EPC업체들은 선사와 직거래 비중을 늘리고 있다.

CJ대한통운, 범한판토스, 현대글로비스 등 국내 대형 포워더들은 올 한해가 쉽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한 대형 포워더 관계자는 “포워딩 사업은 컨테이너, 벌크운임 하락과 물량 감소로 매출액 확보에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측된다”며 “BDI를 분석하는 기관들이 벌크시장이 지난해와 비슷하거나 나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으나, 지난해와 비교해 나아질 것에 대한 시그널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물량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선사와의 경쟁력 있는 운임 계약체결과 추가물량 확보를 위한 영업을 병행하는 것이 대응방안”이라고 말했다.

중소 포워더들은 다양한 화물을 처리하겠다는 전략을 밝히고 있다. 수익을 내는 화물이라면 가리지 않고 뛰어들어 매출을 끌어올리겠다는 입장이다. 과거에는 큰 프로젝트 한 건만 처리해도 수익성이 높았지만 지금은 해상운임이 워낙 낮다보니 수익을 내기가 쉽지 않다. 굵직한 큰 프로젝트건도 좋지만, 특정 화물 종류에 치우치지 않고 곡물에서부터 철재, 중량물 등을 핸들링해 화물 유치에 힘쓰겠다는 각오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규모를 떠나 시장의 전체 파이가 작아지다 보니 컨테이너, 벌크사업 가릴 것 없이 시황이 좋지 않다”며 “현 상황에서 선사들은 배를 매각하거나 폐선을, 포워더들은 인력을 감축하거나 사업 규모를 줄여야 하는 상황이 왔다”고 말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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