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해양플랜트 손실 여파로 최악의 실적 부진을 낸 국내 대형조선사들의 수익개선 시점에 대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조선사들은 위기 극복과 턴어라운드를 위해 매진하고 있지만, 단기간 내 회복이 어렵다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해양플랜트 손실을 털어내기까지 시간이 소요되는 만큼 내년이 최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유조선·LPG선이 그나마 희망
내년에는 국내 조선소에 문을 두드리는 고객들이 올해보다는 줄어들 것으로 보여 조선사들의 시름은 한층 더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올해 조선사들을 견인했던 선종들을 내년 수주 리스트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컨테이너선, 가스선, 벌크선, 유조선 등이 그렇다. 특히 벌크선은 기록적인 시황침체로 인해 조선소들이 손에 쥘 수 있는 일감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 국내 대형조선 ‘빅3’인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은 유조선과 컨테이너선을 잇따라 수주하며 일감을 채웠다.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선주들의 경쟁적인 발주로 이들 선종은 올해 대형 조선사들의 ‘효자품목’으로 자리매김했다. 조선사들은 두개 선종만으로 절반이 넘는 수주량을 쌓으며 수주 목표치를 끌어올렸다.
올해 수주 가뭄 해소에 큰 도움을 줬던 선종은 단연 유조선이다. 유가하락이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자 선주들은 기회를 틈타 유조선을 잇따라 발주했다. 10월 말까지 전 세계에서 발주된 1200척(옵션 포함) 중에서 유조선은 424척에 달했다. 전체 발주량 중 3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다. 선종도 ▲32만t급 VLCC(초대형 유조선) 63척 ▲ 15만8천t급 수에즈막스 60척 ▲11만3천t급 아프라막스 80척 ▲LR(10만t급 안팎)2급 36척 ▲LR1급(7만t급 안팎) 51척 ▲5만2천t급 MR(미디엄레인지)급 66척 등 다양했다.
컨테이너선 발주도 잇따라 진행되며, 수주가뭄에 허덕이는 조선사들에게 ‘단비’를 뿌렸다. 올해는 그 어느 때보다 극초대형 컨테이선(ULCS)의 발주량이 많았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픈 선주들의 욕망은 조선시장에 그대로 반영됐다. 클락슨에 따르면 올해 세계 최대 선형인 2만TEU급 컨테이너선은 67척이나 발주됐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한진중공업이 2만TEU급 초대형선 신조 시장을 이끌었다.
조선업계는 내년에도 컨테이너선의 발주가 지속되겠지만 올해보다는 주춤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진행된 대량발주와 해운시황 침체로 인해 증가세가 한풀 꺾일 것이라는 이유다. 다만 벌크선이나 LNG선 등 다른 선종에 비하면 높은 성장세를 이어갈 전망이다. 하나대투증권 박무현 연구위원은 “지난해보다 올해 컨테이너선의 발주량이 늘었으며, 연비경쟁으로 인해 컨테이선 교체 수요는 내년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옵션을 행사하지 않기로 한 해운선사들의 움직임이 최근 표면화되면서 컨테이너선 발주에 대한 우려를 나타냈다. 최근 머스크라인은 1만9630TEU급 6척, 1만4000TEU급 8척, 3600TEU급 2척의 옵션을 각각 행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초대형 컨테이너선 발주를 선도하던 세계 1위 선사가 선대 확보에 급제동을 걸면서 경쟁 선사들의 선박 늘리기도 주춤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해양수산연수원 이창희 교수는 “글로벌 컨테이너 선사들의 M&A(인수·합병)가 확대되며, 몸집 키우기보다는 노선의 조정 및 합리화를 통한 가격 경쟁력 확대가 예상된다”며 “1만TEU급 선박보다는 중소형 피더선의 수요가 많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설명했다.
내년에 그나마 긍정적으로 평가된 선종은 유조선과 가스선이다. 국내 대형조선사들은 가스선과 유조선의 발주는 내년에도 지속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국제 유가가격의 상승조짐이 당분간은 보이지 않아 내년에도 발주가 진행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다만 내년 수요는 올해만큼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LNG선 발주는 올해 어느 정도 진행됐기 때문에 LPG선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라고 말했다. 삼성중공업 관계자 역시 “컨테이너선은 올해 워낙 많이 발주가 되는 바람에 조선사들이 비빌 언덕이라고는 LNG선와 유조선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부진할 것으로 전망된 선종은 벌크선이다. 중국발 경기침체로 철광석 수입량이 크게 줄면서 선박 발주량이 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박무현 연구원은 “중국 주택의 건설량 감소는 BDI 약세를 불러오고 있고, 내년에도 석탄과 철광석의 수요를 기대하기 어려워 이로 인해 중국 조선업은 큰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여곡절 많은 해양플랜트, 내년 기상도 ‘흐림’
‘대박’에서 ‘쪽박’으로 운명이 뒤바뀐 해양플랜트의 내년 수주 기상도는 먹구름이 가득하다. 유가하락 장기화가 막을 내리지 않는 판국에 조선사들은 차마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올해 하반기에 진행될 것으로 점쳐졌던 5건의 굵직한 해양플랜트 발주는 내년 이후를 기약해야할 판이다. 업계에서 수주전망이 유력했던 해양플랜트 프로젝트는 유럽 최대 정유사 셸이 발주하는 40억달러 규모의 ‘봉가 FPSO’, 이탈리아 ENI가 발주처인 25억~30억달러 규모의 ‘모잠비크 FLNG’, 약 10억달러인 태국 ‘우본 플랫폼’ 등 3개였다. 이밖에 페트로나스가 발주하는 카사와리 프로젝트도 물망에 올랐지만 계약이 성사되지 않았다.
이밖에 계약이 지연되고 있는 해양프로젝트 개발도 수십건에 달한다. 에너지경제연구원(KEEI) 등에 따르면 유가하락으로 인한 해양프로젝트 건은 총 34건이다. 노르웨이, 나이지리아 등에서 진행되는 프로젝트들의 개발 예상시기는 2019~2023년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해양플랜트는 유가가 배럴당 60~70달러 정도 돼야 선주들이 발주를 재개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기록하고 있는 30달러대로는 요지부동인 선주들의 발주 본능을 끌어내기에는 무리가 따른다는 지적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유가가 배럴당 60~70달러가 돼야 안정적으로 보는데 계속 떨어지고 있어 내년에도 수주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박무현 연구원 역시 “지금의 조선업 실적악화는 해양플랜트 때문이며, 저유가 상황이 상당기간 지속돼 해양 발주량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과거 국내 조선사들이 수주한 해양플랜트는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으로 묘사된다. 아직도 인도되지 않은 해양플랜트가 조선사별로 20기에 달해 추가손실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상선에 비해 해양플랜트 일감이 가장 많은 삼성중공업의 추가손실 위험이 높은 상황이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역시 인도하지 않은 해양플랜트가 상당수 있어 안심할 수 없는 처지다.
이창희 교수는 “수주잔량에서 드릴선 비중이 작은 현대중공업은 인도지연에 대한 위험이 적지만, 삼성중공업은 잔여수주량이 많아 내년에도 위험이 남아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대우조선해양의 경우 부실의 정도 파악에 대한 어려움이 상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선시장 회복 2017년 이후에나 가능
보릿고개를 넘고 있는 국내 조선사들의 턴어라운드 시점은 2017년 이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는 점진적으로 실적이 개선돼 빠르면 2017년부터는 완연한 회복세를 보일 전망이다. 내년 실적개선에 대해 국내 대형조선사들은 올해보다는 상황이 그나마 나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해양플랜트의 잠재적인 손실을 털었으니 내년에는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의견이다.
해양플랜트에서 추가손실이 나지 않을 경우 국내 대형조선사들의 실적 개선은 기대해 볼 만하다. 경영정상화 절차를 밟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수주한 가스선이 내년에 대부분 인도되며 실적개선이 이뤄질 전망이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은 총 49척(LNG선 37척+LPG선 12척)의 가스선을 따내 100억달러 이상을 수주했다. 대우조선해양 관계자는 “머스크의 컨테이너선 발주가 멈춘 상태라 후발주자 선사들의 발주도 줄어들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내년에는 인도되는 가스선이 실적에 반영돼 경영개선이 점차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8분기 연속 적자를 이어간 현대중공업은 내년부터 실적개선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현대중공업 측은 해양부문에서 손실이 예상되는 부문을 모두 반영해 빠르면 올해 4분기를 실적개선의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올해 3분기 선주사의 계약해지 통보로 적자성적을 낸 삼성중공업 역시 해양플랜트 손실이 발생하지 않을 경우 실적 개선이 점쳐진다. 산업연구원 홍성인 연구원은 “노후선 해체 등으로 공급과잉이 해소되고 글로벌 경제가 회복될 경우 2017년부터 점진적인 회복이 전망된다”고 말했다.
조선사들의 내년 수주실적 전망은 불투명한 상태다. 저유가 시대를 맞아 국내 조선사들은 내년에 유조선과 가스선 만으로 일감을 확보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조선사들간 치열한 경쟁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가열된 수주경쟁으로 인해 저가수주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냐며 우려하고 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국, 일본도 2만TEU급 컨테이너선을 건조하고 있어 글로벌 조선업체들의 경쟁은 더욱 심화될 것”이라며 “내년에 일감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당장 조선사들의 영업실적은 개선된다 하더라도 장기적인 전망은 어두울 수도 있다”고 말했다.
< 최성훈 기자 shchoi@ksg.co.kr >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