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06-12 15:07

기획/ 근해만도 못한 유럽항로 운임 ‘속사정은’

상하이발 운임 300弗 붕괴…역대 최저치 경신
이전투구식 치킨게임 고개들어

●●●아시아-유럽항로가 해상운임 폭락으로 고비를 맞았다. 몇달째 역대 최저치 해상운임 기록을 갈아치우던 유럽항로는 6월 들어 20피트컨테이너(TEU)당 200달러대라는 사상 초유의 운임이 내걸렸다.

상하이항운거래소(SCFI)가 6월5일 발표한 상하이발 북유럽항로 운임(스팟)은 TEU당 전주 대비 58달러 하락한 284달러를 기록했다. 지난달 29일 342달러를 기록한 이후 일주일만에 300달러대가 붕괴됐다. 아시아-지중해항로 운임도 6월5일 TEU당 379달러를 기록하며 전주 466달러에서 일주일새 87달러 하락해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유럽항로는 4월로 접어들어 운임폭락을 겪고 다시 회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연초만해도 유럽항로 운임은 나쁘지 않았다. 1월9일 TEU당 975달러로 시작한 북유럽항로 운임은 2월초까지 1000달러대를 유지해왔다. 하지만 3월 들어 상황이 바뀌었다. 운임이 상승세를 타야할 시기에 TEU당 600달러대로 내려온 운임은 하락세를 거듭하다 4월17일을 기점으로 TEU당 500달러대가 무너지고 월말에는 400대도 붕괴됐다. 3개월만에 운임이 3분의1 토막 나며 2011년 이후 가장 최저치를 기록했다.

그러다 5월 초 해상운임은 중국발 수요가 잠시 늘어나전월대비 2배 이상 오르며 상승세를 타는 듯 했다. 하지만 5월8일 TEU당 861달러까지 올라간 운임은 일주일을 버티지 못하고 급격히 떨어지더니 3주만에 다시 300달러대로 하락했다. 4월말 북유럽항로 취항 선사들이 일시적으로 선복조절에 나섰지만 바닥까지 내려간 운임을 끌어올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09년으로 회귀하나?

상하이발 운임이 TEU당 200달러대에 머물자 더 높아야할 한국발 운임도 비슷한 수준까지 내려갔다. 업계에 따르면 한국발 북유럽 해상운임은 TEU당 400달러대에 머물러 있지만 공공연하게 300달러대 운임이 돌고 있다.

한 선사 관계자는 “현재 해상운임 수준은 금융위기 때 보다 폭락했다”며 “아시아 역내항로 운임에도 못미치는 TEU당 250달러 운임을 내거는 선사도 있어 시장이 흐려지고 있다”고 말했다.

200달러대의 운임은 근해항로 운임에도 못미치는 수준이다. 유럽항로의 시황부진은 2009년 정기선시장 위기때와 비슷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불어닥친 미국발 금융위기는 2009년 정기선시장을 황폐화시켰다. 당시 평균 해상운임은 TEU당 200~250달러 수준이 제시되는 등 운임 급락, 소석률 70%대의 전대미문의 해운불황은 선사들에게 혹독한 시련을 안겨줬다. 프랑스 해운조사기관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상위 17대 컨테이너선사들의 2009년 상반기 손실액은 60억달러에 이르렀다. 

일각에서는 현재 유럽운임 수준이 2009년 위기 때 운임수준과 비슷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당시에는 배럴당 140달러에 달하던 고유가가 정기선업계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하지만 현재는 배럴당 평균 60달러 수준으로 저유가가 지속되고 있어 선사들의 부담이 그때 같지 않다는 점이다.

1~5월까지 5개월간 상하이발 유럽항로의 평균운임은 TEU당 725달러로 작년 같은기간 평균운임인 1251달러와 비교하면 58% 수준에 머물러있다. 5월 한달 평균운임만 놓고 본다면 TEU당 530달러를 기록해 작년동월 1267달러의 42%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작년 한해 평균운임이 1146달러에 머물러 남은 7개월 동안 평균운임을 1447달러로 유지해야 작년 수준을 채울 수 있다. 하지만 하반기에도 시황 개선의 가능성이 높지 않다.

6월1일부터 선사들은 TEU당 900~1000달러의 기본운임인상(GRI)을 꾀했지만 하루이틀 미뤄지다 중순으로 연기했다. 7월1일에도 TEU당 1000달러대의 GRI를 시행할 예정이지만 운임회복을 이룰지는 미지수다. 그동안 선사들은 운임을 끌어올리기 위해 매월초 GRI를 꺼내들었지만 1월말 GRI를 제외하고는 모두 일주일새 흐지부지 돼버렸기 때문이다.

스팟운임이 급전직하로 떨어지면서 불거진 또다른 문제는 계약화주들이다. 선사들은 대형화주(BCO)와 NVOCC(무선박운송인)의 계약운임과 시장운임 차이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분기별 시장운임을 반영하는 계약화주들의 2분기 계약운임이 스팟운임보다 2배 가까이 차이나기 때문이다. 화주들이 운임차이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고 일부 화주들의 경우 계약을 엎은 곳도 생겼다. 시황이 급반전할 경우 언제라도 상황은 바뀔 수 있기에 참고 있는 화주들이 대부분이지만 문제는 다음 분기다. 6월말까지 시장 운임수준을 끌어올리지 못하면 이대로 계약운임이 정해질 수 밖에 없다. 하지만 바닥운임에서 선사들이 분기계약을 앞두고 언제라도 1000달러대의 운임을 올릴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 선사 관계자는 “중국발 수출물량 약세와 공급과잉의 문제가 크지만, 시황이 받쳐주지 않는다고 해서 운임을 올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현재는 선사들이 눈치를 보고 있는 중이지만 언제든지 의지를 갖고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정기선시장에서 수십 곳에 달하던 선사들이 최근 몇개의 얼라이언스로 재편되면서 운임인상에서 공조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선사들간의 공격적인 운임 인상 시도는 공조 체제가 재구축되는 것을 의미하지만 현재 운임수준은 서로간의 눈치만 보고 있는 상황이다. 
 

선복량 증가 수급불균형 = 운임하락

해상운임이 급전직하로 떨어진 배경에는 대형선 투입으로 인한 과잉공급과 중국발 수출물량 감소가 가장 크게 작용하고 있다. 

올해 유럽항로에 투입되는 1만TEU급 이상의 초대형컨테이너선(ULCS)은 절정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선사들이 앞다퉈 유럽항로에 투입하기 시작한 1만8천TEU급, 1만4천TEU급 신조컨테이너선을 필두로 하반기에도 추가적으로 투입될 예정인 선박들이 줄서있어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해상운임을 끌어올리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알파라이너에 따르면 1만TEU급 이상 선박 51척이 유럽항로에 투입돼 선복량 증가율이 9.1%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머스크는 대우조선해양에 2만TEU급 선박 11척을 발주했고, UASC는 오는 2016년까지 6척의 1만8800TEU급 선박을 인도받을 예정이다. CMA CGM은 2만600TEU급 컨테이너선 3척을 한진중공업에 발주했다. 이 밖에 홍콩선사 OOCL이 2만TEU급 컨테이너선 6척을 삼성중공업에 발주했으며 MOL 역시 삼성중공업에 2만100TEU급 컨테이너선 4척을 발주했다. 선사들은 수송 비용 절감을 위해 ULCS를 항로에 투입했지만 결국 시황 하락을 부채질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여기에 중국발 유럽향 수출물동량 감소로 기대이하의 수요는 공급과잉을 부추겼다. 북유럽 노선에서 일정부분을 차지하던 러시아향 수출화물이 현지 경기 침체로 대폭 감소하면서 소석률이 낮아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

영국 컨테이너트레이드스타티스틱스(CTS)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유럽항로 물동량은 전년 대비 7.3% 증가한 1539만6천TEU를 기록했지만 올 1분기 물동량은 전년동기대비 1.2% 감소한 355만TEU를 기록했다. 3월 한달 물동량은 98만1561TEU를 기록하며 전년동월 127만2707TEU와 비교해 22.9%나 하락했다. 올해 유럽항로 물동량도 작년만큼 증가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선사들은 중국발 수출물량이 줄자 중국으로 많이 내어줬던 선복할당량을 다시 한국에서 늘리고 있는 실정이다.

선사들 네탓공방

수급불균형은 운임을 떨어트렸고, 결국 선사간 치킨게임으로 비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올해부터 컨테이너 처리량 상위 1, 2위인 머스크와 MSC가 합친 2M을 비롯해 CMA CGM, UASC, 차이나쉬핑이 뭉친 ‘오션3’가 공동운항을 시작했다. 이미 현대상선, 하파그로이드, OOCL, NYK, MOL, APL의 G6가  운영중이며 한진해운, 코스코, 양밍, 에버그린, 케이라인이 구성한 CKYHE가 공동운항을 하고 있다. 공동운항으로 뭉친 선사들은 너나할 것없이 초대형컨테이너선 발주로 선복량을 늘리고 있다.

수요가 늘지 않는 이상 이미 초대형선이 표준화돼가고 있는 유럽항로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공급을 줄이는 수밖에 없다. 각자 몸집이 커진 선사들은 선복량을 무기로 대대적인 영업공세를 펼치고 있다. 빈 배를 채우기 위해 선사들은 더 낮은 운임을 제시하기 시작하고 시장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나머지 선사들도 운임을 맞춰갈 수 밖에 없다. 그런 상황이 몇달간 지속되면 결국 영업력과 비용 경쟁력을 갖는 선사만 남는 상황으로 치닫게 된다. 치킨게임에 본격적으로 들어선 것이다. 시장에선 2M으로 뭉친 머스크와 MSC가 치킨게임을 주도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모 선사 관계자는 “북유럽과 지중해에서 강세를 보이고 있는 선사가 2M으로 합쳐지면서 운임하락을 이끌고 있다”며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유럽항로에서 서비스를 접는 선사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에 2M선사 관계자는 “현재 시장에 나오는 100달러, 200달러의 운임은 화물반입 마감 직전의 운임으로 선사마다 빈 선복을 채우기 위해 공격적으로 화물집화에 나서는 것”이라며 “이 운임이 전체 시장운임을 대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다른 2M 관계자는 “유럽항로에 대형선을 투입한 것은 지난해부터 시작된 일로 선복과잉은 타 선사들이 뒤늦게 선복을 늘리면서 시작된 것”이라며 “현재 선복을 줄일 계획은 없고, 다른 얼라이언스에서 줄여주길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선사들은 6월을 마지막 고비로 여기고 있다. 보통 3개월씩 이뤄지는 계약화주의 분기운임 반영을 앞두고 선사들이 운임을 인상할지 아니면 자체 선복량을 줄여나갈지는 더 지켜봐야할 것으로 보인다.

< 정지혜 기자 jhjung@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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