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후선 고철 판매 급증…유동자금 확보위해 해운업계 ‘안간힘’
STX팬오션은 올 들어 선령 20년 안팎의 노후 선박 12척을 선박 해체시장(중고시장 포함)에 매각해 고철로 처리했다. 한진해운도 최근 벌크선 2척을 선박해체 시장에 내놨다. 노후선박 해체는 해운사들이 불황기에 선택하는 고육책이다. 운임이 오르지 않는데, 20년 이상 노후한 선박을 운항하느니 차라리 고철 값을 받고 파는 게 낫다는 판단에서다. 특히 노후선박일수록 연비가 좋지 않다. 선박용 기름인 벙커C유 가격은 올 들어 40% 이상 올랐다.
노후선박의 해체붐은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해운조사기관 클락슨에 따르면 2007년 56만DWT에 불과하던 벌크선 폐선량은 올해 2500만DWT로 급증할 것으로 보인다.
해운경기가 호황이었던 2007년에는 건조한 지 30년이 지난 노후선박도 비싼 운임 때문에 운항을 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불황이 지속하자 해운사마다 노후선박을 앞다퉈 고철 시장에 넘기는 것이다.
선박해체 시장 활황의 근원지는 유럽은행이다. 전 세계 선박금융의 60~70%를 유럽은행이 담당해왔는데, 최근 유럽은행청(EBA)의 스트레스테스트 결과 유럽 은행권은 내년 6월까지 1150억유로(약 150조원)의 자본확충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돈을 풀어야 하는 은행들이 돈을 끌어모으는 상황이 벌어진 셈이다. 대규모 차입 자금이 필요한 선박·해운 업체들은 돈줄이 막히며 큰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들 은행은 선주들에게 싼값이라도 선박을 처분하라는 압박을 가하고 있다.
일부 해운사들은 이를 견디지 못하고 파산보호신청을 하는 경우가 있다. 미국 내 2위 벌크선사인 제너럴 마리타임사가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지난달 미국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빚만 14억달러(1조6000억원)에 이른다. 주력분야가 원유·석유제품을 실어나르는 탱커선인 이 회사는 주 고객으로 엑손모빌 같은 오일메이저를 두고 있음에도 파산보호 신청을 피해가질 못했다. 경쟁 탱커선은 늘어나는데 운임이 떨어지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우리나라 상황도 마찬가지다. 국내 굴지의 벌크선사인 대한해운 등 2008년 금융위기 이후 10여개의 해운사가 연쇄적으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이 시기에 호황을 누리는 분야는 노후선박을 인수해 고철화하는 해체 전문 조선소뿐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고 말했다. 고철값이 오른 것도 선박 해체시장을 키우는 요인 중 하나다. 올 들어 고철값은 t당 500달러 안팎으로 2008~2009년의 200~270달러에 비해 급등했다. 최근 일본의 MOK 해운사는 1995년 건조한 초대형 원유운반선을 시장에 넘겨 해체시켰다. 보통 유조선의 수명은 20~30년인데, 16년 만에 처리한 것이다.
전 세계 해체 조선소 시장은 인건비가 싼 중국과 인도가 각각 30%씩 차지한다. 한국의 해체 조선소는 환경오염 등의 이유로 대부분 사라졌다.
업계에서는 현재 해운업 상황을 동트기 전 가장 어두운 단계로 본다. 일부 전문가는 "역설적으로 앞으로 경기가 좋아질 일만 남았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재정위기를 맞은 유럽은행이 선박금융 자금을 회수하고 선박공급을 줄일수록 세계 해운시장의 턴어라운드(경기 반등)는 앞당겨진다는 얘기다.
우리 해운업계의 경우 유럽 측 선박금융을 이용하지 않기 때문에 선박금융에 의한 직접적인 타격은 없다. 해운회사들은 또 노후선 처리뿐 아니라 일부 선박의 운항을 중단하고 이를 외항에 정박시켜 놓는 계선도 늘리고 있다. 시장에 공급하는 선박 수를 줄이기 위해서다. 한국선주협회 양홍근 이사는 "유럽 선박금융이 돈을 회수할수록 전 세계 선박공급은 예상보다 빠르게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 코리아쉬핑가제트 >
많이 본 기사
0/250
확인