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간을 남다른 금슬과 애정으로 행복하게 살아온 원앙부부가 어느 날 뜻밖에 찾아온 알츠하이머란 몹쓸병으로 인한 불행을 맞게 되자 이를 다시 옛날로 복원시키려는 두 사람의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끝내는 딴 사랑을 만나 헤어지게 되는 가슴 아픈 사연을 눈물 나게도 눈부신(?) 화면으로 잘 담아낸 작품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어웨이 프롬 허(Away from Her)’ (2006년 작)란 영화였다.
죽음에 이르는 그 어느 중증 질병보다도 더 무섭고 그러면서도 근년 들어 더욱 흔한 병, 우선 일흔이 넘은 필자의 입장에선 젊은 시절엔 부모님들이, 이제는 필자 주위 사람들과 필자얘기로 다가와 투영되는 두려움이자, 어쩌면 우리 모두의 불행한 미래의 자화상 같아 가슴이 저미기도 한다.
스토리는 간단하다. 영화 속에 나이는 표시가 안됐지만 올해로 결혼 44주년을 맞는 필자와 똑같은 연배로 44년간이라는 긴 시간을 함께 한 부부, ‘그랜트(고든 핀센드/Gordon Pinsent)’ 의 아내 ‘피오나(줄리 크리스티/Julie Christie)’ 에게 뜻하지 않게 치매가 찾아 온 것이었다.
그녀는 자진해서 요양원에 입원을 하게 되고 그랜트는 어쩔 수 없이 그 결정을 받아들인다. 그러나 기억을 잃은 피오나가 요양원에서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되자 아무리 애를 써도 아내의 옛 기억을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한 그랜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이 그녀를 떠나보내는 일이라고 결론짓는다.
외딴 섬에 들어가는 유람선을 기다리다 처음 만나 “우리 결혼하면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란 피오나의 애교넘치는 즉흥 청혼에, 역시 단번에 “그러자!” 고 대답하고 새 순이 돋듯 기운이 넘치는 생명의 광채를 느끼며 앳된 18세 피노아와 그랜트는 44년간을 한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이 함께 살아온 터였다.
그들의 삶은 함께 스키를 타되 활강보다는 크로스컨트리 스타일이었고, 뭐든 이야기를 하되 감추거나 숨기지 않았으며,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매일같이 함께 식사를 나누었고, 같이 책을 보다가도 잠이 들 때면 남편은 아내에게 그녀의 고향 오딘의 ‘아리슬랜드에서 온 편지’ 를 읽어주며 동화처럼 살아왔다. 그랜트는 미남에 실력 있고 매너 좋은 인기 많은 대학교수였다. 젊고 아름다운 여학생들이 주변에 널려 있었고 그 중엔 죽음을 무릅쓰고 그를 사랑한 여학생도 있었다.
수많은 유혹에도 아내를 떠나거나 버린 적이 없었지만 한 때 스캔들로 피노아의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생명의 광채가 넘치던 피오나가 치매에 걸린 건 환하게 불 밝던 저택의 등불이 하나씩 꺼져가다 마침내 온 저택이 어둠속에 잠겨버리는 것과 같은 현상이라고 표현했다.
프라이팬을 냉동실에 넣거나, 편지를 들고 우체통에 넣는 걸 모르고, 스키를 타고나서 집으로 오는 길을 잃어버리게 되자, 병이 더 깊어지기 전에 자진해 요양원에 들어가기로 한 것.
알츠하이머 전문 요양원의 규칙은 현장 생활에 적응하는 최소 기간, 처음 한달 간은 면회가 절대 금지된다. 부부는 결혼 후 첨으로 떨어져 지낸다.
그리고 한달 후 목마르게 보고파 했던 피오나는 감쪽같이 남편을 잊어버렸다. 그 곳에서 다른 남자 환자와 사랑에 빠져버리게 된 것. 같은 증세로 함께 지내는 ‘오브리(마이클 머피/Michael Murphy)’ 와 모든 것을 함께 한다. 이야기도, 카드게임도, 산책도 같이 하며 부부처럼 지내고 중증인 그 남자에게 갖은 정성을 다 쏟으며 수발을 들고, 모든 걸 자상히 챙겨주며 그랜트를 잊고 그의 뒷바라지를 한다.
한 때 그랜트의 실수로 인해 받은 상처때문에 장난끼 어린 복수를 하려는 연기쯤으로 의심도 했으나 두 사람이 한 침실에서 벌이는 스킨십을 보고는 강한 질투 같은 걸 느끼게 된다. 일구월심 (日久月深) 증세 호전만을 기다리던 그랜트는 자기를 배척하다시피 하며 오브리한테 올인 하는 피오나에게 질시와 증오의 감정을 억누를 수 없게 되자 그의 부인을 찾아가 통사정 끝에 서로를 격리시키기에 이른다.
그러자 곧 극심하게 병세가 악화된 중증을 보이게 되어 그랜트는 20년간 같이 산 집으로 되돌아 와 위로도 하지만 별무효과라 드디어 제2의 결심으로 자기가 앞장 서 두 사람이 다시 요양원에서 전처럼 지낼 수 있게 재회의 기회를 만들어 주는 최후의 방법을 찾는다.
한 때 남편은 외도 후 아내에게 되돌아 왔으나 잊은줄 알았던 평생 그 사건을 말한 적이 없는 피오나는 “그때 당신이 조강지처 버리고 떠날 줄 알았는데... 버리고 떠날 수도 있었는데 지금까지 곁에 있으며 머물러 줘 고맙다” 는 가슴 뜨끔한 옛날을 되살리자 크게 후회도 한다. 그랜트는 그녀의 사랑을 되찾아 주기 위해 오브리에게 영원히 떠나보내야 하겠다는 결심을 한다.
그녀의 건강과 함께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길은 오로지 오브리에게 보내는 길이란 결론을 내린 것. 그리고 오브리에의 부인 ‘메리언(올림피아 두카키스/Olimpia Dukakis)’은 어느날 나이트클럽 행사에 그랜트를 초청한다.
동병상련의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그날밤을 함께 보낸다. 적절한 표현으로는 부적합하고 부도덕스러운 일이긴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연스런 스와핑에 이르게 된 형국이라고나 할까? 치매란 뇌질환이 엄청난 불행과 터무니없는 결과를 낳는 장면에 필자도 당황스러움을 금할길 없었고 한편 이해도 되지만 슬픈 종말인지 해피엔딩인지 분간하기 혼란스럽고 애매하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리쉬 컨트리 싱어 ‘아이슬라 그랜트(Isla Grant)’ 가 부른 주제음악 “Where have the years gone, my how they flown(지난 시간들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세월은 참 빠르게도 흘러가지요)” 로 시작하는 ‘Only Yesterday’ 는 필자도 가끔 근무 중에 리시버를 끼고 들을 정도로 누구에게나 듣는 이의 가슴을 에고 적시는 애석함으로 여울지게 한다.
원작은 ‘앨리스 먼로’의 단편 ‘The Bear Came Over the Mountain’ 이고 배우출신의 20대후반 여류감독 ‘사라 폴리(Sarah Polley)’ 가 첫 장편 데뷔작으로 메가폰을 잡아 크게 성공한 2006년 작품이다. ‘데이빗 린’ 감독의 1965년 작품으로 세계적인 선풍과 함께 명성을 얻은 전설적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주인공 ‘유리 지바고’(오마 샤리프/1932년생)’의 운명적 여인 ‘라라’ 역을 맡아 세계적 톱스타로 급부상한 ‘줄리 크리스티’를 40년 뒤에 다시 보는 설렘을 필자는 잊을 수가 없다. < 서대남 편집위원 dnsuh@ks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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