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월 >호 사고의 원인으로 화물 과적이 지목된다. 기준 이상 실린 화물은 선박의 복원력을 상실케 해 결국 침몰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 세월 >호 사고 이후 국내에서 여러 제도들이 도입됐다. 운항관리자 이관이나 여객선 선령 제한 단축, 인명구조를 다하지 않은 선장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이 사고 이후 취해진 조치들이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화물 과적에 대한 규제가 강화되고 있다. 임기택 사무총장을 배출한 국제해사기구(IMO)에선 실체적인 강화 규정을 도입해 내년 시행을 준비 중이다. 이른바 선적 전 컨테이너 중량 검사 의무제다.
MSC나폴리호 사고 후 제도 도입 논의 급물살
지난해 11월17일부터 21일까지 영국 런던에서 열린 IMO 해사안전위원회(MSC)는 해상인명안전협약(SOLAS) 개정을 승인했다. 개정 솔라스는 컨테이너 허위 중량 신고에 대한 산업계의 우려를 담고 있다. 컨테이너 중량 검사 의무제의 도입이 그것이다. 제도 도입은 미국 등의 주도로 이뤄졌다. 미국은 화주가 컨테이너 화물의 중량을 정확하게 신고하지 않을 경우 컨테이너선 선체의 구조강도와 복원성에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규제 장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반면 유럽화주협회는 컨테이너 화물의 안전수송을 위해선 화물적재나 고박 절차의 개선이 중요하지 컨 화물 중량 검사는 시행이 어려운 데다 안전 강화에도 크게 기여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찬반이 양립하던 중 <엠에스시나폴리>(MSC Napoli)호 좌초를 계기로 세계선사협의회(WSC)와 국제해운회의소(ICS)가 컨테이너 중량 검사 의무제 도입을 본격 추진했으며 아시아 화주들과 일부 회원국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결국 IMO 차원에서 합의를 도출했다. 2007년 1월18일 영국해협에서 좌초된 <엠에스시나폴리>호의 컨테이너 중량조사에서 상당수의 화물이 신고된 중량을 초과했다는 사실이 발견됐다. IMO 해사안전위는 올해 초 기업과 해상인명안전협약 체결국의 중량 검사 이행지원을 위해 가이드라인이 포함된 안내서를 발간했다.
해운업계와 항만업계는 제도 도입에 대해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WSC 의장인 크리스토퍼 코치는 “IMO는 컨테이너 중량 검사 의무화를 채택함으로써 국제 운송산업에서 화물의 안전한 수송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을 통해 지속적인 리더십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국제항만협회(IAPH)도 IMO의 결정을 지지했다. 선사와 터미널 운영사들은 화주들의 컨테이너 중량 허위 신고가 선박 안전은 물론 선원, 항만노동자, 트레일러 기사들의 안전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컨테이너 중량 검사 의무화를 담은 솔라스 규정은 제6장 2조다. 종전 솔라스 제6장 2조는 화주가 선장이나 대리인에게 컨테이너 화물의 중량을 나타내는 서류를 제출토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컨 화물의 실제 중량이 화주가 신고한 중량과 일치하는지 검증하는 국제기준은 없었다. 개정된 솔라스 규정은 “국가에서 공인된 기관에 의해 승인된 인증방법을 이용해 적재를 마친 컨테이너의 중량을 측정하거나 모든 포장물과 화물 품목의 중량을 측정함으로써 컨테이너의 총중량을 강제적으로 검증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아울러 수출화주 즉, 송화주가 컨테이너 중량 검사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했다. 화주는 컨테이너 선적 전에 검증된 화물 중량을 선박의 선장이나 대리인, 터미널 측에 제출해야 한다. 만약 컨테이너를 봉인한 뒤 중량 검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선사와 터미널 측은 컨테이너 선적을 금지하도록 의무화 했다.
중량 검사 안된 컨화물 선적 금지
컨테이너 중량 검사 의무제가 1년 앞으로 다가왔지만 국내 대응은 아직까지 느린 편이다. 화주나 포워더(국제물류주선인) 항만업계 등 대부분의 이해 당사자들이 이 제도를 모르고 있는 형편이다. 화주나 포워더, 항만운영사 단체들은 하나 같이 “컨테이너 중량 검사 의무제도가 도입되는 건 금시초문”이라며 “내용을 파악해봐야 할 것 같다”는 입장을 내놨다.
정부와 선사 일부만이 제도 도입 사실을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선사들도 도입 시기만을 알고 있을 뿐 정확한 내용은 잘 모르고 있다. 한진해운 관계자는 “내년 7월1일부로 중량 신고 의무화 제도가 도입된다는 내용을 인지하고 있으며, 향후 화주들이 EDI(전자문서교환)를 통해 화물을 예약할 때 무게 기재가 누락되지 않도록 하고 무게 측정 터미널이 돼 있는 곳이나 안 돼 있는 곳을 구분해서 대응전략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도를 시행하게 될 해양수산부는 솔라스 개정 내용을 국내법에 반영하는 방법을 두고 고민 중이라고 밝혔다. 현재 가능성이 가장 높은 건 ‘선박안전법’에 컨테이너 중량 검사 의무화 규정을 추가하는 방법이다. 선박안전법은 솔라스에서 규정한 선박설비 기준 등을 다루고 있다. 대표적으로 ‘컨테이너형식승인판’에 승인된 최대 총중량을 초과해 화물을 실은 선사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물리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해수부 관계자는 “선박안전법에 관련 규정을 넣을 지 아니면 다른 방법이 있는지 검토하는 단계”라며 “어떻게 제도화할 지 검토가 덜 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같은 관계자는 “법령 재개정 작업에 들어가면 화주나 선사 포워더 등 이해 관계자를 다 모아 협의해야 한다”며 “현재는 선주협회와 이 내용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수부는 화물 측정 방식에 대해선 IMO가 제시한 두 번째 방식에 무게를 두고 있다. 솔라스는 화물 검사에 두 가지 방법을 제시했다. ▲승인된 중량 측정소(weighing station)에서 적재된 컨테이너의 중량을 측정하거나 ▲컨테이너 내에 있는 모든 개별 품목들의 중량을 측정한 뒤 빈 컨테이너의 중량과 합산해 총 중량을 산출하는 방식이다.
두 번째 방식으로 갈 경우 화물 측정소를 반드시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어서 제도에 대한 대응이 수월해질 수 있다. 첫 번째 방식은 터미널마다 개별 측정소를 설치해야 해 비용이 많이 소요되는 등 부담이 커 선사들도 꺼리는 상황이다.
다만 제도 도입 과정에서 중량 검사를 하지 않았거나 허위 신고를 한 화주를 처벌하는 문제를 두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국제적인 이슈라 외국 화주에게 벌금을 부과하기 쉽지 않은 데다 우리나라 화주가 제도를 위반했다고 하더라도 선적 이후엔 화물을 인수한 선사 쪽에 책임이 승계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를 두고 선사 측은 이 제도가 명확한 규정 없이 도입된다면 오히려 선사들만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화주와 선사의 관계가 갑을 구조다보니 화주들이 중량을 허위로 기재하거나 중량 신고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해서 선사가 규정대로 선적 거부를 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이다.
해수부 관계자는 “현재로선 법령 도입이 가장 시급한 과제로, 필요하면 현장답사 등을 통해 장비 도입 등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며 “시간이 빠듯하긴 하지만 이해관계자들과 협의를 진행해 제도 시행 시기에 맞춰 대응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경희 기자 khlee@ksg.co.kr >
많이 본 기사
0/250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